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독일 레퀴엠 가사와 해설,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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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레퀴엠은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라는 라틴어 기도로 시작합니다. 「레퀴엠」이라는 이름도 이 기도의 첫 낱말, 「안식」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첫 마디부터 다릅니다. 합창이 독일어로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죽은 이를 위한 라틴어 기도문 대신, 남은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에 무게를 둔 말입니다. 이 곡의 가사는 브람스가 루터가 번역한 성경에서 한 구절씩 직접 골라 엮은 것이고, 그 안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글은 그 가사를 따라 〈독일 레퀴엠〉을 듣는 길을 안내합니다.

1866년 무렵 요하네스 브람스의 흑백 초상 사진
요하네스 브람스, 1866년 무렵 사진. 〈독일 레퀴엠〉의 대부분을 완성한 해다.

독일 레퀴엠 가사, 브람스가 고른 성경 구절

이 곡의 정식 제목은 「성경 말씀에 따른 독일 레퀴엠」입니다. 라틴어 전례문을 쓰지 않고, 브람스가 구약과 신약, 외경까지 넘나들며 루터 번역 성경의 구절을 골라 일곱 악장으로 엮었습니다. 「독일」이라는 말은 우선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부르는 레퀴엠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브람스는 이 제목에 대해 스스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1867년 10월, 이 곡을 브레멘에서 처음 올리려던 브레멘 대성당 오르가니스트 칼 라인탈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가사로 말하자면, 저는 ‘독일’이라는 말을 빼고 그냥 ‘인간’이라고 쓰고 싶다고 고백하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같은 구절도 알고서, 일부러 뺐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로 시작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담은 구절입니다. 그 결과 이 곡의 가사 어디에도 그리스도나 예수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같은 편지에서 브람스는 반대쪽 사정도 털어놓았습니다. 「반면 제가 음악가이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리고 존경하는 시인들에게서 ‘이제부터’라는 말을 따지거나 지울 수 없어서 가져온 것도 많습니다.」 여기서 「이제부터」는 7악장 가사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사람은 복이 있다」의 한 구절입니다. 교리를 앞세우지는 않되, 음악가로서 필요한 말과 성경의 오래된 말은 그대로 두었다는 고백입니다.

가사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처음과 끝을 나란히 놓으면 보입니다. 1악장은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로 시작하고, 7악장은 「주 안에서 죽는 사람은 복이 있다」로 시작해 다시 「복이 있다(selig)」라는 말로 조용히 끝납니다. 슬퍼하는 산 사람에게서 시작해 쉼을 얻은 죽은 사람으로 끝나는 구조입니다. 브람스가 어머니를 잃은 것이 1865년 2월이고, 스승이자 은인 로베르트 슈만을 잃은 것이 1856년이었습니다. 빈에 머물던 브람스는 함부르크에서 온 전보를 받고 서둘러 길을 떠났지만, 어머니의 임종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쯤 뒤인 1865년 4월, 새 곡의 일부를 클라라 슈만에게 보내며 「일종의 독일 레퀴엠 가운데 가장 무난한 부분」이라고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칼벡은 슈만의 작곡 계획 노트에 「독일 레퀴엠」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 곡을 슈만의 죽음과도 잇지만, 오늘날 브람스 전집의 편자들은 이 설을 상당 부분 의문시합니다. 다만 브람스는 이 곡을 어머니를 위해 썼다는 말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고 그의 전기 작가 칼벡은 적습니다.

브레멘 초연과 그리스도의 이름 논쟁

이 가사는 처음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라인탈러는 1867년 10월 5일 편지에서 이 곡이 종교적일 뿐 아니라 온전히 그리스도교적인 바탕 위에 서 있다고 칭찬하면서도, 「그리스도교적 의식에서 모든 것이 그 둘레를 도는 한 점, 곧 주의 구속의 죽음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성금요일 공연에 어울리도록 곡을 넓힐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브람스가 「독일 대신 인간」이라고 쓴 편지는 바로 이 편지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브람스는 가사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1868년 4월 10일 성금요일, 브레멘 대성당에서 브람스가 직접 지휘해 이 곡의 여러 악장을 처음으로 이어서 올렸습니다. 이때는 지금의 5악장이 없는 여섯 악장이었고, 바리톤 독창은 율리우스 슈토크하우젠이 맡았습니다. 칼벡은 2천 명이 넘는 사람이 대성당을 메웠다고 전합니다. 이날은 레퀴엠만 연주한 것이 아니라 성금요일 음악회의 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레퀴엠 앞 세 악장 뒤에 요제프 요아힘이 바흐와 타르티니의 느린 악장, 슈만의 〈저녁 노래〉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했고, 나머지 악장이 이어진 뒤에는 다른 작곡가의 곡들이 붙었습니다. 칼벡에 따르면 요아힘의 부인 아말리에가 남편의 바이올린과 함께 바흐 〈마태수난곡〉의 아리아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를 불렀고, 이어 헨델 〈메시아〉의 「내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를 불렀습니다. 마지막은 〈메시아〉의 할렐루야 합창이었습니다. 칼벡이 전하는 브람스 자신의 말에 따르면, 브레멘 대성당은 그 뒤에도 이 곡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다는 점을 이런 삽입곡으로 채운다는 조건으로만 교회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높은 고딕 아치와 기둥이 늘어선 브레멘 성 페트리 대성당 내부
브레멘 성 페트리 대성당 내부, 2024년 촬영(사진 Ad Meskens, CC BY-SA 4.0). 1868년 4월 10일 성금요일 이곳에서 〈독일 레퀴엠〉의 여섯 악장이 처음으로 이어서 연주되었다.

객석에 있던 클라라 슈만은 그날 일기에 「이 레퀴엠은 지금까지 어떤 교회음악도 그러지 못한 만큼 나를 사로잡았다」고 적었습니다. 지휘봉을 든 브람스를 보면서, 그가 언젠가 합창과 오케스트라라는 「마법 지팡이」를 쥐게 될 것이라던 남편 로베르트의 예언이 오늘 이루어졌다고도 썼습니다.

브람스 독일 레퀴엠 해설, 일곱 악장의 큰 흐름

전곡은 연주에 따라 65분에서 80분 정도 걸립니다. 합창이 중심이고, 바리톤 독창이 3악장과 6악장에, 소프라노 독창이 5악장에 나옵니다. 처음 들을 때는 일곱 악장의 순서를 외울 필요 없이, 느리고 어두운 곳에서 시작해 점점 밝아지고 마지막에 처음의 말로 돌아온다는 큰 흐름만 따라가면 됩니다.

1악장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바이올린 없이 시작합니다. 이 악장은 총보에서 바이올린 파트가 아예 빠져 있고, 비올라와 첼로가 낮게 깔린 위에 합창이 아주 여리게 들어옵니다. 소리가 어둡고 부드러운 것은 이 편성 때문입니다. 하프가 들어오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빛이 듭니다.

2악장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는 장송 행진입니다. 악보 첫머리에도 「천천히, 행진곡풍으로(Langsam, marschmäßig)」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행진인데도 세 박자여서 걸음이 무겁게 끌립니다. 브람스의 친구 알베르트 디트리히는 이 첫머리가 1854년 브람스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쓴 d단조 소나타의 「느린 스케르초」에서 왔다고 증언했습니다.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진 바로 그해입니다. 그 소나타의 재료는 뒤에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옮겨 갔습니다. 같은 선율이 거듭 커지며 쌓이다가, 끝에서 「주께서 구속하신 자들이 돌아오리라」라는 구절과 함께 빠르고 밝은 합창으로 바뀝니다.

3악장 「주여, 나의 끝을 알게 하소서」에서는 바리톤이 처음 나와 자기 삶이 손 한 뼘 같다고 노래합니다. 악장 끝에서는 오케스트라 맨 아래에서 D음 하나가 길게 버티고, 그 위에서 합창이 「의인의 영혼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를 푸가로 쌓아 올립니다. 낮은 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위의 소리가 단단한 바닥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4악장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는 일곱 악장 가운데 가장 짧고 따로 떼어 불리는 일이 많은 악장입니다. 세 박자의 흔들리는 선율이 편안해서 장례나 추모 예배에서도 자주 쓰입니다. 2002년 영국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장례식에서도 이 악장이 영어로 불렸습니다.

5악장 「너희가 지금은 슬퍼하나」는 브레멘 초연 뒤 1868년 5월 무렵 덧붙인 악장입니다. 이 악장만 먼저 그해 9월 17일 취리히에서 소프라노 이다 주터베버와 프리드리히 헤가르 지휘의 톤할레 오케스트라가 처음 연주했습니다. 소프라노가 높고 맑게 위로를 건네고, 합창이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라고 받습니다. 친구 헤르만 다이터스는 브람스가 이 대목을 들려주며 자기 어머니를 생각했다고 내비쳤다고 전했습니다.

6악장 「우리는 여기 영원한 도성이 없고」는 이 곡에서 가장 극적인 악장입니다. 바리톤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라고 예고하면,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빨라지며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외칩니다. 어두운 c단조의 소용돌이가 밝은 C장조 푸가로 바뀌는 대목이 전곡의 절정입니다.

7악장 「주 안에서 죽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다시 느리고 평온해집니다. 낮게 깔린 F음 위에서 첼로가 머뭇거리듯 한 걸음씩 올라가면, 곧바로 합창 소프라노가 「복이 있다」를 부르며 들어옵니다. 끝에 가까워지면 1악장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돌아오고, 하프와 함께 「복이 있다」라는 처음의 말로 사라집니다. 처음에 슬퍼하던 사람에게 건넨 말이 끝에서 쉬는 사람에게 다시 건네지는 셈입니다.

독일 레퀴엠 가사 전문과 우리말 뜻

아래는 악보에 실린 독일어 가사와 우리말 뜻입니다. 우리말은 루터 성경의 독일어 가사를 직접 옮긴 것이라 우리말 성경 번역과 표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곡에 쓰인 시편 가운데 39편과 84편은 루터 성경이 표제를 1절로 세기 때문에 우리말 성경보다 절 번호가 하나씩 큽니다(1악장의 시편 126편은 같습니다). 음악에서 같은 구절을 되풀이하는 곳은 2악장의 반복만 따로 적었습니다.

악장 독일어 가사 우리말 뜻 성경
1악장 · 합창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östet werden.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5:4
Die mit Tränen säen, werden mit Freuden ernten. Sie gehen hin und weinen und tragen edlen Samen, und kommen mit Freuden und bringen ihre Garben.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둘 것이다. 울며 귀한 씨를 들고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 돌아올 것이다. 시편 126:5~6
2악장 · 합창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und alle Herrlichkeit des Menschen wie des Grases Blumen. Das Gras ist verdorret und die Blume abgefallen.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졌다. 베드로전서 1:24
So seid nun geduldig, lieben Brüder, bis auf die Zukunft des Herrn. Siehe, ein Ackermann wartet auf die köstliche Frucht der Erde und ist geduldig darüber, bis er empfahe den Morgenregen und Abendregen. 사랑하는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참으라. 보라, 농부는 땅의 귀한 열매를 기다리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참는다. 야고보서 5:7
So seid geduldig.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 Das Gras ist verdorret und die Blume abgefallen. 그러니 참으라. (이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대목이 처음처럼 한 번 더 되풀이된다.) 야고보서 5:7 · 베드로전서 1:24 (반복)
Aber des Herrn Wort bleibet in Ewigkeit. 그러나 주의 말씀은 영원히 남는다. 베드로전서 1:25
Die Erlöseten des Herrn werden wiederkommen und gen Zion kommen mit Jauchzen; ewige Freude wird über ihrem Haupte sein; Freude und Wonne werden sie ergreifen und Schmerz und Seufzen wird weg müssen. 주께서 구속하신 사람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며, 슬픔과 탄식은 물러갈 것이다. 이사야 35:10
3악장 · 바리톤과 합창 Herr, lehre doch mich, daß ein Ende mit mir haben muß, und mein Leben ein Ziel hat, und ich davon muß. Siehe, meine Tage sind einer Hand breit vor dir, und mein Leben ist wie nichts vor dir. 주여, 나의 끝이 있고 내 삶에 한계가 있어 내가 떠나야 함을 알게 하소서. 보소서, 주 앞에서 내 날은 한 뼘 길이이고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편 39:4~5 (루터 39:5~6)
Ach, wie gar nichts sind alle Menschen, die doch so sicher leben. Sie gehen daher wie ein Schemen und machen ihnen viel vergebliche Unruhe; sie sammeln und wissen nicht, wer es kriegen wird. Nun Herr, wes soll ich mich trösten? Ich hoffe auf dich. 그토록 든든히 사는 듯한 사람들도 모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림자처럼 지나가며 헛되이 애쓰고, 모아 두지만 누가 가질지 모릅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으로 위로를 받겠습니까. 나는 주를 바랍니다. 시편 39:6~7 (루터 39:7~8)
Der Gerechten Seelen sind in Gottes Hand und keine Qual rühret sie an. 의인의 영혼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어떤 고통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한다. 지혜서 3:1 (외경)
4악장 · 합창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Herr Zebaoth! Meine Seele verlanget und sehnet sich nach den Vorhöfen des Herrn; mein Leib und Seele freuen sich in dem lebendigen Gott. Wohl denen, die in deinem Hause wohnen, die loben dich immerdar. 만군의 주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주의 뜰을 사모하여 그리워하고, 내 몸과 영혼이 살아 계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주의 집에 사는 사람은 복이 있으니 언제나 주를 찬양합니다. 시편 84:1·2·4 (루터 84:2·3·5)
5악장 · 소프라노와 합창 Ihr habt nun Traurigkeit; aber ich will euch wiedersehen, und euer Herz soll sich freuen, und eure Freude soll niemand von euch nehmen. 너희가 지금은 슬퍼하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복음 16:22
Sehet mich an: Ich habe eine kleine Zeit Mühe und Arbeit gehabt und habe großen Trost funden. 나를 보라. 내가 잠시 수고하고 애썼더니 큰 위로를 얻었다. 집회서 51:35 (외경, 브람스가 쓴 루터 성경 기준 · 현대 번역본은 51:27)
Ich will euch trösten, wie einen seine Mutter tröstet.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이사야 66:13
6악장 · 바리톤과 합창 Denn wir haben hie keine bleibende Statt, sondern die zukünftige suchen wir. 우리는 여기에 머물 도성이 없고 앞으로 올 도성을 찾는다. 히브리서 13:14
Siehe, ich sage euch ein Geheimnis: Wir werden nicht alle entschlafen, wir werden aber alle verwandelt werden; und dasselbige plötzlich, in einem Augenblick, zu der Zeit der letzten Posaune.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한다. 우리가 다 잠들지는 않고 다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그리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51~52
Denn es wird die Posaune schallen, und die Toten werden auferstehen unverweslich, und wir werden verwandelt werden. Dann wird erfüllet werden das Wort, das geschrieben steht: Der Tod ist verschlungen in den Sieg. Tod, wo ist dein Stachel? Hölle, wo ist dein Sieg?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죽은 사람들이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될 것이다. 그때 「죽음이 승리에 삼켜졌다」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죽음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지옥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고린도전서 15:52, 54~55
Herr, du bist würdig, zu nehmen Preis und Ehre und Kraft, denn du hast alle Dinge erschaffen, und durch deinen Willen haben sie das Wesen und sind geschaffen. 주여, 주는 찬양과 영광과 능력을 받으시기에 마땅합니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고, 주의 뜻으로 만물이 있고 지음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 4:11
7악장 · 합창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n sterben, von nun an. Ja, der Geist spricht, daß sie ruhen von ihrer Arbeit; denn ihre Werke folgen ihnen nach.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사람은 복이 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니 그들의 행한 일이 그들을 따른다. 요한계시록 14:13

마지막 6악장의 고린도전서 대목은 15장 55절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에서 멈춥니다. 바로 다음 56절을 건너뛰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는 57절에도 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오는 절까지 가지 않고 가사를 끊은 셈이고, 이 점은 이 곡을 다룬 프로그램 해설에서도 자주 짚는 대목입니다.

독일 레퀴엠 초연, 빈·브레멘·취리히·라이프치히와 9·11 추모 연주

이 곡이 처음 사람들 앞에 나온 것은 브레멘보다 넉 달 앞선 1867년 12월 1일 빈이었습니다. 요한 헤르베크의 지휘로 앞의 세 악장만 연주했는데, 칼벡에 따르면 연주장에 오르간이 없어서 3악장 끝의 긴 D음을 팀파니 주자가 혼자 떠맡아 너무 세게 두드리는 바람에 푸가가 들리지 않았고, 객석에서는 야유가 나왔습니다. 급행열차를 타고 긴 터널을 덜컹거리며 지나는 기분이었다는 감상도 전합니다. 브람스는 라인탈러에게 「이곳 공연이 오히려 큰 의욕을 주었다, 보도에 흔들리지 마시라」고 썼습니다.

1870년 무렵 라이프치히 구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장 내부를 그린 그림
라이프치히 구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장, 1870년 무렵, 베르타 베네르트-베크만 촬영(그림 복제), 라이프치히 시립역사박물관 소장. 1869년 2월 18일 이곳에서 일곱 악장 전곡이 처음 연주되었다.

소프라노 악장이 더해진 일곱 악장 전곡은 1869년 2월 1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카를 라이네케의 지휘로 처음 연주되었습니다. 브람스는 칸타타 〈리날도〉 초연 준비 때문에 그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칼벡에 따르면 이날 라이프치히의 평은 크게 엇갈렸고, 출판업자 리터비더만이 비평에 분개하자 브람스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이 곡으로 브람스의 이름은 독일어권 전체에 알려졌지만, 모두가 좋아한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1890년 음악 평론에서 「그의 레퀴엠은 시체만이 참을성 있게 견딘다」고 비꼬았습니다.

오케스트라 없이 연주된 판도 있습니다. 1871년 7월 런던의 한 외과의사 집 응접실에서 브람스 자신이 만든 피아노 네 손 편곡을 반주 삼아 이 곡이 영국에 처음 소개되었고, 이 편성은 오늘날 「런던판」이라는 이름으로 녹음되어 있습니다. 2001년 9월 20일에는 쿠르트 마주어와 뉴욕 필하모닉이 세계무역센터 희생자를 추모하며 시즌 개막 공연 대신 이 곡을 연주했고, 미국 전역에 중계되었습니다. 남은 사람을 위로하는 노래라는 성격이 그대로 쓰인 자리였습니다.

브람스 독일 레퀴엠 추천 음반과 런던판

오토 클렘퍼러 지휘, 필하모니아 관현악단과 합창단,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EMI, 1961년 런던 킹스웨이 홀 녹음). 템포가 느리고 무거워서 2악장 장송 행진의 걸음이 가장 크게 들립니다.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과 빈 징페어라인, 군둘라 야노비츠, 에버하르트 베히터(DG, 1964년 빈 무지크페라인 녹음). 합창과 현악의 소리가 매끄럽게 이어지고 4악장이 특히 부드럽습니다. 대신 3·6악장의 거친 대목도 둥글게 다듬어져 들립니다.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오르케스트르 레볼뤼시오네르 에 로망티크(Philips, 1990년 녹음). 19세기 악기로 연주해 소리가 가볍고 투명하며, 1악장의 낮은 현과 하프가 또렷하게 갈라져 들립니다.

런던판, 로랑스 에킬베 지휘, 악상투스 합창단, 피아노 브리지트 앙제레르와 보리스 베레좁스키(Naïve, 2003년 파리 녹음).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 반주로 부르는 판인데, 원래 한 대에서 치던 네 손 편곡을 두 대로 나눠 연주했습니다. 피아노 반주라 가사와 각 성부가 또렷하게 들리는 편입니다. 위의 가사 표를 보며 듣기에 좋습니다.

1868년 브레멘 초연 재현, 켄트 나가노 지휘, 함부르크 필하모닉 국립 오케스트라, 메조소프라노 케이트 린지, 바리톤 요한 크리스틴손, 바이올린 베로니카 에베를레(BIS, 2022년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녹음, 2025년 발매). 5악장이 없는 당시의 여섯 악장에, 그날 함께 연주된 바흐·타르티니·슈만의 바이올린 곡과 바흐 「불쌍히 여기소서」, 〈메시아〉의 곡들까지 그날 순서대로 담았습니다. 앞에서 읽은 브레멘의 성금요일을 그대로 들어 볼 수 있는 음반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독일 레퀴엠 가사는 어디서 왔나요?

브람스가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에서 직접 골랐습니다. 구약의 시편·이사야, 신약의 마태복음·요한복음·고린도전서·히브리서·야고보서·베드로전서·요한계시록, 외경인 지혜서와 집회서에서 구절을 가져왔고, 라틴어 미사 전례문은 쓰지 않았습니다.

Q. 왜 독일 레퀴엠이라고 부르나요?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어 성경 구절로 부르는 레퀴엠이기 때문입니다. 브람스는 편지에서 「독일」 대신 「인간」이라고 쓰고 싶다고 했고, 이 말은 오랫동안 특정 나라나 교파보다 사람 모두를 향한 위로를 뜻하는 말로 읽혀 왔습니다. 다만 루터 성경과 신학의 배경을 더 무겁게 보는 연구도 있습니다.

Q. 몇 악장이고 얼마나 걸리나요?

일곱 악장이고 연주 시간은 연주에 따라 65분에서 80분 정도입니다. 독창은 바리톤이 3·6악장, 소프라노가 5악장에 나옵니다.

Q. 어머니를 위해 쓴 곡인가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1865년 뒤에 곡을 마무리했고, 5악장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하듯」 대목에서 어머니를 생각했다는 친구의 전언도 있습니다. 브람스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99년, 마이닝겐의 브람스 기념비 제막식에서 요제프 요아힘은 이 곡을 두고 「예술사 전체에서 이보다 고귀한 효심의 기념비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브람스는 어머니를 위해 썼다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Q. 초연은 언제였나요?

지금의 5악장을 뺀 여섯 악장은 1866년 8월까지 대부분 완성되었습니다. 앞의 세 악장은 1867년 12월 1일 빈에서, 5악장이 없는 여섯 악장은 1868년 4월 10일 브레멘 대성당에서 브람스의 지휘로, 5악장은 따로 1868년 9월 17일 취리히에서, 일곱 악장 전곡은 1869년 2월 1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처음 연주되었습니다.

다음에 이 곡을 들을 때는 첫 소리에 바이올린이 없다는 것과, 마지막 「selig」가 1악장 첫 단어 「Selig」로 돌아온다는 것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한 시간 남짓 동안 슬퍼하는 사람에게서 쉬는 사람에게로 건너가는 길이 그 두 단어 사이에 있습니다. 브람스의 다른 이야기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생애와 작품과 브람스 교향곡 1번 해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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