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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랴빈 생애와 음악, 쇼팽에서 신비화음까지

인물 한눈에 보기
• 인물: 알렉산더 스크랴빈 (Alexander Scriabin, 1872~1915)
• 출생: 1872년 1월 6일, 모스크바
• 활동: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쇼팽의 영향에서 출발해 독자적인 후기 화성으로 나아감
• 대표작: 《법열의 시》,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 피아노 소나타 10곡
• 별세: 1915년 4월 27일, 모스크바 (43세)
처음 들을 작품
초기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과, 후기의 피아노 소나타 제9번(또는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을 나란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쇼팽풍의 조성 언어에서 출발한 음악이 어떻게 독자적인 후기 어법으로 옮겨 가는지, 두 작품을 같은 귀로 견주면 그 이동이 또렷하게 들립니다.

알렉산더 스크랴빈의 음악은 시작과 끝이 사뭇 다릅니다. 초기에는 쇼팽을 닮은 서정적인 피아노 음악을 썼지만, 후기에는 전통적인 조성의 틀을 벗어난 독자적인 화성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이 글의 중심 질문은 이렇습니다. 스크랴빈의 음악은 어떻게 쇼팽에서 이른바 신비화음으로 이동했을까요. 그 궤적을 생애를 따라 짚어 보겠습니다.

어린 시절과 첫 피아노

스크랴빈은 어머니를 유아기에 여의고, 할머니와 고모의 돌봄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일찍 드러났고, 음악원에 들어가기 전후로 피아노 교육가 니콜라이 즈베레프의 지도가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모스크바 음악원 시절

스크랴빈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바실리 사포노프에게 피아노를, 세르게이 타네예프와 안톤 아렌스키에게 작곡과 대위법을 배웠습니다. 이 시기 그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시기에 음악원을 다녔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음악원을 다닌 동문이자 동시대 인물이었습니다. 스크랴빈은 1892년 피아노 부문에서 작은 금메달을 받고 졸업했지만, 작곡 학위 과정은 마치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은 그가 전통적인 훈련을 싫어했다는 식의 심리 해석보다, 그의 경력에서 더 정확한 전환점이 됩니다.

스크랴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
스크랴빈의 모습

오른손 부상과 왼손 작품

음악원 시절의 오른손 부상은 스크랴빈의 경력을 바꾼 첫 번째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1891년 과도한 연습으로 오른손과 팔에 반복사용 손상을 입었고, 1893년에는 증상이 다시 악화되었습니다. 연주자로서의 미래를 걱정해야 했던 회복기 무렵, 그는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전주곡과 녹턴》 Op.9을 썼습니다. 신체적 제약을 새로운 피아노 작품으로 바꾼 검증 가능한 사례입니다.

유럽 체류와 신비주의

결혼과 활발한 작곡 활동을 거치며, 스크랴빈은 유럽에 머무는 동안 철학과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단순한 예술을 넘어 감각과 정신을 바꾸는 힘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이 생각은 후기 음악의 규모와 야망을 키웠습니다. 《법열의 시》와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 같은 관현악 작품이 이 시기의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후기 어법과 신비화음

스크랴빈의 후기 음악은 쇼팽풍의 기능화성에서 출발해 전통적인 조성의 긴장을 해체하고, 독자적인 음고 조직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어법을 두고 분석가들은 무조, 후기 조성, 음고 중심을 지닌 포스트토널 등 여러 설명을 함께 씁니다. 다만 그의 길을 쇤베르크의 무조나 12음 기법과 같은 것으로 합쳐 버리면 오해가 생깁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성 이후의 음악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후기 음악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이른바 신비화음입니다. 이는 여섯 음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며, '신비화음'이라는 이름 자체는 후대에 붙은 명칭입니다. 그렇다고 후기 음악 전체가 이 한 화음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이 음고 집합과 그 전위·전조가 화성과 선율의 재료를 함께 공급하며 곡을 짜 나갑니다. 이 작품의 악보에는 'luce'라 불리는 파트, 곧 빛을 다루는 클라비어 아 뤼미에르(clavier à lumières) 파트가 들어 있습니다. 음과 색의 대응을 빛으로 실현하려 한 별도의 파트인데, 스크랴빈이 실제로 소리를 색으로 보는 공감각자였는지는 논쟁적이므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피아노 소나타의 별칭에도 구분이 필요합니다. 제7번 'White Mass'는 스크랴빈 자신이 붙인 별칭이지만, 제9번 'Black Mass'는 다른 사람이 붙인 별칭을 그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스크랴빈의 클라비어 아 뤼미에르에서 음과 색을 대응시킨 건반 도식
《프로메테우스》의 빛 건반을 이해하기 위한 음과 색의 대응 도식.

라흐마니노프와 벨랴예프

스크랴빈의 경력은 동시대 음악가와 후원자의 도움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출판업자이자 후원자 미트로판 벨랴예프는 그의 작품을 출판하고 연주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음악원 동문 라흐마니노프와는 어법이 크게 달랐지만, 두 사람을 단순한 라이벌로 묶기는 어렵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스크랴빈의 사망 뒤 장례에서 운구를 맡았고, 유족을 돕기 위해 스크랴빈 작품만 연주하는 순회공연을 진행했습니다.

마지막, 그리고 미완의 미스테리움

스크랴빈은 1915년, 4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윗입술에 생긴 작은 종기였습니다. 이것이 농포와 종창으로 악화되어 패혈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가 만년에 구상한 것은 《미스테리움》이라는 거대한 작품이었습니다. 인도 또는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일주일가량 음악과 시, 춤, 색채, 향기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하려 한 구상이었지요. 이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고, 완성 악보 대신 스케치와 그 서곡 격인 《서막 행위(Prefatory Action)》 관련 자료가 남았습니다. 완성작처럼 이야기하기보다, 끝내 미완으로 남은 원대한 구상으로 기억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당대의 열광과 후대의 재평가

스크랴빈은 말년에 러시아에서 강한 추종을 얻었지만, 사후에는 신비주의적 언어와 후기 화성 때문에 평가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의 음악을 낭만주의의 말기로만 보거나 쇤베르크식 무조의 예고로만 읽으면 고유한 음고 조직이 가려집니다. 오늘날에는 초기의 쇼팽풍 소품과 후기 소나타, 《프로메테우스》를 한 궤적 안에서 듣는 방식이 자리 잡았고, 그의 음악은 20세기 초 조성 이후의 여러 가능성 가운데 독자적인 한 갈래로 평가됩니다.

꼭 들어야 할 스크랴빈의 작품들

• 피아노 소나타 제2번 사단조 Op.19(1897): 쇼팽의 영향이 남은 초기 소나타입니다.
• 《왼손을 위한 전주곡과 녹턴》 Op.9(1894): 오른손 부상 뒤 신체적 제약을 새로운 피아노 어법으로 바꾼 작품입니다.
• 《법열의 시(Le Poème de l'extase)》 Op.54(1908): 후기 관현악 어법과 사상을 담은 대표작입니다.
•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Prométhée)》 Op.60(1910): 신비화음과 빛의 파트를 도입한 관현악 작품입니다.
• 피아노 소나타 제9번 Op.68(1913): 'Black Mass'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후기 소나타입니다.
• 다수의 에튀드와 프렐류드: 초기에서 후기까지 그의 변화를 압축해 보여 주는 소품들입니다.

스크랴빈 시작하기

스크랴빈으로 들어가는 좋은 방법은 초기와 후기를 같은 귀로 견주는 것입니다. 먼저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을 들으며 종지와 중심음이 어떻게 확인되는지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어 피아노 소나타 제9번을 들으면, 화음이 전통적인 종지로 해결되기보다 제한된 음고 집합과 중심음 주위에서 순환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축으로 두 시기를 비교하면, 쇼팽에서 신비화음으로 옮겨 간 그의 이동을 소리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크랴빈의 후기 음악은 무엇을 설명하기보다, 감각과 화성의 변형을 통해 스스로 작동합니다. 그 소리의 변화를 직접 따라가는 것이 이 작곡가를 만나는 가장 정직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