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발퀴레의 기행 해설, 영화 〈지옥의 묵시록〉 헬기 장면 음악이 원래 있던 자리

작성자

카테고리:

,

헬리콥터 편대가 바다 위를 낮게 날고, 확성기에서 금관이 터져 나오는 장면.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 하면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이 장면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음악이 원래 놓인 자리는 싸움이 벌어지는 한가운데가 아닙니다. 싸움은 이미 끝났습니다. 오페라 〈발퀴레〉 3막 첫머리, 전사자를 말안장에 싣고 구름 사이를 달려 바위산 꼭대기로 하나둘 모여드는 여덟 자매의 장면입니다. 이 글은 그 집결의 음악이 어떻게 들리는지, 그리고 영화가 그것을 어떻게 공격의 음악으로 바꾸었는지를 따라갑니다.

분홍 바탕에 바그너와 발퀴레의 기행을 한글과 영어로 적은 제목 그림

〈니벨룽의 반지〉와 〈발퀴레〉

〈발퀴레〉는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의 반지〉 가운데 두 번째 작품입니다. 4부작은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루어지고, 바그너는 〈라인의 황금〉을 전야, 나머지 셋을 첫째 날부터 셋째 날로 불렀습니다. 대본도 그가 직접 썼습니다. 북유럽과 독일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난쟁이 알베리히가 라인강 바닥의 황금을 훔쳐 세상을 지배할 힘을 가진 반지를 만드는 데서 시작합니다. 신들의 왕 보탄은 그 반지를 빼앗지만, 자기 성 발할을 지어 준 거인들에게 값으로 넘겨야 했고, 그 뒤로 반지에 걸린 저주가 4부작 전체를 끌고 갑니다.

바그너는 1848년 가을 이 이야기의 대본을 쓰기 시작해 1874년에 음악을 모두 마쳤습니다. 약 26년이 걸린 셈입니다. 흔히 말하는 28년은 착수부터 1876년 8월 13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4부작의 첫 완전한 연속 공연이 시작된 때까지를 센 것입니다. 바그너는 이 4부작을 제대로 올리려고 바이로이트에 자기 극장까지 지었습니다. 그 사정은 바그너의 생애와 작품에서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발퀴레〉가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그보다 앞선 1870년 6월 26일 뮌헨 궁정극장이었습니다. 4부작에서 떨어져 나와 따로 올린 공연이었고, 바그너는 이 공연이 예술적으로 불충분하다며 가지 않았습니다.

발퀴레, 전사자를 거두는 아홉 자매

발퀴레는 전쟁터에서 쓰러진 영웅들을 거두어 신들의 성 발할로 데려가는 여전사들입니다. 2막에서 보탄은 딸 브륀힐데에게, 지혜의 여신 에르다가 그녀를 낳았고 자신이 그녀를 여덟 자매와 함께 길러 발퀴레로 삼았다고 털어놓습니다. 언젠가 닥칠 신들의 몰락에 맞서려고 영웅들을 모으게 했다는 것입니다. 3막에 이름을 달고 나오는 발퀴레는 게르힐데, 오르틀린데, 발트라우테, 슈베르틀라이테, 헬름비게, 지그루네, 그림게르데, 로스바이세의 여덟이고, 여기에 브륀힐데까지 아홉입니다. 그들은 말을 타고 구름 사이를 달립니다. 대본은 날개 달린 말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브륀힐데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면서 움직입니다. 보탄은 아내 프리카의 요구에 밀려, 자기 아들 지크문트와 싸우는 훈딩이 이기도록 싸우라고 브륀힐데에게 명령합니다. 브륀힐데는 지크문트를 지키려다 실패하고, 지크문트가 쓰러지자 그의 연인 지클린데를 말에 태워 자매들이 모이는 바위산으로 달아납니다. 지클린데는 훗날 영웅 지크프리트를 낳을 사람입니다. 3막은 그 바위산에서 열립니다.

발퀴레의 기행 감상, 바위산으로 모여드는 말발굽

〈발퀴레의 기행〉은 3막이 시작되자마자 나옵니다. 바그너의 총보는 이 대목에 「생기 있게」라는 지시와 8분의 9박자를 적었습니다. 한 마디가 세 박이고 한 박이 다시 셋으로 쪼개지는 박자라서, 말이 달리는 듯 튀어 오르는 걸음이 처음부터 몸에 붙습니다.

들을 때는 세 겹으로 쌓이는 순서만 따라가면 됩니다. 먼저 현악기가 아래에서 위로 휙 솟구치는 짧은 음형을 던지고, 곧이어 플루트와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빠르게 떠는 음을 길게 끌어 하늘을 가르는 바람 소리를 만듭니다. 그 아래로 호른과 바순과 첼로가 짧고 긴 음을 번갈아 찍는 리듬을 시작합니다. 말발굽처럼 들리는 바로 그 리듬입니다. 그리고 몇 마디 뒤, 우리가 아는 선율이 호른과 베이스 트럼펫에서 처음 나옵니다. 이 선율은 이어서 다른 호른과 트럼펫으로 넘어가고, 되풀이될 때마다 함께 부는 금관이 늘어 소리가 두꺼워집니다. 같은 선율이 악기를 바꿔 가며 계속 돌아오기 때문에 곡이 길어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오페라 무대에서는 여기에 노래가 얹힙니다. 바위 위에 먼저 도착한 발퀴레들이 구름 쪽으로 「호요토호! 하이아하!」 하고 외쳐 자매를 부르고, 번갯빛 속에 안장에 전사자를 매단 발퀴레가 말을 타고 지나갑니다. 자매들은 하나씩 도착해 서로 이름을 부르고, 어느 전사자가 누구와 싸웠는지 주고받습니다. 연주회에서 자주 듣는 판은 이 노래를 빼고 관현악만 연주하는 것이라, 무대 장면의 외침과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오페라 녹음으로 한 번 들어 보면 이 음악이 전투의 한복판이 아니라 싸움을 마치고 모여드는 자매들의 소란이라는 것이 귀로 확인됩니다. 여덟이 다 모인 뒤에도 브륀힐데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녀가 지클린데를 데리고 쫓기듯 도착하면서 장면은 보탄의 추격을 앞둔 긴장으로 넘어갑니다.

발퀴레의 기행 악기 편성, 호른 여덟 대의 오케스트라

이 음악의 힘은 악기 수에서도 나옵니다. 〈발퀴레〉 총보 첫머리의 편성표에는 호른 여덟 대가 적혀 있습니다. 그중 네 사람은 바그너가 이 4부작을 위해 마련한 튜바(오늘날 흔히 바그너 튜바라고 부르는 악기)를 번갈아 붑니다. 여기에 트럼펫 셋과 베이스 트럼펫, 트롬본 셋과 콘트라베이스 트롬본, 콘트라베이스 튜바가 더해집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호른이 넷이었던 것과 견주면 금관이 얼마나 두꺼워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악기도 제1·제2 바이올린이 각각 열여섯이고, 하프는 여섯 대입니다.

바그너는 이 오케스트라를 노래 반주로만 쓰지 않았습니다. 〈발퀴레의 기행〉의 선율은 발퀴레들과 묶인 동기(인물이나 사물에 붙어 다니는 짧은 선율)여서,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 인물을 소리로 불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노래를 빼고 관현악만으로 연주해도 장면이 그려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발퀴레의 기행

이 음악에 현대 전쟁의 이미지를 덧입힌 대표적인 예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79년 영화 〈지옥의 묵시록〉입니다. 영화 속 킬고어 중령이 이끄는 미 육군 헬리콥터 부대는 베트남 해안 마을을 공격하러 날아가면서 헬기에 단 확성기로 〈발퀴레의 기행〉을 크게 틉니다. 로터 소리와 총성과 폭발음 위로 바그너의 금관이 겹치는 이 장면은 이 곡이 영화에 쓰인 예로 지금도 자주 거론됩니다.

오페라의 장면과 나란히 놓으면 영화가 무엇을 바꾸었는지 보입니다. 바그너의 발퀴레들은 이미 끝난 싸움에서 죽은 이들을 싣고 돌아와 한자리에 모입니다. 영화의 헬기들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공격을 향해 날아갑니다. 하늘을 가르는 바람과 말발굽 같은 리듬, 그리고 위에서 내려꽂히는 금관은 그대로인데, 그 소리가 가리키는 방향이 거꾸로 뒤집힌 셈입니다.

다시 들을 때

다음에 이 곡을 틀면 선율이 나오기 전의 몇 마디에 먼저 귀를 두어 보시기 바랍니다. 현악기의 솟구침과 목관의 떨림, 그리고 그 아래에서 시작되는 말발굽 리듬이 차례로 쌓이는 것이 들립니다. 선율이 호른에서 트럼펫으로 넘어가며 금관이 한 겹씩 늘어나는 순간도 짚어 보십시오. 그다음에는 노래가 들어간 오페라 녹음으로 같은 장면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호요토호!」 외침이 얹히는 순간, 헬기의 음악으로만 알던 곡이 바위산 위 여덟 자매의 목소리로 다시 들릴 것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음악 감상하기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 문의 및 쪽지함
반갑습니다!
문의사항은 이 쪽지함으로 남겨주세요!
🔒 관리자에게만 안전하게 전송됩니다.
⏰ 현재: —
🚀 최초: —
🕐 방금 접속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