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오페라가 시작되기 전에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하는 곡)이 시작되면 관악기들이 느린 선율 하나를 부릅니다. 그 선율은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집니다. 그리고 곡이 한참 다른 데를 돌아다닌 뒤, 끝에서 같은 선율이 돌아와 크게 울리며 닫힙니다. 이 왕복이 〈탄호이저〉 서곡의 뼈대입니다.
그 마지막에 무엇이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 바그너는 짧은 글을 하나 남겨 두었습니다. 자기 서곡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순서로 흘러가는지를 그가 직접 적은 글입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끝에서 우리가 신의 노래와 함께 듣는 환호는 「구원받은 베누스베르크 자신의 환호」라는 것입니다. 이 글은 그 문장을 소개하고, 그 문장이 가리키는 자리를 독자가 음반에서 직접 찾을 수 있게 하려고 씁니다.
바그너가 이 서곡에 대해 남긴 글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곡의 진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한 해설문(「프로그램 해설: 4. 〈탄호이저〉 서곡」, Programmatische Erläuterungen: 4. Ouvertüre zu “Tannhäuser”)이고, 다른 하나는 지휘자와 출연자를 위해 쓴 연주 지시(「〈탄호이저〉의 연주에 관하여. 이 오페라의 지휘자와 출연자에게 보내는 알림」, Über die Aufführung des “Tannhäuser”. Eine Mittheilung an die Dirigenten und Darsteller dieser Oper)입니다. 해설문은 곡 한가운데에서 폭풍이 잦아든 뒤 남는 소리에 「떨림」과 「살랑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끝에서 그 소리가 「기쁜 물결」로 바뀐다고 적습니다. 연주 지시는 그 끝부분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못 박습니다.
탄호이저 서곡, 관악이 먼저 부르는 노래
바그너는 해설문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처음에 오케스트라만으로 순례자의 노래가 우리 앞에 나오고, 그것은 다가오고, 이윽고 거대한 쏟아짐으로 부풀었다가, 마침내 멀어진다고. 그리고 그 뒤에 두 마디를 덧붙입니다. 저녁 어스름, 그리고 노래의 마지막 여운이라고 말입니다.
이 첫머리를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도 그는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지휘자를 위해 쓴 그 글에서 그는 관악 주자들이 모두 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끊어 숨을 쉬게 붙들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유까지 함께 적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말에 붙여 부르는 합창을 흉내 내는 효과」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지시를 알고 나서 들으면 첫머리의 인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관악기가 부는 것은 선율이지만, 그 선율은 사람이 가사를 얹어 부르는 합창처럼 들려야 한다는 것이 작곡가의 요구였습니다. 그가 숨 쉴 자리를 맞추라고 요구했다는 것은 이 선율에 끊기는 자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노래로 치면 숨 쉬는 자리이고, 주자들이 그 자리를 얼마나 가지런히 맞추느냐가 지휘자의 몫이 됩니다. 연주를 골라 듣기 시작할 때 첫머리에서 귀에 걸리는 것이 이 대목입니다.
탄호이저 서곡을 이루는 두 재료
같은 해설문에서 바그너는 이 서곡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도 직접 밝힙니다. 재료는 둘입니다. 하나는 방금 들은 순례자의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베누스베르크, 곧 베누스 여신의 세계에서 오는 음악입니다.
이 둘이 한 작품 안에 있다는 것이 〈탄호이저〉라는 오페라의 골자입니다. 정식 제목은 〈탄호이저와 바르트부르크의 노래 경연〉이고, 세 개의 막으로 되어 있으며, 대본도 바그너가 직접 썼습니다. 1861년 파리에서 이 작품을 본 한 음악 전문지 평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을 여럿 늘어놓다가 그중 하나를 짧은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베누스와 교황!」. 성스러운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한 무대에 섞여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평자가 이 작품에서 무엇을 먼저 보았는지 알려 주는 말입니다.
서곡은 그 두 세계를 순서대로 들려줍니다. 순례자의 노래로 시작해, 베누스베르크로 넘어갔다가, 다시 순례자의 노래로 돌아옵니다. 곡의 큰 흐름은 이 세 덩어리로 충분히 잡힙니다. 조용하게 시작해 한가운데가 가장 거칠어지고, 그 뒤 다시 조용해졌다가 끝에서 크게 부풀며 닫힙니다. 바그너라는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 이 작품에 이르렀는지는 리하르트 바그너 생애와 작품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 |
| 드레스덴의 젬퍼 제1오페라하우스, 1850년 무렵, 카를 토이베르트가 그린 채색 도판, 위키미디어 커먼즈. 1845년 10월 19일 〈탄호이저〉가 처음 무대에 오른 곳이 이 극장이다. 앞면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부풀어 있고 아치 회랑이 두 층으로 둘려 있다. 그 앞 광장에 마차와 사람들이 드나든다. |
밤이 내린 뒤
그 노래가 멀어진 다음 곡의 성격이 처음으로 바뀝니다. 바그너가 적은 것은 이렇습니다. 밤이 내리면 마법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장밋빛으로 어스름해지는 향기가 소용돌이쳐 오르고, 육감적인 환호의 소리가 귀에 파고들고, 소름 끼치도록 무성한 춤의 어지러운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그리고 이것이 「베누스베르크의 유혹하는 마법」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이어서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바그너의 표현으로는 호리호리한 남자의 형상이고, 「탄호이저, 사랑의 가인」입니다. 그는 자랑스럽게 환호하는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기쁘고 도전적으로, 마치 그 무성한 마법을 제 쪽으로 억지로 끌어오려는 듯이. 그다음 베누스 자신이 나타나고, 그는 같은 노래를 한 번 더, 이번에는 여신을 찬미하며 부릅니다. 귀로 잡히는 표지는 이것입니다. 같은 선율이 두 번 나옵니다.
가장 격렬해지는 자리는 그 뒤입니다. 바그너는 취한 환호 속에 바쿠스 여신도들이 몰려와 광란의 춤으로 탄호이저를 여신에게까지 끌고 간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그 대목의 끝을 이렇게 맺습니다. 사나운 무리처럼 휩쓸려 가고, 이내 폭풍이 잦아든다고.
폭풍이 잦아든 자리에 남는 소리
여기가 이 글이 독자에게 기억해 두라고 부탁하는 첫 번째 자리입니다. 찾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춤이 몰아치다가 뚝 그치고 곡이 가장 조용해지는 자리를 기다리면 됩니다. 소리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들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을 바그너는 두 개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하나는 떨림이고 다른 하나는 살랑임입니다. 그의 문장은 이렇습니다. 육감적으로 탄식하는 떨림만이 아직 공기를 살아 있게 하고, 소름 끼치도록 무성한 살랑임이 물결친다고. 불행한 관능적 정욕의 숨결처럼 그 자리 위로 퍼지고, 그 위로 이제 다시 밤이 퍼진다고.
이 두 이름은 우리가 붙인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붙인 것입니다. 그가 나중에 같은 소리를 한 번 더 언급할 때 무엇이라고 불렀는지가 이 글의 다음 대목입니다. 그러니 이 소리가 어떤 결인지를 먼저 붙잡아 두시기 바랍니다. 그가 붙인 두 이름이 그 결을 그대로 말해 줍니다. 떨리고, 살랑입니다. 그리고 그 둘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같은 소리가 돌아오는 자리
두 번째 자리는 그 뒤에 옵니다. 표지는 역시 귀로 잡힙니다. 맨 처음 들었던 관악의 선율이 먼 데서 다시 들어오는 자리입니다. 바그너의 문장으로는 이렇습니다. 벌써 아침이 밝아 오고, 먼 곳에서 다시 다가오는 순례자의 노래가 들린다고.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이 이 글의 중심입니다.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노래가 점점 가까워지고 낮이 점점 밤을 밀어낼수록, 조금 전 우리에게 「저주받은 자들의 소름 끼치는 통곡」처럼 들리던 그 떨림과 살랑임도 점점 더 기쁜 물결로 들어 올려진다고 말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의 통곡」은 바그너의 표현입니다. 앞 절에서 붙잡아 둔 그 작은 소리를, 그는 여기서 돌아보며 그렇게 부릅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바뀌어 남는다고 적습니다.
이 대목이 어떻게 들려야 하는지는 그가 지휘자를 위해 쓴 글에 더 구체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서곡 종결부 전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이올린이 극단적인 피아노(악보에서 아주 여리게 연주하라는 뜻)로 연주해 거의 속삭이기만 하는 물결 무늬를 만들고, 그 앞에서 관악의 주제가 가장 또렷하게 들리게 하는 것이라고 그는 썼습니다.
그러니 끝부분에서 귀를 두 곳에 나누어 두면 됩니다. 위에는 관악의 선율이 있고, 그 아래에 현악의 잔물결이 흐릅니다. 음량이 큰 쪽은 위이고 잘 안 들리는 쪽이 아래입니다. 아래쪽을 일부러 찾아 들으면, 그 소리가 폭풍이 잦아들었을 때 남았던 그 떨림과 결이 닮은 소리로 들리는지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악보상 같은 재료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확인된 것은 둘입니다. 바그너는 앞의 떨림과 살랑임이 끝에서 기쁜 물결로 바뀐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 여린 현악의 물결이 실제로 흐른다는 것은 귀로 확인됩니다.
그가 이 끝을 무엇이라고 적었는지가 남았습니다. 해가 떠오르고 순례자의 노래가 얻어진 구원을 알릴 때, 그 물결은 숭고한 불붙음의 환희에 찬 울림으로 부푼다고 그는 썼습니다. 그리고 이어집니다. 우리가 신의 노래와 함께 듣는 것은 부정의 저주에서 구원받은 베누스베르크 자신의 환호라고.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이것입니다. 갈라져 있던 두 요소, 정신과 감각, 신과 자연이 사랑의 거룩하게 하나 되는 입맞춤으로 서로를 끌어안는다.
곡의 맨 끝을 어떻게 닫을지도 그는 적어 두었습니다. 마지막 네 마디는 앞의 여섯 마디를 한 번 더 빨라지게 한 뒤 장엄한 폭의 빠르기까지 늦춰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로는 끝자락에서 속도가 한 번 밀어붙여졌다가 맨 마지막에 눈에 띄게 늦춰지면서 닫히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 늦춤이 작곡가가 따로 지정해 둔 것입니다.
작곡가의 설명을 읽고 듣는다는 것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설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용한 것은 전부 바그너 자신이 쓴 글입니다. 작곡가가 자기 곡에 대해 쓴 글은 설명이면서 동시에 안내입니다. 그리고 안내를 읽고 나서 들으면, 그 안내가 가리키는 것부터 먼저 들리기 쉽습니다.
그 차이는 덮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폭풍이 잦아든 뒤의 떨림이 끝에서 기쁜 물결로 바뀐다」는 문장을 먼저 읽고 들으면 귀가 그 변화를 찾아갑니다. 읽지 않고 들었을 때도 그렇게 들릴지는 다른 물음이고, 여기서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남습니다. 끝부분에 여린 현악의 물결이 흐르고 그 위로 관악 선율이 떠오른다는 것은 그가 지휘자에게 요구한 것이고, 연주가 그 지시를 따랐다면 음반에서 귀로 확인됩니다.
그의 말은 자기 작품에 대한 당사자의 진술입니다. 다만 바그너가 이 서곡을 어떻게 설명했고 어떻게 연주되기를 바랐는지를 직접 보여 주는 1차 자료입니다. 이 글이 그의 문장에 기대는 것은 그 자리까지입니다.
![]() |
| 리하르트 바그너, 1861년, 피에르 프티가 파리에서 찍은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파리 공연을 앞뒤로 한 시기의 모습이다. 타원 테두리 안에 상반신만 담겼고 오른쪽 아래에 사진가의 서명이 들어 있다. |
탄호이저 서곡의 세 판본
이 작품은 보통 세 판본으로 나뉩니다. 1845년에 초연하고 1860년에 손본 드레스덴판, 1861년 파리 공연을 위해 만든 파리판, 그리고 1875년 빈 공연을 위한 빈판입니다. 빈판에서는 서곡도 바뀝니다. 지금까지 이 글이 따라온 바그너의 해설문과 연주 지시는 드레스덴판의 서곡을 가리킵니다.
파리판이 생긴 경위는 바그너 본인이 적어 두었습니다. 파리 대오페라 극장장이 발레를, 그것도 2막에 넣으라고 요구했고 바그너는 다른 곳을 제안했습니다. 1막 베누스의 궁정이야말로 춤이 들어갈 자리이고, 자기가 처음 쓸 때에도 그곳은 춤 없이는 안 된다고 여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줄을 덧붙입니다. 「내 옛 총보의 명백한 약점을 여기서 고친다는 과제가 나를 끌어당기기까지 했다」고 말입니다. 총보는 모든 악기의 악보를 한데 모아 적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새로 쓴 것이 1막의 베누스베르크 음악입니다. 서곡의 재료 둘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세계의 음악이니, 파리에서 고쳐 쓴 자리와 서곡이 보고 있는 자리가 같습니다. 다만 서곡의 끝이 달라지는 것은 파리판에서가 아닙니다. 1861년 파리 공연에서는 서곡을 끝까지 연주한 뒤 바쿠스 축제를 이어서 연주했습니다. 서곡의 종결부를 생략하고 곧바로 베누스베르크 장면으로 잇는 방식은 1875년 빈판에서 확정됐습니다. 그렇게 하면 드레스덴판 종결부에서 순례자의 선율이 다시 돌아와 크게 닫는 자리가 없어집니다. 듣는 쪽에서 알아 두면 되는 것은 하나입니다. 음반에 따라 서곡이 따르는 판이 다를 수 있습니다.
1861년 파리 공연은 3월에 세 번 열리고 끝났습니다. 바그너는 3월 25일에 작품을 철회했습니다. 방해의 주체를 그는 독일어로 쓴 보고문에서 「자키 클럽」이라고 지목했고, 같은 시기에 프랑스어로 쓴 철회 서한에서는 「오페라의 정기회원들」을 언급했습니다. 그 소동 자체는 따로 한 편이 될 이야기이므로 여기서는 이 정도로 두겠습니다. 다만 오페라가 파리 무대에서 내려간 그해에 서곡이 파리의 연주회에서 연주됐다는 기록이 당대 음악 전문지에 남아 있습니다. 무대에서 물러난 작품의 서곡이 연주회에서는 따로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 |
| 〈탄호이저와 바르트부르크의 노래 경연〉 1845년 드레스덴 초판의 표제지, 인쇄물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사진 H.-P. Haack, CC BY 3.0). 제목 아래에 「세 개의 막으로 된 큰 낭만 오페라」라고 적혀 있고, 맨 아래에 드레스덴과 1845라는 연도가 찍혀 있다. 위쪽의 붉은 타원은 소장자의 도장이다. |
![]() |
| 파리 살 르 펠르티에 객석 내부, 1858년, 귀스타브 자네의 판화, 위키미디어 커먼즈. 1861년 〈탄호이저〉가 올려진 극장의 객석이다. 화면 앞쪽 박스석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 너머로 박스석이 층층이 쌓여 있고, 무대는 오른쪽 멀리 조그맣게 보인다. 박스석이 객석의 중심이라는 것이 이 그림에서 바로 읽힌다. |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듣기 안내
앞에서 잡아 둔 두 자리를 음반에서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첫째는 춤이 뚝 그치고 곡이 가장 조용해지는 자리, 둘째는 관악의 첫 선율이 먼 데서 다시 들어오는 자리입니다. 둘째 자리부터 곡이 끝날 때까지 귀를 선율 아래쪽에 두면 현악의 잔물결이 잡힙니다.
아래 세 종은 서곡이 실린 전곡 음반입니다. 어느 쪽이 낫다는 말 대신, 각 음반에서 무엇을 확인할 수 있는지를 적습니다.
다만 둘째 자리는 전곡 음반에서 아예 연주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빈판 방식을 따르는 연주는 서곡의 종결부를 생략하고 곧바로 베누스베르크 음악으로 넘어가므로, 순례자의 선율이 돌아와 크게 닫는 그 자리가 연주에서 빠집니다. 그 판에서는 서곡이 한 곡으로 닫히지 않고 그대로 무대 음악으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 솔티·시노폴리 음반이 그렇습니다.
판본 이름을 외우지 않아도 가려낼 수 있습니다. 서곡 트랙이 13분대면 끝까지 연주한 것이고, 10분대면 종결부를 자른 것입니다. 그 3분 남짓의 차이가 곧 종결부입니다.
- 게오르크 솔티 지휘, 빈 필하모닉·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데카 SET 506-9(1971년 발매). 파리판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이 음반에서는 서곡이 1막 첫 장면과 한 트랙으로 묶여 있어, 서곡만 따로 들으려면 트랙 안에서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서곡 종결부는 생략되고 베누스베르크 음악으로 이어지므로 둘째 자리는 이 음반에 없습니다.
- 주세페 시노폴리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코벤트가든 합창단, 도이체 그라모폰 427 625-2(1989년 발매). 도이체 그라모폰도 이 음반을 파리판으로 표기합니다. 서곡이 독립된 트랙으로 들어 있어 첫째 자리를 되돌려 듣기에 편합니다. 다만 그 트랙의 길이가 10분 49초입니다. 아래 하이팅크 음반보다 약 3분이 짧고, 그 3분이 종결부입니다. 그래서 둘째 자리는 이 서곡 트랙에 없습니다.
-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지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합창단, EMI(1985년 발매). 이쪽은 서곡이 13분 44초짜리 독립 트랙이고, 그다음 트랙이 1막 1장입니다. 서곡을 끝까지 연주했다는 뜻이므로 이 글이 말한 둘째 자리를 이 음반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첫머리 관악의 숨 자리가 얼마나 가지런한지를 앞의 음반과 견주어 듣기에도 알맞습니다.
그러니 음반을 고를 때는 서곡이 어디서 끝나는가를 먼저 보시면 됩니다. 서곡이 베누스베르크 음악으로 그대로 이어지면 둘째 자리는 그 연주에 없고, 서곡이 하나의 곡으로 닫히면 그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만 가려내면 되고, 「이 음반이라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같은 작곡가의 다른 유명한 발췌에 대해서는 〈로엔그린〉 혼례의 합창에서 다뤘습니다. 그 글도 이 글과 마찬가지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와 자료에 남은 것을 따로 놓고 봅니다.
다음에 이 서곡을 틀 때는, 곡이 가장 조용해지는 자리에서 남는 그 작은 떨림을 한 번 붙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에서 관악 선율이 크게 돌아올 때, 그 아래에 무엇이 흐르고 있는지 귀를 내려 보십시오. 바그너가 종결부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적은 것은 위에 있는 선율이 아니라, 그 선율이 무엇 위에 떠 있는가였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