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해설, 2·3악장이 먼저 연주된 협주곡과 1악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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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가 혼자 시작합니다. 오케스트라는 가만히 있고, 피아노가 아주 여린 화음을 하나씩 짚어 나갑니다. 화음은 같은 걸음으로 되풀이되면서 점점 커지고, 마지막에는 아주 큰 소리가 됩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은 이렇게 열립니다.

그런데 이 협주곡이 처음 청중 앞에 섰을 때, 이 첫 화음들은 무대에 없었습니다. 그날 연주된 것은 2악장과 3악장뿐이었습니다. 1악장이 무대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열한 달 가까이 지나서였고, 그 직전까지 작곡가는 편지에서 이 악장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 순서를 따라가 봅니다. 두 번에 나뉘어 무대에 오른 과정, 1악장을 둘러싼 편지, 그리고 그 편지를 알고 나서 곡을 다시 들을 때 귀를 둘 자리입니다.

1901년 모스크바 구트헤일 출판사에서 나온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두 대 피아노 편곡판 악보 표지. 맨 위에 A Monsieur N. Dahl 이라는 헌정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두 대 피아노 편곡판 초판 표지, 1901년, 모스크바 A. 구트헤일 간행, 라이프치히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공동 판매. 맨 위에 「A Monsieur N. Dahl」, 곧 N. 달 씨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있다.

두 번에 나뉘어 오른 무대

2악장과 3악장이 먼저 연주된 날은 1900년 12월 2일입니다. 당시 러시아가 쓰던 구력 날짜이고, 오늘날 달력으로는 12월 15일입니다. 장소는 모스크바였고, 여성들이 꾸린 자선 단체인 부인 자선 감옥위원회가 연 음악회였습니다. 피아노는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쳤고, 지휘는 사촌이자 피아노 스승이던 알렉산드르 실로티가 맡았습니다.

그날 라흐마니노프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연주 당일 날짜로 쓴 편지에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내내 앓았고, 오늘에서야 겨우 일어나 오케스트라와 내 협주곡을 리허설했다.」

그래도 결과는 좋았습니다. 그 자리를 기억한 세 사람, 사촌이자 훗날 처제가 되는 소피야 사티나, 동료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골덴바이제르, 그리고 훗날 작곡가 자신의 회고가 모두 이 두 악장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전합니다. 골덴바이제르는 청중과 음악가 모두에게 곧바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고 적었습니다.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실로티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나란히 선 흑백 사진
알렉산드르 실로티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촬영 연도 미상, 미국 음악 잡지 『The Etude』 1922년 5월호 게재. 실로티는 2·3악장의 첫 연주와 전곡 초연을 모두 지휘했다.

세 악장이 모두 갖춰진 전곡 초연은 1901년 10월 27일, 오늘날 달력으로 11월 9일에 열렸습니다. 역시 모스크바였고 모스크바 필하모니 협회의 연주회였습니다. 독주는 작곡가, 지휘는 이번에도 실로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곡은 한 번의 초연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2·3악장이 먼저 무대에 올랐고, 곡을 여는 1악장은 거의 한 해 뒤에야 합류했습니다.

1악장을 둘러싼 편지

왜 1악장만 늦었을까요. 라흐마니노프는 훗날 회고에서 1900년 가을까지 2악장과 3악장을 먼저 끝냈고 1악장은 나중에 더했다고 말했습니다. 골덴바이제르도 2·3악장은 빨리 썼지만 1악장이 오래 풀리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다만 둘 다 여러 해 뒤의 기억입니다.

이것과 다르게 보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에 이 곡의 해설을 쓴 음악학자 데이비드 캐나타는, 작곡가가 직접 쓴 총보(모든 악기의 악보를 한데 적은 악보)의 짜임새를 보면 2·3악장이 먼저 연주된 이유는 먼저 작곡해서가 아니라 그 두 악장의 관현악 파트보(악기마다 제 몫만 따로 옮겨 적은 악보)가 먼저 준비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여기서 정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2·3악장이 먼저 연주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편지는 더 가까운 시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901년 4월 19일, 오늘날 달력으로 5월 2일에 라흐마니노프는 골덴바이제르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내 협주곡의 두 악장을 보낸다.」 그리고 곧이어 「1악장은 토요일까지 끝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봄이 되도록 1악장이 손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곡가의 회고에는 봄까지 1악장을 이미 끝냈다는 말도 있어서, 이 편지와 시점이 어긋납니다. 1악장이 정확히 언제 완성됐는지는 기록만으로 정하기 어렵습니다.

골덴바이제르는 1악장을 처음 들은 자리도 기억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드디어 1악장을 썼다며 그의 집에서 피아노 두 대로 쳐 보였는데, 모인 음악가들의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체로 1악장이 2·3악장에 못 미친다는 평이었고 실로티도 1악장이 다른 악장보다 약하다고 보았다고 적었습니다. 골덴바이제르 자신은 생각이 달랐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전곡 초연을 닷새 앞둔 1901년 10월 22일, 오늘날 달력으로 11월 4일에 라흐마니노프는 모로조프에게 편지를 씁니다. 모로조프가 1악장을 두고 분석한 이야기를 들려준 뒤였습니다.

「첫 주제에서 둘째 주제로 넘어가는 대목이 도무지 좋지 않다. 이런 모양이면 첫 주제는 첫 주제가 아니라 서주다. 내 생각에 이 악장 전체가 망가졌고, 이 순간부터 나는 이 악장이 정말 싫어졌다. 그저 절망이다! 도대체 왜 연주 닷새 전에 너의 분석을 들고 나를 괴롭혔나?」

곡을 여는 주제가 곡을 여는 주제로 들리지 않고 그저 앞머리처럼 들린다는 것, 작곡가가 괴로워한 지점은 바로 거기였습니다. 닷새 뒤 그는 그 1악장을 들고 무대에 섰습니다. 편지를 쓴 뒤 그 연결 대목에 손을 댔는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달 박사에게 바친 협주곡

1901년에 나온 인쇄본 표지 맨 위에는 「A Monsieur N. Dahl」, 곧 N. 달 씨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니콜라이 달은 의사로, 1897년 〈교향곡 1번〉 초연이 실패한 뒤 작곡을 이어 가지 못하던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했습니다. 그 치료가 어떤 방식이었는지는 설명이 갈립니다. 작곡가는 회고에서 반쯤 잠든 채 같은 암시의 말을 매일 들었다고 했고, 자필 악보를 소장한 러시아 국립음악박물관은 그것이 본래 뜻의 최면이 아니라 대화였다고 설명합니다. 그 박물관의 자필 원고 표지에는 같은 헌정 문구 뒤에 한두 단어가 더 쓰여 있었는데, 워낙 꼼꼼히 지워져 무엇이었는지 읽을 수 없다고 합니다. 교향곡의 실패와 달 박사를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생애와 작품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콧수염을 기른 의사 니콜라이 달의 흑백 초상 사진
니콜라이 블라디미로비치 달, 1915년경 사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헌정받은 의사다.
이바놉카 영지에서 라흐마니노프가 사티나 집안 사람들과 함께 모여 찍은 흑백 단체 사진
이바놉카 영지의 라흐마니노프와 사티나 집안 사람들, 1890년대 중반 사진. 사티나 집안은 작곡가의 사촌들이 있던 친척 집안이고, 헌정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달과 이 집안과 자신뿐이었다고 작곡가는 회고했다.

감상 가이드, 피아노가 혼자 서지 않는 협주곡

이 협주곡을 들을 때 하나만 붙잡는다면, 피아노가 오케스트라 앞에 혼자 나서는 순간이 생각보다 적다는 점입니다. 협주곡이라고 하면 독주자가 기교를 뽐내고 오케스트라가 뒤를 받쳐 주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이 곡의 피아노는 그보다 오케스트라와 나란히 걷는 쪽에 가깝습니다.

당시 비평가들도 이 점을 알아챘습니다. 러시아 음악학자 유리 켈디시는 이 곡 해설에서 비평가 니콜라이 카시킨의 평을 인용합니다. 이 곡은 기교를 과시하는 협주곡의 유형에서 벗어나 있고, 피아노는 지배하는 악기가 아니라 동등한 것들 가운데 첫째일 뿐이라는 평입니다. 카시킨은 그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물음으로 남겼습니다. 켈디시가 인용한 작곡가 세르게이 타네예프의 일기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전곡 초연 전날 리허설을 듣고 그는, 피아노가 오케스트라 없이 거의 연주하지 않는다고 트집 잡을 수 있겠느냐고 적었습니다.

귀로도 확인됩니다. 1악장에는 협주곡에서 흔히 기대하는, 피아노 혼자 기교를 펼치는 카덴차(독주자 혼자 연주하는 구간)가 없습니다. 첫 카덴차는 2악장 한가운데, 곡 전체로 보면 거의 절반이 지난 자리에서야 나옵니다.

큰 흐름은 이렇습니다.

1악장은 처음에 말한 대로 피아노 혼자 화음을 되풀이하며 아주 여린 소리에서 아주 큰 소리까지 키워 가며 시작합니다. 낮은 음이 둥둥 울리는 이 대목은 일찍부터 종소리에 빗대어졌습니다. 동시대 작곡가 니콜라이 메트너는 첫 종소리 같은 타격이라 했고, 켈디시는 멀리서 울리는 경종에 견주었습니다. 다만 작곡가가 종을 흉내 내려 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2악장은 느립니다. 한 박을 셋으로 쪼갠 잔잔한 물결 같은 리듬이 끊임없이 깔리고, 그 위에서 주제 하나가 길게 이어집니다. 꽤 긴 악장인데도 주제는 하나뿐이라고 켈디시는 설명합니다. 가운데에 이르면 걸음이 조금 빨라지며 격해지고, 정점에서는 피아노가 여섯 옥타브에 걸쳐 화음을 펼쳐 올립니다. 의회도서관 해설에 따르면 이 악장의 재료는 라흐마니노프가 1891년에 쓴 여섯 손 피아노용 로망스, 곧 세 사람이 피아노 한 대에 나란히 앉아 치는 곡에서 왔습니다.

3악장은 빠르고 장난스럽게 시작합니다. 가운데쯤에는 여러 악기가 같은 주제를 조금씩 늦게 따라 들어가며 얽히는 푸가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끝에 가까워지면 앞에서 서정적으로 흘렀던 둘째 주제가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목관과 현이 겹겹이 같은 선율을 부르고 금관이 화음을 길게 받쳐 주어 찬가처럼 크게 울립니다. 단조로 시작한 곡은 그 뒤 장조로 바뀐 채 빠르게 내달려 끝납니다.

작곡가가 직접 남긴 녹음

이 곡에는 작곡가 본인의 연주가 남아 있습니다. 1929년 4월 10일과 13일, 미국 필라델피아의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서 레오폴드 스토콥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녹음했고, 빅터에서 음반으로 나왔습니다. 마이크 하나를 오케스트라 위에 매달아 녹음했다고 합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2004년 이 녹음을 국가녹음등재 목록에 올렸습니다. 곡을 쓴 사람이 어떤 빠르기와 호흡으로 쳤는지 들을 수 있는 녹음이라 첫손에 꼽습니다. 마이크 하나로 담은 90여 년 전 녹음이라는 점은 감안하고 들으셔야 합니다.

후대 연주를 하나 더 고른다면 스뱌토슬라프 리히터가 스타니스와프 비스워츠키 지휘의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과 함께 1959년 4월 바르샤바에서 녹음한 도이체 그라모폰 음반입니다. 녹음 장소와 날짜, 음반사가 분명하게 확인되어 찾아 듣기 쉬운 녹음입니다. 같은 러시아 레퍼토리로 이어 듣고 싶다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글도 함께 권합니다.

영화와 팝송 속의 2번

이 곡은 공연장 밖에서도 오래 살았습니다. 1945년 영국 감독 데이비드 린이 만든 영화 〈밀회〉는 노엘 코워드의 1936년 희곡 〈Still Life〉를 옮긴 작품인데, 영국영화협회는 이 영화의 정서를 이끄는 요소로 라흐마니노프의 이 협주곡을 꼽습니다.

1975년에는 미국 가수 에릭 카멘이 2악장 선율을 가져다 〈All by Myself〉를 만들었습니다. 카멘은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으니 저작권이 끝났다고 여겼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유족 측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결국 합의에 따라 카멘은 작곡 크레디트를 유족과 나누고 로열티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카멘은 훗날 인터뷰에서 그 선율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은 2015년 KBS 클래식FM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에서 1위에 올랐습니다.

다음에 이 곡을 트실 때는 1악장의 첫 화음들이 끝난 뒤에 귀를 한 번 세워 보시기를 권합니다. 첫 주제가 흘러가다가 둘째 주제로 넘어가는 자리가 옵니다. 초연 닷새 전 작곡가가 첫 주제가 첫 주제가 아니라 서주처럼 들린다며 절망했던 것이 바로 그 연결이었습니다. 그 뒤 그가 이 대목을 고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편지를 알고 나면, 흘려듣기 쉬운 그 몇 초가 새로 귀에 들어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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