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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 사랑의 인사, 선물이 아니라 답장이었다

결혼식장에서, 광고에서, 드라마의 다정한 장면에서 이 선율이 흐릅니다.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 Op.12입니다. 3분 남짓한 짧은 곡이고, 대개는 이렇게 소개됩니다. 가난한 무명 작곡가가 약혼자에게 줄 선물을 살 돈이 없어 음악을 대신 지어 바쳤다고.

그런데 자료를 열어 보면 순서가 하나 어긋납니다. 먼저 건넨 사람은 엘가가 아니라 앨리스였습니다. 이 곡은 선물이 아니라 답장입니다.

1880년대 후반 무렵의 에드워드 엘가 사진
1888년의 엘가는 지방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던 무명의 음악가였다. 이 곡은 그의 초기 대표 소품이 된다.

곡 한눈에 보기
•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 작품번호: Op.12 · 원제 리베스그루스(Liebesgruß), 곧 사랑의 인사
• 작곡: 1888년 여름, 요크셔 세틀(Settle)에서
• 헌정: à Carice(캐리스에게)
• 출판: 1889년, 쇼트(Schott). 피아노 독주 · 바이올린과 피아노 · 소편성 관현악 세 가지
• 관현악판 초연: 1889년 11월 11일, 런던 크리스털 팰리스, 오거스트 만스(August Manns) 지휘
• 연주 시간: 약 3분
• 자리: 엘가의 초기 대표 소품

선물이 아니라 답장이었습니다

1888년 여름, 엘가는 우스터를 떠나 요크셔 세틀에 사는 오랜 친구 찰스 벅(Charles Buck)의 집으로 휴가를 갔습니다. 이때 그는 서른한 살이었고, 지방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지휘를 하던 무명의 음악가였습니다.

그가 떠나던 날, 피아노를 배우던 제자 캐럴라인 앨리스 로버츠(Caroline Alice Roberts)가 자신이 쓴 시 한 편을 건넸습니다. 제목은 〈사랑의 은총〉(Love's Grace)이었습니다.

엘가는 휴가지에서 그 시에 답했습니다. 짧은 곡 하나를 써서 리베스그루스(Liebesgruß), 곧 사랑의 인사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시의 제목이 은총이고 답장의 제목이 인사입니다. 두 사람은 제목으로 서로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휴가에서 돌아온 엘가는 이 곡을 앨리스에게 건네며 청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듬해 5월 런던 사우스켄싱턴의 브롬프턴 오러토리에서 결혼합니다. 앨리스의 친척들은 이 결혼에 경악했습니다. 앨리스는 육군 소장을 지낸 아버지를 둔 지위 높은 집안의 딸이었고, 엘가는 우스터에서 음악 상점을 하던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앨리스는 성공회, 엘가는 가톨릭이라는 차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곡을 다시 들을 때 바뀌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첫 소절은 말을 꺼내는 소리가 아니라 대답하는 소리입니다. 이미 한 번 마음을 받은 사람이 그 마음에 답하는 자리에서 이 선율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앨리스의 언어로, 헌정은 앨리스의 이름으로

영국 작곡가가 왜 독일어 제목을 붙였을까요. 이 제목은 앨리스가 독일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받는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제목을 단 것입니다. 답장이라는 성격이 제목에까지 남아 있는 셈입니다.

헌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악보에는 à Carice, 캐리스에게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엘가의 딸 이름이 캐리스입니다. 그래서 이 헌정이 딸에게 바친 것이라는 오해가 생깁니다.

순서는 반대입니다. 캐리스(Carice)는 아내의 두 이름 캐럴라인 앨리스(Caroline Alice)를 줄여 만든 말입니다. 1888년의 헌정어가 먼저였고, 딸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890년 8월 14일에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아내의 이름을 줄여 만든 그 말을 딸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말하자면 이 곡의 헌정어는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가 다른 사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바친 다섯 글자가 2년 뒤 딸에게 옮겨 간 것입니다.

2기니에 넘긴 권리, 그리고 바뀐 제목

1888년 말, 엘가는 이 곡을 세 가지로 편곡해 출판사 쇼트(Schott)에 보냈습니다. 피아노 독주, 바이올린과 피아노, 그리고 관현악입니다. 쇼트는 이 곡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일시불 2기니에 권리를 통째로 넘기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출판사가 곡의 이름을 바꿉니다. 독일어 리베스그루스를 프랑스어 살뤼 다무르(Salut d'Amour)로 바꾼 것입니다. 프랑스어 제목이 국제 시장에서 더 넓게 받아들여지리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엘가 협회에 따르면 쇼트는 같은 이유로 작곡가 이름도 Ed. Elgar로 적었다고 합니다. 덜 영국적으로 보이는 편이 국제 시장에 유리하다고 본 것입니다. 협회는 이 결정이 엘가의 동의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적습니다.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다만 곧바로는 아니었습니다. 곡은 여러 해에 걸쳐 국제적으로 팔려 나갔고, 1897년에 엘가는 한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서 이 곡을 두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몇 해 전에 헐값으로 넘겨 버린 것이 지금은 잘 팔려서, 1월 한 달에만 3천 부가 나간 것으로 안다고 말입니다. 출판사는 크게 만족했고, 엘가에게는 한 푼도 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권리를 이미 통째로 넘긴 뒤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대표작의 판권을 일찍 넘겨 버린 작곡가는 엘가만이 아닙니다. 브루흐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에서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부르는 이 곡의 이름은 작곡가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작곡가가 붙인 이름은 앨리스를 위한 독일어였고, 지금 남은 이름은 판매를 위한 프랑스어입니다. 받는 사람의 언어로 지은 제목이 파는 사람의 언어로 바뀐 셈입니다.

덧붙이면, 1889년에 쇼트가 낸 세 가지 판본은 모두 엘가 본인의 손을 거친 것입니다. 피아노 독주판도 그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엘가가 만든 편곡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는 함께 휴가를 보냈던 친구 찰스 벅을 위해 첼로와 피아노판도 따로 만들었는데, 그 편곡은 당시 출판되지 않은 채 자필 악보로만 남았습니다. 오늘날 첼로로도, 기타로도, 온갖 편성으로 이 곡을 들을 수 있고 그 편곡들은 대부분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엘가 자신의 첼로판은 따로 존재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 연주가 어느 판본에 기초한 것인지 한번 살펴볼 만한 이유입니다.

엘가는 이 곡의 짝이 되는 소품을 하나 더 썼습니다. 《사랑의 말》(Mot d'Amour)입니다. 여러 면에서 앞선 곡보다 짜임새가 낫다는 평을 받았지만 대중의 사랑을 얻지 못했고 오늘날 거의 연주되지 않습니다. 3분짜리 답장 한 편이 어떤 곡을 세계적인 곡으로 만들고 어떤 곡을 잊히게 하는지, 그 차이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