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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헨델 〈왕궁의 불꽃놀이〉 HWV 351, 왜 녹음마다 소리가 다를까: 남아 있는 두 편성

    〈왕궁의 불꽃놀이〉를 음반으로 두 장쯤 들어 보면 금세 이상한 데가 눈에 띕니다. 어떤 녹음에서는 바이올린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데, 어떤 녹음에서는 관악기와 타악기만 울립니다. 연주자가 취향대로 고른 결과가 아닙니다. 이 곡에는 서로 다른 편성이 둘 남아 있고, 오늘 나와 있는 음반은 그 둘로 갈립니다.

    곡 한눈에 보기
    •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작품번호와 조성: HWV 351, 라장조
    • 작곡: 1749년
    • 초연: 1749년 4월 27일, 런던 그린 파크
    • 구성: 서곡, 부레, 평화(La Paix), 환희(La Réjouissance), 미뉴에트 두 곡

    왜 같은 곡인데 녹음마다 소리가 다를까

    초연 때의 편성과 한 달 뒤의 편성이 둘 다 악보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먼저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말하는 편성은 누가 나중에 회고한 이야기가 아니라 헨델이 직접 쓴 총보에 적힌 숫자입니다. 이 곡을 둘러싼 다른 이야기들과 근거의 급이 다릅니다.

    총보가 최종적으로 요구하는 편성은 오보에 24, 바순 12, 트럼펫 9, 호른 9, 그리고 팀파니 세 쌍과 작은 북입니다. 바순 열둘 가운데 하나는 콘트라바순입니다. 오보에 스물넷이라는 숫자가 낯설게 들리겠지만 이것은 실내악의 셈법이 아닙니다. 같은 성부를 여럿이 겹쳐 불어 소리를 멀리 보내는 야외 악대의 셈법입니다.

    이 숫자가 왜 필요했는지는 그날의 자리를 보면 짐작이 갑니다. 1749년 4월 27일 저녁, 런던의 공원 한복판에는 길이 410피트, 높이 114피트짜리 나무 구조물이 서 있었습니다. 겉은 돌로 지은 도리스식 신전처럼 보였지만 실제 재료는 나무와 회칠한 캔버스였습니다. 벽도 천장도 없는 야외에서, 저만한 크기의 구조물을 앞에 두고 소리를 채워야 하는 편성이었습니다.

    공원에 세워진 거대한 목조 구조물을 정면에서 그린 18세기 판화입니다. 가운데에 기둥이 늘어선 신전 모양의 본체가 서 있고 그 꼭대기에 왕실 문장이 얹혀 있으며, 좌우로 낮은 아치 회랑이 길게 뻗어 각각 끝에 작은 정자 모양의 파빌리온으로 마무리됩니다. 앞쪽 잔디밭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불꽃놀이를 위해 공원에 세운 목조 구조물을 저수지 쪽에서 바라본 그림이다. 앞쪽 울타리 곁의 사람들과 견주어 보면 가운데 본체와 좌우로 뻗은 회랑의 크기가 가늠된다.

    참고로 이 곡에 따라다니는 트럼펫 40, 호른 20 같은 큰 숫자는 실제 편성이 아닙니다. 그 숫자는 행사 석 달 전인 1749년 1월 런던의 한 잡지가 실은 사전 예고 기사에 나옵니다. 소문 단계의 계획이 활자가 되어 남은 것이고, 총보의 숫자와는 계열이 다릅니다. 둘을 한 문장에 섞으면 없던 편성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5월 27일, 헨델은 파운들링 병원 자선 연주회에서 이 곡을 다시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현악기가 들어갔습니다. 악보에 남은 지시를 보면 바이올린이 오보에 성부를,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바순 성부를 맡고, 비올라는 낮은 관악 성부나 베이스 성부를 따라갑니다. 오늘 우리가 음반과 연주회에서 만나는 〈왕궁의 불꽃놀이〉는 대개 이쪽 계열입니다. 처음에 말한 두 소리는 여기서 갈립니다.

    바이올린은 왜 빠졌다가 돌아왔을까

    국왕이 군악기만 쓰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오간 자리가 편지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병기국 총재였던 몬터규 공작이 불꽃놀이 감독관 찰스 프레더릭에게 보낸 1749년 3월 28일 자 편지입니다. 철자가 지금 기준으로 엉망인데, 이것은 옮겨 적으며 생긴 오류가 아니라 공작이 원래 그렇게 쓴 것입니다.

    “헨델은 이제 트럼펫 12에 프렌치 호른 12만 쓰겠다고 하는 것 같소. 처음에는 각각 열여섯이었지요. 내가 왕께 그렇게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그때 왕께서는 음악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하셨는데, 군악기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말씀드리자 한결 흡족해하시며 바이올린은 없기를 바란다고 하셨소. 그런데 지금 헨델은 트럼펫 수를 줄이고 바이올린을 넣겠다고 하는군요. 왕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몹시 언짢아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편지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왕을 확실히 만족시키려면 군악기 외의 악기는 하나도 들어가서는 안 되며, 그러니 헨델은 바이올린을 물리지 않더라도 트럼펫과 군악기를 최대한 많이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헨델이 바이올린을 빼야 마땅하지만, 그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고요.

    이것이 왕 한 사람의 취향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은 행사 공식 인쇄물에서도 드러납니다. 병기국이 국왕의 명으로 펴낸 1749년 인쇄물은 헨델의 곡을 그냥 서곡이라 부르지 않고 전쟁 악기들의 대서곡이라고 부릅니다. 군사 악기 편성은 뒷이야기가 아니라 그날 행사 문서에 박힌 곡의 이름 자체였습니다.

    열흘 남짓 뒤인 4월 9일 편지에서는 압박이 훨씬 노골적으로 바뀝니다. 쟁점은 복스홀 정원에서 공개 리허설을 할 것인가였습니다. 정원 주인이 등불과 램프 일습에 하인 서른 명까지 빌려주겠다고 나선 조건이 헨델의 서곡을 거기서 예행 연주하는 것이었는데, 헨델이 계속 거절하자 공작은 이렇게 씁니다. “헨델이 국왕에 대한 충성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겠다면, 나는 그의 서곡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고 다른 사람 것을 구하도록 조치하겠소.”

    편지를 따라가면 다툼의 성격이 보입니다. 트럼펫과 호른의 수는 각각 열여섯에서 열둘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홉까지 내려갑니다. 그 숫자가 내려가는 동안에도 헨델은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는 편지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그다음부터는 해석입니다. 팩시밀리 악보를 편집한 연구자는 헨델이 이 협상에서 시간을 벌고 있었다고 봅니다. 애초에 예고된 규모로는 악곡이 성립할 수 없었고, 군악대에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연주자가 그만큼 없었으리라는 것입니다.

    편지의 결말은 악보 위에 있습니다. 뒤쪽 악장들에는 현악기가 관악 성부를 함께 연주하라는 지시가 적혔다가 지워졌습니다. 왕이 바라던 대로 그날 밤 바이올린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헨델은 그 지시를 애초에 적어 두었고, 지운 자국은 남았습니다. 같은 총보의 콘트라바순 자리에도, 당시 야외 악대에서 저음을 받치던 구불구불한 목관 세르팡(serpent)을 적었다가 지운 흔적이 있습니다.

    이 곡이 〈수상음악〉과 자주 나란히 놓이면서도 소리의 성격이 전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상음악〉에는 현이 있고, 이 곡의 초연에는 없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들으면 되는가

    〈환희〉에서 트럼펫 아래를 들으면 됩니다. 이 악장은 이 곡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이고, 처음 들을 때는 앞으로 나온 트럼펫이 같은 형태를 반복하는 인상만 남습니다. 두 번째로 들을 때 그 아래에서 오보에와 바순 무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층 아래에 두꺼운 층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 잡히면, 오보에 스물넷이라는 숫자가 왜 필요했는지가 그 자리에서 이해됩니다.

    〈서곡〉은 프랑스풍 서곡의 틀을 그대로 씁니다. 느리고 위엄 있는 도입부가 점을 찍는 리듬으로 걸어 나오다가 빠른 부분으로 넘어가고, 다시 한 번 느려졌다가 빠르게 마무리됩니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트럼펫 무리와 호른 무리가 서로를 받아 넘기는 대목입니다. 한 대와 한 대가 아니라 아홉 대와 아홉 대가 덩어리로 주고받기 때문에, 소리가 좌우로 옮겨 다니는 것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부레〉는 짧습니다. 큰 소리를 한참 낸 뒤에 잠깐 숨을 고르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됩니다. 바로 이어지는 〈평화〉는 이 모음곡에서 가장 조용한 곡입니다. 시칠리아나 특유의 흔들리는 박 위로 호른이 긴 음을 늘어뜨리는데, 대포와 불꽃을 앞둔 행사의 음악 한가운데에 이 악장이 놓여 있습니다. 이 행사가 기념한 것은 전쟁의 끝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들으면 이 악장의 자리가 달리 보입니다.

    마지막은 미뉴에트 두 곡입니다. 하나는 단조이고 하나는 장조인데, 이 판본을 만든 연구자는 단조 미뉴에트가 나중에 덧붙었고 장조 미뉴에트의 가운데 대비 부분 구실을 하도록 쓰였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대목은 밝은 곡, 어두운 곡, 다시 밝은 곡의 순서로 들으면 짜임이 자연스럽게 잡힙니다.

    여유가 되면 다른 계열의 녹음을 한 장 더 들어 볼 만합니다. 오늘 유통되는 음반은 대개 현악이 든 쪽이고, 관악만으로 연주한 녹음도 나와 있습니다. 같은 〈환희〉를 이어서 들으면 바이올린이 오보에 성부에 얹히면서 안쪽 결이 달라지는 것이 잡힙니다. 초연과 한 달 뒤가 갈리는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그런데 이 곡에는 이상한 빈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리허설에도 본 행사에도 수많은 사람이 왔고 신문과 잡지와 개인 편지가 그날을 상세히 전하는데, 헨델의 음악이 어땠는지 적은 문장은 공적 기록에도 사적 기록에도 없습니다.

    18세기 동판화입니다. 화면 가운데에 기둥과 아치로 이루어진 신전 모양의 긴 구조물이 서 있고 그 꼭대기 위로 긴 장대에 얹힌 해 모양 장식이 솟아 있으며, 좌우로 낮은 아치 회랑이 뻗어 각각 끝에 지붕이 얹힌 파빌리온으로 마무리됩니다. 앞쪽 넓은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작게 그려져 있고, 그림 아래에는 각 부분에 번호를 붙여 설명하는 글이 여러 줄 인쇄되어 있습니다.

    행사를 위해 세운 구조물을 정면에서 길게 펼쳐 그린 판화다. 가운데 본체 위로 긴 장대에 얹힌 해 모양 장식이 하나 솟아 있다.

    그날의 광경은 이렇게 판화로도 남았습니다. 그림 아래에는 구조물의 어느 자리가 무엇인지 번호를 붙여 짚어 놓은 설명까지 딸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울린 소리를 적어 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곡에 관해 우리에게 남은 문서는 헨델의 악보뿐이라고, 팩시밀리 서문은 그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읽어서 확인할 수 없고 들어서 확인해야 합니다. 왕이 원한 소리는 총보의 숫자에, 헨델이 적어 둔 소리는 지워진 자국에 남아 있습니다.

  • 멘델스존 헤브리디스 서곡(핑갈의 동굴) 완전 분석 — 작곡 배경과 음악적 특징

    1829년 8월 7일 저녁, 스코틀랜드 멀섬의 항구 마을 토버모리(Tobermory)의 숙소에서 스무 살의 펠릭스 멘델스존은 누이 파니에게 편지를 씁니다. 편지 안에는 훗날 낭만주의 관현악의 걸작이 될 ‘헤브리디스 서곡’의 도입부 21마디가 적혀 있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이 곡의 씨앗을 오선지에 옮긴 날이 실제로 핑갈의 동굴을 마주하기 하루 전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작품의 출발점은 특정 풍경의 단순한 묘사라기보다, 이미 그의 내면에서 형성되고 있던 북방의 바다 이미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작품 개요: 낭만주의가 그려낸 최고의 풍경화

    멘델스존의 헤브리디스 서곡(Die Hebriden, Op.26)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넘어, 음악이 풍경의 인상을 어떻게 소리로 구현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핑갈의 동굴 서곡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이 곡은 훗날 리스트나 시벨리우스로 이어지는 표제적 관현악 전통을 예고한 선구적 작품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서곡과 연주회용 서곡의 차이점]

    멘델스존 헤브리디스 서곡의 영감이 된 스코틀랜드 스태파섬 핑갈의 동굴 전경
    스태파섬 핑갈의 동굴 전경 (출처: britannica.com)
    멘델스존 헤브리디스 서곡의 영감이 된 스코틀랜드 스태파섬 핑갈의 동굴 내부
    스태파섬 핑갈의 동굴 내부 (출처: geologyscience.com)

    그날의 여정 — 오반을 지나 토버모리로

    멘델스존과 동행한 친구 클링게만은 1829년 8월 7일 하루 동안 포트윌리엄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오반(Oban)을 거쳤고, 다시 오반에서 배를 갈아타 멀섬의 토버모리에 닿았습니다. 멘델스존이 오반 근처 더놀리 성을 스케치한 것도 바로 이날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토버모리의 숙소에서 파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정작 스태파섬과 핑갈의 동굴로 배를 타고 들어간 것은 이튿날인 8월 8일이었습니다. 즉 그 유명한 도입부 선율은 동굴을 눈으로 보기 전에 이미 종이 위에 있었던 셈입니다.

    2. 핑갈(Fingal)과 오시안 열풍 — 신화와 위작 사이

    이 곡의 부제인 ‘핑갈의 동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럽을 휩쓴 ‘오시안(Ossian) 열풍’을 알아야 합니다. 시인 제임스 맥퍼슨은 고대 게일어 서사시를 번역했다고 주장하며 주인공 ‘핑갈’의 이야기를 발표했습니다. 비록 나중에 상당 부분 창작된 위작이라는 논란에 휩싸였지만, 나폴레옹과 괴테가 열광할 만큼 낭만주의자들에게 이 안개 낀 켈트 신화는 거대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멘델스존 역시 이 신비로운 북방의 서사시를 가슴에 품고 헤브리디스 제도로 향했습니다.

    3. 자연의 대성당: 주상절리가 빚어낸 음향 구조

    스태파섬에 위치한 핑갈의 동굴은 약 6,000만 년 전 용암이 식으며 형성된 6각형 현무암 기둥(주상절리)이 빼곡하게 늘어선 곳입니다. 이 기하학적 완벽함은 자연스럽게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과 같은 공명 구조를 만듭니다. 게일어 명칭이 ‘음악의 동굴’로 해석된다는 점도 이런 인상을 뒷받침합니다. 파도와 공명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향은 멘델스존에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소리로 체험되는 공간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동굴의 실제 규모와 이름

    핑갈의 동굴은 팔레오세(약 6,600만~5,600만 년 전)의 용암류가 식으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용암이 위아래 표면부터 식으며 수축해 갈라질 때 처음에는 네모난 모양으로 쪼개지다가 점차 규칙적인 6각형 균열로 옮겨 가는데, 그 결과가 지금의 기둥 숲입니다. 북아일랜드의 자이언츠 코즈웨이가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형제 같은 지형입니다.

    동굴의 크기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깊이는 45~85m, 높이는 20~23m 범위로 기록됩니다. 게일어 이름은 An Uaimh Bhinn(우아브 빈)으로, ‘선율이 아름다운 동굴’ 곧 ‘음악의 동굴’이라는 뜻입니다. 파도가 기둥 사이에서 울리는 소리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4. 3년의 산고: “고래기름 냄새가 나지 않는다”

    멘델스존은 이 곡을 완성하기 위해 무려 3년의 시간을 쏟았습니다. 1830년에 쓴 초판 제목은 ‘고독한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이 파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초고를 다음과 같이 혹평하며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중간 부분의 D장조는 몹시 어리석습니다. 발전부 전체가 고래기름이나 갈매기, 절인 대구 냄새보다는 대위법 냄새만 가득합니다.”

    그는 학구적인 기교를 덜어내고 바다의 거친 생동감을 담기 위해 집요하게 개작했습니다. 결국 1832년 런던에서 모차르트의 제자인 토머스 애트우드의 지휘로 초연되었고, 동시대 청중과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서 바람, 파도, 바닷새를 연상시키는 강한 해양적 인상을 읽어냈습니다.

    초판에서 출판까지 — 날짜로 보는 개작의 여정

    • 1830년 12월 16일 · 로마에서 첫 완성본을 끝냅니다. 이때 제목이 Die einsame Insel(고독한 섬)이었습니다.
    • 1832년 1월 · 파리에서 파니에게 위의 ‘고래기름’ 편지를 보냅니다. 문제 삼은 대목은 중간부의 D장조였습니다.
    • 1832년 5월 14일 · 런던 필하모닉 협회 연주회에서 초연됩니다. 지휘자는 협회의 창립 회원이자 이사였던 토머스 애트우드였습니다. 애트우드는 1785년부터 약 2년간 빈에서 모차르트에게 배운 영국인 제자입니다.
    • 1832년 6월 20일 · 최종 개정을 마칩니다. 런던 초연 뒤에도 한 달 넘게 더 손을 봤다는 뜻입니다.
    • 1833년 1월 10일 · 베를린 초연에서는 작곡가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이해에 Op.26으로 출판됩니다.

    5. 음악적 분석: 파도의 일렁임과 사라짐

    곡은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 안의 감수성은 철저히 낭만적입니다.

    • 제1주제 (B단조): 비올라와 첼로, 바순이 낮은 음역에서 시작하는 하행 선율은 동굴로 밀려드는 무겁고 신비로운 파도를 형상화합니다.
    • 제2주제 (D장조): 3도 전조를 통해 밝게 전환되는 이 부분은 수평선 너머로 펼쳐지는 광활한 바다의 서정성을 담고 있습니다.
    • 코다 (마무리): 음악은 갑자기 멈추지 않고 서서히 멀어집니다. 클라리넷의 고독한 선율과 현악기의 피치카토는 마치 배가 안개 속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듯한 여운을 남깁니다.

    6. 예술적 연결: 터너의 회화와 스코틀랜드 교향곡

    이 서곡은 동시대 화가 J.M.W. 터너의 풍경화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터너의 그림에서 형태가 안개 속에 녹아들 듯, 멘델스존 역시 화성과 음색의 층을 쌓아 ‘분위기(Atmosphere)’를 창조했습니다. 또한 이 곡은 같은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스코틀랜드 교향곡 3번’과 형제 같은 관계입니다. 서곡이 짧은 시(詩)라면, 교향곡은 그 여정을 장편 소설로 확장한 결과물입니다.

    터너도 같은 동굴에 갔다 — 1832년 런던의 우연

    이 닮음은 비유에 그치지 않습니다. 터너는 1831년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며 토버모리에서 배를 타고 스태파섬에 들어갔습니다. 멘델스존이 같은 곳에 닿은 1829년에서 2년 뒤이고, 두 사람이 배를 탄 항구도 같습니다. 그 여행의 결과물인 유화 《스태파, 핑갈의 동굴》1832년 봄 런던에서 전시돼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14일, 같은 도시에서 멘델스존의 서곡이 초연됩니다. 서로 약속한 적 없는 두 사람이 같은 동굴을 각각 그림과 소리로 옮겨, 같은 해 같은 도시에 내놓은 셈입니다.

    [더 읽으면 좋은 글: 멘델스존의 생애와 작품]

    7. 추천 명반 가이드

    바다의 웅장함과 멘델스존 특유의 투명함을 가장 잘 살린 세 가지 연주를 추천해 드립니다.

    지휘자 / 오케스트라 감상 포인트
    카라얀 / 베를린 필 압도적인 사운드 밸런스와 대자연의 웅장함이 돋보이는 교과서적인 명연입니다.
    아바도 / 런던 심포니 회화적인 질감과 투명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매력적인 현대적 명반입니다.
    가디너 /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 시대악기를 사용하여 멘델스존이 갈구했던 ‘거친 소금기 어린 바다’를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멘델스존의 ‘헤브리디스 서곡’은 단순한 감상곡을 넘어, 낭만주의가 자연의 인상과 내면의 정서를 어떻게 하나의 관현악 언어로 결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이 곡을 듣는 일은 한 편의 바다 풍경화를 귀로 따라가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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