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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잡학사전] 클래식 작품 번호 읽는 법 — Op·No·K·BWV 한눈에 정리

클래식 잡학 사전
작품 번호 한눈에 보기
• Op.(오푸스, Opus): '작품'을 뜻하는 라틴어 — 작곡가·출판사가 출판한 순서대로 매기는 묶음 번호
• No.(넘버, Number): 같은 Op. 묶음 안에서 곡을 구분하는 세부 순서 번호
• 비유하면 Op.는 앨범 번호, No.는 그 앨범 속 트랙 번호
• 모차르트 K., 바흐 BWV, 슈베르트 D., 비발디 RV는 후대 학자가 따로 정리한 고유 작품번호

클래식 음악에 갓 입문한 분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거대한 장벽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암호같이 길고 복잡한 제목'입니다. 대중음악처럼 '밤편지', 'Dynamite' 같이 예쁜 제목이 있으면 좋으련만, 클래식 곡들은 《피아노 소나타 14번 올림다단조, Op.27 No.2》처럼 복잡한 기호와 숫자로 뒤덮여 있습니다.

도대체 곡 뒤에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Op.No.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은 알아두면 클래식 감상이 두 배로 재미있어지는 '클래식 작품 번호 읽는 법'을 명쾌하게 정리해 드립니다.

작품 번호의 기본, Op.와 No.

Op.는 라틴어로 '작품(Work)'을 뜻하는 단어인 오푸스(Opus)의 약자입니다. 보통 작곡가나 악보 출판사가 곡을 세상에 출판할 때 1번부터 차례대로 번호를 매깁니다. 베토벤의 Op.1은 그가 작품번호를 붙일 만하다고 여긴 첫 출판 작품집입니다. (그 전에도 WoO 63 같은 초기작이 출판됐지만 베토벤은 여기에 작품번호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Opus의 복수형은 '오페라(Opera)'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짧은 소품곡들을 한 곡씩 따로 출판하면 인쇄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여러 곡을 하나로 묶어서 하나의 Op. 번호로 출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 하나의 묶음 안에 들어있는 여러 곡을 구분하기 위해 붙이는 번호가 바로 No.(Number)입니다.

예를 들어, 《쇼팽 야상곡 Op.9 No.2》라는 제목을 해독해 볼까요? 이는 쇼팽의 작품번호 9번에 해당하는 야상곡집(Op.9) 안에서 두 번째 수록곡(No.2)이라는 뜻입니다.

작품 번호 Op. 27 No. 2가 새겨진 베토벤의 오래된 악보 표지
베토벤의 작품 번호 Op.27 No.2가 새겨진 악보

주의할 점, Op.의 함정

💡 Op. 번호가 빠를수록 젊은 시절에 작곡한 곡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Op. 번호는 '작곡한 순서'가 아니라 '출판한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곡을 20대 때 작곡해두고 서랍 속에 묵혀두었다가 50대가 되어서야 출판사에 넘겼다면, 그 곡은 아주 늦은 Op. 번호를 받게 됩니다. 반대로 사후에 유족들이 미발표 초기작을 긁어모아 출판하면서 제일 마지막 번호를 붙여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Op. 번호만 보고 작곡가의 음악적 성숙도를 완벽하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모차르트와 바흐는 왜 Op.를 안 쓸까

베토벤, 쇼팽,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은 출판 기록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 Op.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나 바흐처럼 너무 옛날 사람이거나, 평생 방대한 양의 곡을 작곡하여 출판사가 번호를 매길 엄두도 내지 못한 천재들은 어떨까요? 이들의 흩어진 악보를 후대의 집념 어린 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새롭게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정리된 것이 '고유 작품 번호'입니다. 어떤 것은 정리한 학자의 이름을 따고(모차르트 K.=쾨헬, 슈베르트 D.=도이치, 비발디 RV=리옴), 어떤 것은 목록 자체의 이름을 땁니다(바흐 BWV=Bach-Werke-Verzeichnis, 곧 '바흐 작품 목록').

  • 모차르트 (K. 또는 KV): 법학을 공부하고 식물학·광물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학자 루트비히 폰 쾨헬(Köchel)이 모차르트의 600여 곡을 '작곡한 연도순'으로 정리한 번호입니다. 모차르트의 곡 뒤에 K.가 붙어있으면 쾨헬 번호라고 읽습니다.
  • J.S. 바흐 (BWV): 독일의 음악학자 볼프강 슈미더(Wolfgang Schmieder)가 정리했습니다. 바흐가 남긴 현존 작품은 1,000곡가량인데(BWV 목록에는 소실작·진위가 의심되는 곡·나중에 덧붙인 보충 번호까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연도순으로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칸타타는 칸타타끼리, 오르간 곡은 오르간 곡끼리 '장르별(주제별)'로 묶어 번호를 매겼습니다. (Bach-Werke-Verzeichnis, 바흐 작품 목록의 약자입니다.)
  • 슈베르트 (D.):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Erich Deutsch)가 정리한 도이치 번호입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 역시 평생 많은 곡을 남겼으나 살아생전 출판된 곡이 많지 않아 Op. 번호가 엉망이었고, 이를 도이치가 '연대기순'으로 재정리했습니다.
  • 비발디 (RV): 덴마크 음악학자 페테르 리옴(Peter Ryom)이 비발디의 방대한 곡을 정리한 리옴 번호입니다.
모차르트의 “A Very Little Night Music”, the Serenade in C K 648를 보여주는 CD 앞표지
모차르트의 K.648을 보여주는 CD 앞표지 (출처: deutschegrammophon.com)

마치며, 암호 해독의 즐거움

자, 이제 실전 연습을 해볼까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올림다단조 "월광", Op.27 No.2

이 긴 제목은 '통용되는 피아노 소나타 제14번이고, 올림다단조(C#단조) 조성이며, 후대에 「월광」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작품번호 27번 묶음의 두 번째 곡(No.2)'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제14번'은 작곡 순서가 아니라 통용되는 소나타 번호라는 점만 기억해 두면 됩니다.

클래식 음악의 제목은 지루한 암호가 아니라, 그 곡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친절한 명찰'입니다. 이제 작품 번호의 의미를 알게 되셨으니, 연주회 팸플릿이나 음반을 고르실 때 숨겨진 정보들을 해독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