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네 〈타이스〉 명상곡, 막이 내린 뒤에 시작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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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한 대가 느린 선율을 길게 켜는 곡이 있습니다. 클래식 입문 모음집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 있고, 제목은 「명상곡」이며,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Jules Massenet)가 썼다는 것까지는 대개 함께 적혀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소품으로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곡에는 원래 자리가 있습니다. 오페라 〈타이스〉 안에서, 타이스의 집 장면이 끝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연주될 때, 관객이 보는 쪽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막이 이미 내려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악보와 대본, 그리고 당대 기록에서 확인한 것은 넷입니다. 첫째, 이 곡은 막이 내린 뒤에 시작합니다. 둘째, 관객이 보는 쪽은 비어 있지만 내려진 막 뒤에는 합창단 전원이 서 있고 무대 뒤에는 오보에와 잉글리시호른이 있습니다. 셋째, 오늘날 널리 연주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편곡에는 그 하프도 합창도 없습니다. 넷째, 이 곡은 끝나지 않고 그대로 다음 번호로 이어집니다.

막이 내린 뒤에 시작하는 음악

〈타이스〉는 세 개의 막과 일곱 개의 화면으로 된 무대 작품입니다. 화면이란 한 막 안을 다시 나눈 장면 단위를 말합니다. 대본은 루이 갈레(Louis Gallet)가 썼고,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같은 이름 소설을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를 무대로 하고, 두 주인공은 수도사 아타나엘과 배우이자 고급 창부인 타이스입니다.

「명상곡」의 자리는 제2막 안입니다. 우리가 펼친 1894년 외젤 인쇄본에서 이 곡은 제23번이고, 「타이스의 집에서」라는 화면이 끝나는 곳에 놓여 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화면은 「타이스의 집 앞에서」입니다. 그러니까 이 곡은 막과 막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막 안에서 장면이 바뀌는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곡 번호와 화면 번호는 판본에 따라 달라집니다. 〈타이스〉는 1894년에 초연된 뒤 한 차례 줄었다가 1898년에 다시 늘어난 작품이고, 당시 신문도 그것을 「제3의 판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 이 글에서 번호를 보실 때는 우리가 펼친 그 인쇄본에서의 번호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번호가 어떻게 매겨지든 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이 자리를 당대 사람들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초연 이틀 뒤에 나온 파리의 한 음악 주간지는 제2막을 소개하면서, 이 막에는 「그 막의 간주 구실을 하는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사랑스러운 명상곡」이 들어 있다고 적었습니다. 막과 막 사이의 간주가 아니라 그 막 안의 간주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 지면의 성격은 밝혀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 주간지는 〈타이스〉의 악보를 낸 출판사가 직접 펴내던 잡지였고, 그 글에 붙은 이름도 출판사 사주가 쓰던 필명이었습니다.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의 비평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글이 그 문장을 끌어오는 것은 평가 때문이 아니라 곡이 놓인 자리를 적은 대목이 악보와 그대로 맞기 때문입니다. 이 잡지가 그 뒤에 한 일은 7절에서 다시 보겠습니다.

대본에 인쇄된 이름은 조금 더 깁니다. 악보 목차에는 그냥 「명상곡」으로 적혀 있지만, 초기 대본은 이 자리에 「종교적 명상곡」이라고 써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목 바로 위, 앞 장면의 마지막 줄에 인쇄된 지시문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막이 천천히 닫힌다.

1894년 타이스 역 의상을 입은 소프라노 시빌 샌더슨의 전신 사진,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린 자세와 허리의 넓은 장식 띠
시빌 샌더슨, 1894년, 초연 사흘 뒤에 찍은 공연 사진, 프랑스 국립도서관. 초연에서 타이스를 부른 소프라노다.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정면을 보는 자세이고, 허리에 넓은 장식 띠를 둘렀다. 대지 아래 여백에 촬영 날짜와 이름이 손으로 적혀 있다.

웃음과 회심 사이

그 화면의 무대는 타이스의 집입니다. 수도사 아타나엘이 찾아와 그녀에게 지금의 삶을 버리라고 요구합니다. 「명상곡」 바로 앞 번호에서 그는 그녀를 「타이스, 부서지기 쉬운 우상」이라고 부르며 꾸짖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대답합니다.

「아니! 나는 타이스로 남겠어, 창부 타이스로. 나는 이제 아무것도 믿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 사람도, 당신도, 당신의 신도!」

대본은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을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그녀는 신경질적인 웃음에 사로잡히고, 그 웃음은 흐느낌으로 끝납니다. 그녀는 얼굴을 쿠션에 파묻고, 그동안 그는 멀어져 갑니다. 그리고 막이 천천히 닫힙니다. 악보 쪽에도 같은 순서가 인쇄돼 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 웃음을 터뜨리라는 지시, 그리고 막이 내린다는 한마디가 차례로 찍혀 있고, 그 바로 뒤가 「명상곡」입니다.

곡이 끝나면 막이 다시 오릅니다. 날이 밝기 전, 타이스의 집 앞 광장입니다. 주랑 아래에 작은 에로스 상이 있고 그 앞에 등잔 하나가 켜져 있습니다. 계단 아래에서 아타나엘이 자고 있습니다. 타이스가 그에게 몸을 숙이고 말합니다.

「아버지, 신께서 당신 목소리로 제게 말씀하셨어요! 저 여기 있습니다!」

이 두 대사 사이에는 다른 대사가 없습니다. 악보에 매겨진 번호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앞 번호가 「타이스, 부서지기 쉬운 우상」이고, 그다음이 「명상곡」이며, 그다음이 「아버지, 신께서 당신 목소리로 제게 말씀하셨어요」입니다. 세 번호가 잇달아 붙어 있고 그 사이에 끼어든 번호가 없습니다. 거절과 승낙 사이에 놓인 것은 음악 하나입니다. 초연이 있던 해에 나온 프랑스의 한 연감은 이 대목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막이 닫힌 채 음악만이 다시 그 망설이는 영혼의 비밀을 우리에게 넘겨줄 때, 라고 말입니다. 같은 글은 이어서 이 곡을 「진지하고 감동적인 소박함의 명상곡」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몇 분 사이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극이 말하지 않습니다. 대사도 없고 무대 지시도 없습니다. 극이 보여 주지 않았으므로 이 글도 그 자리를 대신 채우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작곡가는 그 시간을 설명하는 대신 음악으로만 주었습니다. 이 곡이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1894년 타이스 역 의상을 입은 시빌 샌더슨이 쿠션을 겹쳐 쌓은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사진
시빌 샌더슨, 1894년, 초연 사흘 뒤에 찍은 공연 사진, 프랑스 국립도서관. 쿠션을 겹쳐 쌓은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젖힌 자세다. 대본이 적어 둔 「얼굴을 쿠션에 파묻고」와 겹쳐 보이지만, 이 사진이 극의 어느 대목을 찍은 것인지는 사진에 적혀 있지 않다.

소설에는 없는 시간

원작 소설을 펴 보면 이 장면이 없습니다.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에서 수도사의 이름은 아타나엘이 아니라 파프뉘스입니다. 그리고 타이스가 마음을 바꾸는 대목은 혼자 남은 밤이 아니라 연회가 끝난 새벽입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습니다. 그녀가 한숨지으며 말합니다. 죽도록 지쳤어요, 아버지. 어디서 쉴 수 있을까요. 그녀는 벤치에 주저앉고, 불안한 눈길을 들어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고는 일어서서 말합니다. 그러면 저를 알비네의 집으로 데려가 주세요. 같은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합니다.

소설에서 이 전환은 말로 이루어집니다. 묻고 답하고 청하는 세 단계가 차례로 적혀 있습니다. 혼자 남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은 소설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대본이 한 일은 이렇습니다. 소설의 대화를 덜어 내고, 그 자리에 아무도 말하지 않는 몇 분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명상곡」은 그 새로 생긴 자리를 채우는 음악입니다. 소설에 있던 문장 하나는 자리를 옮겨 살아남았습니다. 죽도록 지쳤어요, 라는 말입니다. 1894년에 인쇄된 대본에서 이 말은 제2막의 첫 대사가 됩니다. 타이스는 그 말로 막을 열고,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 막의 첫 화면을 닫습니다.

이 한마디에는 뒷이야기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타이스〉는 초연 뒤에 여러 차례 손질을 받았고, 오늘 통용되는 판본에서는 제2막이 이 말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대본으로 옮겨온 문장이 뒤의 판본에서는 그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무엇으로 바뀌었는지는 우리가 악보를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적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문장이 소설에서 무대로 건너왔다가 다시 밀려나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는 그 몇 분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프가 먼저다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본론입니다. 오늘날 널리 연주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편곡에는 원래 있던 층이 셋 빠져 있습니다. 1894년에 인쇄된 오케스트라 총보를 열어 보면 그것이 바로 보입니다. 총보는 모든 악기의 악보를 한데 모아 적은 것을 말합니다. 편곡이라고 다 같은 것도 아닙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편곡을 만든 마르탱 피에르 마르식(Martin Pierre Marsick)은 같은 해에 바이올린과 오르간과 하프를 위한 편곡도 따로 냈습니다. 하프가 들어가는 길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다만 오늘 우리 귀에 익은 것은 피아노가 반주하는 쪽입니다.

첫째, 소리를 먼저 내는 것은 바이올린이 아닙니다. 첫 마디부터 하프 두 대가 분산화음을 올립니다. 분산화음이란 한꺼번에 눌러 낼 화음의 음들을 하나씩 흩어서 차례로 켜는 것을 말합니다. 그 아래에서 현악기 전체가 아주 여린 세기로 여러 갈래로 나뉘어 긴 음을 깔아 둡니다. 독주 바이올린은 제3마디에 들어옵니다. 관악기는 한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이 곡의 첫 몇 초는 하프와 현의 소리입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들어오는 자리에 적힌 빠르기말도 한 번 볼 만합니다. 「안단테 렐리조소」, 곧 걷는 빠르기로, 종교적으로입니다. 앞에서 초기 대본이 이 자리를 「종교적 명상곡」이라고 적어 두었다고 했는데, 제목에서 떨어져 나간 그 낱말이 빠르기말에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합창이 들어 있습니다. 총보의 합창 자리 옆에는 연주 방법이 두 가지로 인쇄돼 있습니다. 극장에서는 합창 전원이 내려진 막 뒤에 서고, 연주회에서는 여덟 명 또는 네 명의 독창자가 오케스트라 안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부마다 입을 다물고라는 지시가 붙어 있습니다. 가사 없이 허밍으로 부르라는 뜻입니다.

이 지시를 읽고 나면 앞에서 본 무대 그림이 달라집니다. 막이 내려와 있으므로 관객이 보는 쪽은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막 바로 뒤에는 합창단 전원이 서 있습니다. 보이지 않을 뿐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무대 뒤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총보는 극장에서 연주할 때 제1오보에와 잉글리시호른이 무대 뒤에 있어야 한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잉글리시호른은 오보에보다 조금 낮은 음역을 맡는 목관악기입니다. 연주회에서는 이 두 악기가 무대 위에서 작은 음표로 인쇄된 대체 성부를 연주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더 눈에 띕니다. 마스네는 합창이 들어오는 쪽에 각주를 하나 달아 두었습니다. 목소리가 없을 경우 현악기가 그 음을 대신 연주한다는 것입니다. 즉 합창은 이 곡에 들어 있으면서 동시에 빠져도 곡이 성립하도록 적혀 있습니다. 원곡 자체에 합창 없이 연주할 수 있는 길이 이미 마련돼 있었던 셈입니다.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마스네는 같은 총보 안에 극장 연주를 위한 지시와 연주회 연주를 위한 지시를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연주회장으로 떨어져 나가는 길이 그 악보에 이미 나 있었던 셈입니다. 다만 주의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해에 나온 연주용 파트보 묶음에는 합창 파트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음반에 따라 이 합창이 들리기도 하고 들리지 않기도 합니다.

곡을 듣는 순서

큰 흐름은 단순합니다. 혼자 시작해서 여럿이 되었다가 다시 혼자가 됩니다. 귀로 좇을 수 있는 표지만 짚겠습니다.

먼저 하프 두 대와 현악기가 소리를 냅니다. 그 위로 독주 바이올린이 제3마디에 들어와 노래하듯 선율을 폅니다. 한 번 숨을 고른 뒤 같은 선율이 다시 시작되는데, 이 자리에는 총보에 지시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둘째 줄로」입니다. 바이올린에는 굵기가 다른 네 줄이 있고, 같은 음이라도 어느 줄에서 내느냐에 따라 소리의 빛깔이 달라집니다. 이 지시는 손을 옆으로 옮겨 같은 가락을 더 굵은 줄에서 켜라는 뜻입니다. 음의 높이는 처음과 같은데 줄이 바뀌면서 색이 어두워지는 것이니, 여기가 첫 번째 청취 지점입니다. 같은 선율을 두 번째로 부를 때 어떤 소리로 부를지를 작곡가가 줄까지 정해 두었습니다.

그다음부터 조금씩 뜨거워집니다. 총보에 적힌 말도 「조금씩 정열적으로」입니다. 여기서 커지는 방식이 눈여겨볼 만합니다. 소리가 그냥 세지는 것이 아니라 층이 하나씩 얹힙니다. 먼저 클라리넷과 바순과 호른이 긴 음으로 아래를 받치고, 이어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들이 독주와 같은 선율을 함께 켜기 시작하며, 하프도 세집니다. 그다음 지시가 「조금 더 정열적으로」여서 독주 바이올린이 높은 음역으로 올라가고, 그 뒤에 「더 빠르게, 흔들리며」가 옵니다. 이 마지막 지시가 붙은 대목에서 비로소 모든 악기가 한꺼번에 울립니다. 이 곡에서 가장 큰 소리가 나는 자리이고, 「명상」이라는 제목만 알고 듣기 시작한 사람이 가장 놀라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여기가 두 번째 청취 지점입니다.

그 뒤 처음 빠르기로 돌아오면서 첫 선율이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총보에서 합창 네 성부가 처음 음을 얻는 자리가 바로 그 쪽, 바로 그 마디입니다. 주제가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에 맞추어 사람 목소리의 층이 하나 새로 열리도록 적혀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청취 지점이 여기입니다. 그리고 이 층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된 편곡에는 아예 없습니다. 같은 대목에서 그쪽은 바이올린이 선율을 되풀이하고 피아노가 받칠 뿐입니다. 소품으로만 들어 온 귀에 전곡 음반이 낯설게 들린다면 대개 이 자리 때문입니다. 합창은 한 번 부풀었다가, 독주를 따라가라는 지시와 함께 물러납니다.

마지막이 남았습니다. 소리가 잦아드는데 합창이 먼저 빠집니다. 팀파니가 아주 여리게 떨고, 하프가 위로 한 번 훑어 올린 뒤 마지막 화음을 남깁니다. 그 위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하모닉스로 한 음을 길게 붙잡은 채 멈춥니다. 하모닉스란 줄을 꾹 누르지 않고 가볍게 대어 얻는 소리로, 보통 소리보다 가늘고 투명하게 들립니다.

끝나지 않는 끝

그리고 곡이 끝나지 않습니다.

자필 총보의 그 쪽을 보면 사정이 분명합니다. 마지막 마디에 늘임표가 줄마다 붙어 소리가 멎고, 바로 그 오른쪽에 겹세로줄이 그어진 뒤 모든 악기 줄에 새 박자 표시가 적혀 있습니다. 팀파니 줄 옆에는 조율을 바꾸라는 지시가 손으로 쓰여 있습니다. 다음 곡을 위한 준비입니다. 「명상곡」은 곡으로 닫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번호로 넘어갑니다. 막이 오르고 타이스가 아타나엘에게 말을 거는 그 장면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같은 늘임표를 두고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독립된 연주에서는 이 늘임표가 곡의 끝이 되지만, 오페라 총보에서는 그 오른쪽에 이미 다음 번호가 시작됩니다. 독주 편곡이나 발췌 음반에서 이 곡이 한 곡으로 깔끔하게 닫히는 것은 그 때문이고, 극장에서 그렇게 닫히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앞에서 본 두 가지 연주 지시가 여기서 다시 확인됩니다.

마스네가 잉크로 직접 쓴 타이스 총보의 한 쪽, 팀파니의 트레몰로와 하프의 분산화음, 독주 바이올린 줄의 마름모꼴 음표와 늘임표, 오른쪽 끝의 겹세로줄과 새 박자 표시
쥘 마스네 자필 총보, 초연을 앞뒤로 한 시기에 잉크로 쓴 원본, 프랑스 국립도서관 오페라 도서관·박물관 소장. 「명상곡」이 끝나는 쪽이며, 인쇄 총보의 마지막 대목 표기와 그대로 맞물린다. 오른쪽 위에 447이라는 쪽 번호가 있다. 팀파니 줄에 떨림 기호가 네 마디 이어지고, 하프 두 줄이 화음의 음들을 하나씩 흩어 올린 뒤 늘임표가 붙은 화음으로 멎는다. 독주 바이올린 줄의 마름모꼴 음표가 하모닉스이고, 그 위아래에 잦아들라는 말이 두 번 쓰여 있다. 합창 줄은 이미 비어 있다. 볼 지점은 오른쪽 끝이다. 겹세로줄 뒤로 모든 줄에 새 박자 표시가 붙고 팀파니 줄 옆에 조율을 바꾸라는 지시가 적혀 있다. 곡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증거다.

초연과 그 뒤

〈타이스〉의 초연은 1894년 3월 16일 금요일이었습니다. 극장은 파리 오페라, 곧 팔레 가르니에입니다. 당시의 공식 이름은 국립음악아카데미였고, 초연 악보에 인쇄된 표기와 그해 프랑스 연감의 기록이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타이스는 시빌 샌더슨이, 아타나엘은 델마가 불렀습니다. 지휘는 폴 타파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에는 초연에서 독주 바이올린을 켠 사람의 이름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해 연감은 제2막의 명상곡을 자기 바이올린으로 노래하게 한 베르틀리에에게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고 적었습니다. 오페라의 한 곡을 두고 그 독주자에게 박수가 몰렸다는 기록입니다.

이 곡이 무대 밖으로 나가는 데는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았습니다. 초연 이틀 뒤인 3월 18일, 악보를 낸 출판사가 자사 음악 주간지의 피아노 악보 구독자에게 「명상곡」을 부록 악보로 배포했습니다. 그날 지면에 실린 예고 문구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자 호와 함께 〈타이스〉에서 발췌한 「명상곡」을 받으시게 됩니다, 라는 문장입니다.

그 호를 다시 펼쳐 보면 같은 날짜 안에 세 가지 일이 겹쳐 있습니다. 하나, 사흘 전에 오페라가 초연됐습니다. 둘, 그 초연을 다룬 평이 이 주간지에 실렸고 거기 붙은 이름은 이 잡지를 펴내는 출판사 사주의 필명이었습니다. 셋, 같은 호가 그 오페라에서 뽑아낸 「명상곡」의 악보를 부록으로 실어 보냈습니다. 평을 실은 지면과 악보를 판 곳과 곡의 판권을 가진 곳이 하나였다는 말입니다. 당시 음악 출판사가 자기 잡지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으므로 여기에 다른 뜻을 붙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 곡이 무대에서 떨어져 나오는 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은 데에는 그 길을 앞에서 열어 준 쪽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적어 둘 만합니다.

편곡도 그해에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피아노 독주와 그 쉬운 편곡, 네 손으로 치는 편곡, 바이올린과 피아노, 플루트와 피아노, 첼로와 피아노, 오르간, 만돌린까지 같은 해에 인쇄됐습니다. 그 가운데 플루트 편곡을 만든 사람이 초연 지휘자 타파넬입니다. 그는 당대의 이름난 플루트 연주자이기도 했습니다. 마스네 본인은 이 선율에 「아베 마리아」의 가사를 붙여 따로 내놓았고, 1898년 파리의 한 연주회에서 테너가 그것을 실제로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898년에 이 오페라는 손질을 받습니다. 발레가 크게 늘었고 제3막 첫머리에 「오아시스」 화면이 새로 들어갔습니다. 막의 수는 셋 그대로입니다. 개정 초연 나흘 뒤에 나온 음악지에서 아르튀르 푸쟁은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한 문장으로 적었습니다. 저 발레를 빼면 작품에 그 밖의 변경은 전혀 가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그 자리에서 보고 들은 사람이 남긴 서술이지 악보를 대조한 결과가 아닙니다. 1894년 인쇄본과 그 뒤의 인쇄본을 쪽 단위로 맞춰 보는 일은 이 글이 하지 않았으므로, 여기서는 당대의 평자가 그렇게 적었다는 데까지만 적어 두겠습니다.

이 곡이 오페라 바깥에서 더 자주 들리게 된 사정은 다른 유명한 발췌들과도 닮아 있습니다. 결혼식 입장곡으로 자리 잡은 바그너 〈로엔그린〉의 혼례의 합창도 원래 자리와 쓰임이 갈라진 경우입니다. 다만 「명상곡」에는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연주회로 나가는 길을 작곡가가 악보에 직접 적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1888년 파리에서 찍은 쥘 마스네의 상반신 사진, 의자 등받이에 팔을 얹고 옆을 바라보는 자세
쥘 마스네, 1888년, 사진, 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 〈타이스〉를 쓰기 몇 해 전의 모습이다. 의자 등받이에 두 팔을 얹고 옆을 바라보고 있다. 아래 여백에 손으로 쓴 헌사와 서명, 촬영한 사진관의 주소, 그리고 연도가 적혀 있다.

듣기 안내

이 곡은 두 갈래로 갈라서 듣는 편이 좋습니다. 오페라 안에서 듣는 것과 바이올린 소품으로 듣는 것은 곡의 두께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래 음반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들은 것은 아니므로 어느 쪽이 낫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앞에서 본 세 가지, 곧 합창이 들어 있는가, 독주를 누가 켜는가, 곡이 앞뒤와 이어지는가를 각 음반의 편성과 트랙 구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만큼만 적습니다.

오페라 안에서 듣기. 합창이 들어 있는 쪽입니다.

  • 앤드루 데이비스 지휘,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토론토 멘델스존 합창단, 샨도스 CHSA 5258(2019년 11월 토론토 로이 톰슨 홀 녹음). 「명상곡」의 독주는 악단의 악장인 조너선 크로가 맡았고, 길이는 5분 36초입니다. 세 번째 청취 지점을 확인하기에 가장 쉬운 음반인데, 그 이유는 연주가 좋아서가 아니라 트랙이 놓인 자리 때문입니다. 이 음반에서 「명상곡」은 제2막 제1화면의 마지막 트랙이어서, 앞 번호가 끝나는 지점부터 다음 화면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를 끊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합창단이 편성에 들어 있으므로 주제가 돌아올 때 열리는 목소리의 층도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 이브 아벨 지휘, 보르도 아키텐 국립 오케스트라·보르도 국립오페라 합창단, 데카 466 766-2(1997년과 1998년 보르도 살 프랑클랭 녹음). 이쪽도 전곡반이므로 합창이 들어 있고 앞뒤 번호와도 이어집니다. 다만 세 기준 가운데 하나는 이 음반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독주 바이올린을 켠 사람의 이름이 크레딧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 로린 마젤 지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존 알디스 합창단, EMI(1976년 6월 런던 애비로드 제1스튜디오 녹음). 전곡반이니 합창도 들어 있고 앞뒤와도 이어집니다. 이 음반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 번째 기준입니다. 크레딧에 지휘와 바이올린이 모두 로린 마젤로 적혀 있습니다. 지휘자가 「명상곡」의 독주를 직접 켰다는 뜻입니다. 1976년 발매반과 1995년 재발매반 양쪽에 같은 표기가 남아 있습니다.

바이올린 소품으로 듣기. 하프도 합창도 없고 피아노가 반주하는 쪽입니다.

  • 프리츠 크라이슬러 바이올린, 조지 팔켄슈타인 피아노, 빅트롤라 74182(1916년 음반). 편성이 바이올린과 피아노 둘뿐이니 하프도 합창도 없고, 한 곡으로 시작해 한 곡으로 끊깁니다. 세 기준 가운데 확인되는 것은 독주자 하나입니다. 다만 음반 라벨에는 아직 「종교적 명상곡」이라는 원래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오페라가 처음 무대에 오른 지 스물두 해가 지난 시점에도 그 이름이 따라다녔다는 기록입니다.
  • 네이선 밀스타인 바이올린, 아르투르 발삼 피아노, V디스크 251(1944년 8월). 이쪽도 바이올린과 피아노이므로 합창은 없고 곡 하나로 끝납니다. V디스크는 미국 육군성이 전장의 장병에게 보내려고 만든 음반 규격입니다. 오페라를 통째로 담을 수 없는 자리에서 이 곡이 어떤 모습으로 옮겨 다녔는지를 보여 주는 예입니다.

두 갈래를 오가며 들을 때 귀에 걸리는 차이는 셋입니다. 합창이 들리는가, 독주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곡이 앞뒤와 이어지는가 한 곡으로 끊기는가입니다. 독주 바이올린 한 대가 곡을 끌고 가는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다음에 이 곡을 트실 때는 두 자리를 붙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맨 처음입니다. 바이올린이 나오기 전에 이미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 보십시오. 다른 하나는 맨 끝입니다. 바이올린의 가는 소리가 멎는 그 자리에서, 극장이라면 막이 오르고 한 사람이 말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곡의 끝이라고 알고 있던 그 침묵은 사실 다음 장면의 문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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