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한 서곡으로 시작해 짧고 명랑한 춤곡이 이어지는 <수상음악 Water Music. HWV 349>은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 HWV 351>과 더불어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이 곡은 단순한 궁정 음악을 넘어, 정치적 긴장과 화해의 도구로 활용된 흥미로운 배경을 지니고 있다.
1. 헨델과 조지 1세 – <수상음악>이 탄생한 정치적 배경
수상음악은 헨델과 하노버 선제후이자 영국 국왕 조지 1세(George I, 1660-1727)와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곡이다. 헨델이 25세 하노버 선제후의 궁정 악장으로 임명된 이듬 해에 휴가를 받아 영국 런던에서 오페라 <리날도>를 발표하였다. 대성공을 거둔 헨델은 영국 왕실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1713년 28세 때 헨델은 다시 영국을 방문하였는데, 연 여왕의 눈에 든 헨델은 하노버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정착하였다.
하지만 1714년 앤 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하노버의 선제후가 영국의 국왕 조지 1세로 즉위하게 된다. 조지 1세의 입장에서는 헨델의 행동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고, 헨델도 조지 1세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운명의 장난 때문이었는지, 헨델이 조지 1세의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 수상음악을 작곡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헨델을 돕기 위해 친구인 카르만제케 남작과 바린톤 백작이 왕이 뱃놀이를 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뱃노래 작곡의 아이디어를 냈다는 일화도 있지만, 정확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당시 선상 파티가 유행이었고 1717년 7월 17일 조지 1세가 템즈강에서 유람하며 선상 파티를 할 때 <수상음악>이 초연되었다는 것이다. 물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수상음악’이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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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피노크의 수상음악 앨범(ARCHIV) |
2. 수상음악의 구성 - 세 개의 모음곡과 특징
<수상음악>은 당시 유행하던 춤곡을 모아서 엮은 3개의 관현악 모음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모음곡 (F장조 HWV 348): 서곡, 알레망드, 부레, 혼파이프 등
제2모음곡 (D장조 HWV 349): 트럼펫과 호른이 강조되는 화려한 악장 포함
제3모음곡 (G장조 HWV 350): 미뉴에트, 리고동 등 가벼운 춤곡 중심
이탈리아풍 합주 협주곡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전부 22곡으로 이뤄진 모음곡 형식의 세레나데이다. 하지만 헨델의 <수상음악>은 여러 판본이 존재하고 오늘날 연주나 음반 녹음을 할 때 곡의 순서가 달라지거나 몇 곡만 발췌되기도 한다.
3. 강 위에서 울려 퍼진 음악 – 독특한 악기 편성과 야외 사운드
실내가 아닌 강 위에서 연주할 목적으로 작곡되어 악기편성이 독특하다.
- 금관악기(호른, 트럼펫) : 직진성이 좋고 소리가 크며 화려한 사운드가 특징
- 목관악기(플루트, 오보에, 바순 등) : 선율의 아름다움을 담당
- 현악기 : 야외에서 들리지 않을 뿐더러 온도나 습도에 민감해서 물이 튀어오를지 모르는 강 위에서 연주하는 것은 위험한 특성상 보조 역할로 사용
특히 관악기의 높고 가는 선율은 여름 강바람처럼 듣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그래서 <수상음악>은 여름철 클래식 추천곡으로도 자주 언급된다.
그날 연주에 흡족해한 조지 1세가 세 번이나 더 연주하라고 지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연주자들이 왕과 귀족들이 탄 배를 빙글빙글 돌면서 서라운드로 연주했으니 선상 파티가 제법 신이 났을 듯하다. <수상음악>의 제2모음곡은 전 곡이 D장조로 작곡되었다. 작곡가들이 화려하고 밝은 곡을 쓰고 싶을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조성으로, 아마 헨델도 조지 1세를 위해 화려한 곡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헨델은 왕의 총애를 받게 되고, 연금도 두 배나 올랐다.
4. 감상포인트 – 꼭 들어야 할 악장들
<수상음악>은 밝고 화려한 화성과 출렁이는 리듬이 매력적인 곡이다. 추천 악장은 다음과 같다.
- 서곡: 힘차고 당당한 도입부
- 알라 혼파이프(Alla Hornpipe, 제2모음곡 2번): 알라 혼파이프(Alla Hornpipe)
- 부레, 미뉴에트, 렌토 : 각기 다른 춤곡의 느낌을 전달하며, 전체적인 흐름에 변화를 줌
특히 알라 혼파이프는 화려하면서도 경쾌한 리듬이 인상적이며, 야외 음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대표곡이다.
5.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과 비교
헨델의 또 다른 대표 관현악곡인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 HWV 351>은 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작곡된 곡으로, 더 큰 규모의 군악 스타일과 강렬한 금관 사운드를 특징으로 한다.
수상음악: 유려하고 세련된 분위기, 춤곡 중심, 비교적 부드러움
불꽃놀이 음악: 장엄하고 군사적인 느낌, 타악기 강조, 곡의 규모가 큼
두 작품 모두 야외 음악으로 작곡되었으며, 헨델이 공간과 상황에 맞게 음악을 어떻게 조율했는지를 비교하며 감상하면 더욱 흥미롭다.
6. 감상하기
원전연주의 거장 트레버 피노크(Trevor David Pinnock, 1946년 생)가 지휘하고 더잉글리시 콘서트(The English Concert)가 연주한 음반(ARCHIV)을 추천한다. 바로크 연주에 정통하여 곡의 생동감을 가장 잘 살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