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시리즈] 게오르크 솔티, 오페라하우스와 오케스트라, 녹음실을 잇다

작성자

카테고리:

, ,

게오르크 솔티(Georg Solti)는 어떻게 오페라극장, 교향악단, 녹음실을 한 경력 안에서 이었을까요? 연도만 보면 재직과 녹음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다릅니다. 극장의 무대 감각,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녹음실의 책임감은 솔티에게 분리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1969년의 솔티는 코벤트가든(1961~1971)을 맡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시카고 심포니(1969~1991)도 이끌고 있었습니다. Decca 〈니벨룽의 반지〉 녹음(1958~1965)도 프랑크푸르트·코벤트가든 재임기에 걸쳐 있습니다. 시카고 재임 중에는 파리 관현악단 음악감독(1972~1975)까지 함께 맡았습니다.

인물 한눈에 보기
• 한 줄 정의: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녹음실을 오가며 20세기 지휘자의 활동 범위를 넓힌 헝가리 태생의 영국 지휘자
• 생몰: 1912년 10월 21일 ~ 1997년 9월 5일
• 국적 이력: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1953년 독일 시민권 취득, 1972년 영국 시민권 취득
• 핵심 자리: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음악총감독 1952~1961, 코벤트가든 음악감독 1961~1971, 시카고 심포니 음악감독 1969~1991
• 대표 녹음: Decca의 〈니벨룽의 반지〉 전곡, 최초의 스테레오 스튜디오 전곡 제작

솔티 시작하기
• 처음 접한다면: 솔티와 빈 필하모닉의 Decca 〈니벨룽의 반지〉 전곡에서 한 장면을 골라, 그 녹음이 왜 ‘스튜디오 전곡’이라는 말과 함께 기억되는지 들어 보세요.

1975년 런던에서 촬영한 지휘자 게오르크 솔티의 초상 사진
1975년 런던에서 촬영한 게오르크 솔티

오페라하우스에서 시작된 경력의 축

솔티는 부다페스트 리스트 음악원에서 배웠습니다. 스승은 버르토크·도흐나니·코다이·바이너였습니다. 1937년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토스카니니의 조수로 발탁됐습니다. 전쟁이 다가오자 스위스로 피신해 피아니스트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1942년에는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그가 극장의 문법을 빠르게 흡수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전후인 1946년, 솔티는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됐습니다. 이어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의 음악총감독을 맡았습니다(1952~1961). 1961년부터 1971년까지는 코벤트가든의 음악감독으로 일했습니다.

이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극장을 거쳐 갔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프랑크푸르트와 코벤트가든에서 쌓은 두 직함은 이후 시카고와 Decca를 만날 때도 이어집니다. 덕분에 솔티는 오페라와 교향악단, 녹음 중 한 영역에만 머문 지휘자로 좁혀 읽히지 않습니다. 오페라의 토스카니니, 교향악단의 푸르트벵글러, 음반의 카라얀과 나란히 놓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영역을 한 경력 안에서 동시에 오간 지휘자는 드뭅니다.

로열 오페라의 공식 역사는 솔티 시기에 레퍼토리와 연주 양식에 변화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가 직접 지휘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새 프로덕션은 넷입니다. 〈장미의 기사〉·〈그림자 없는 여인〉·〈아라벨라〉·〈살로메〉입니다.

시카고 심포니 22년, 그리고 겹쳐 있던 자리들

솔티가 시카고 심포니를 음악감독으로 이끈 기간은 1969년부터 1991년까지 22년입니다. 이 시작은 코벤트가든 음악감독 재임의 마지막 세 해(1969~1971)와 겹칩니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그는 Music Director Laureate(음악감독 명예직)를 맡았습니다. 이는 음악감독 재임 뒤에 부여된 별도 직함입니다.

CSO의 공식 말러 자료에 따르면 상황이 바뀐 것은 1969년 솔티 부임 이후였습니다. 그제야 말러의 모든 교향곡이 이 악단의 정기 레퍼토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교향곡 제5번〉을 되살리고, 제7번을 37년 만에, 제8번을 54년 만에 이끌었습니다. 이어 10년 넘게 아홉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녹음했습니다.

시카고의 22년은 다른 자리들과도 겹칩니다. 솔티는 시카고 재임 중이던 1972~1975년, Orchestre de Paris의 음악감독을 맡았습니다. 이어 1979~1983년에는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의 수석지휘자를 겸했습니다. 한 지휘자의 활동을 한 도시와 한 악단으로만 좁혀 읽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솔티의 경력은 한 자리를 떠나 다음 자리로 옮기는 단선적인 연표로 읽기 어렵습니다. 서로 다른 조직에 동시다발적으로 닿아 있던 지도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솔티는 소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솔티에게 그 답은 리허설의 정직한 노동에서 시작됩니다. 1988년 인터뷰에서 그는 “먼저 힘든 노동이 있고, 그다음에야 무언가가 더해진다. 노동 없이는 그 ‘더해지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대 위 영감은 리허설이 끝난 뒤에야 허락되는 몫이었습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시작된 경력은 이 노동관을 특히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솔티는 “거리에서 곧장 걸어 들어와 오페라를 지휘할 수는 없다. 오페라극장 안에서 자라야 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대와 조명, 동작까지도 지휘자가 알아야 할 몫이라고 봤습니다. 프랑크푸르트와 코벤트가든에서 보낸 세월은 이 앎을 몸에 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 때도 이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녹음실에서는 같은 노동관에 다른 무게가 더해졌습니다. 솔티는 “콘서트는 연주하고 나면 사라지지만, 녹음은 20년이든 30년이든 40년이든 남는다. 그 책임감이 연주에 특별한 무언가를 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페라하우스의 무대 감각,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녹음실의 반복 청취는 서로 다른 일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노동관이 세 곳에서 다르게 나타났을 뿐입니다.

〈니벨룽의 반지〉가 남긴 스튜디오의 시간

솔티의 Decca 〈니벨룽의 반지〉 전곡은 1958년부터 1965년까지 빈에서 녹음됐습니다. 이 기간은 프랑크푸르트 재임(1952~1961)과 코벤트가든 재임(1961~1971)에 걸쳐 있습니다. 빈 필하모닉과 함께한 이 프로젝트는 Decca의 프로듀서 존 컬쇼가 제작을 총괄했습니다.

Decca는 이를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의 최초의 스테레오 스튜디오 전곡 제작으로 규정합니다. 컬쇼는 이 작업을 ‘마음의 극장(theatre of the mind)’이라 불렀습니다. 무대 없이도 청자의 머릿속에 오페라의 극적 공간을 그려내는 것이 스튜디오 녹음의 목표라는 뜻이었습니다.

1974년 암스테르담에서 데카 음반을 들고 앉아 있는 게오르크 솔티
1974년 9월 25일 암스테르담 암스텔호텔에서 새 음반을 들고 있는 솔티.

31회 GRAMMY 기록

솔티의 경력 총 GRAMMY 수상은 31회이며, 후보는 74회입니다. 마지막 수상은 40th Annual GRAMMY Awards였습니다. 부문은 Best Opera Recording, 작품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입니다. 이 31회에는 사후 수상도 포함됩니다.

솔티의 31회는 클래식 분야 최다 수상 기록입니다. Beyoncé는 2023년 32회로 솔티를 넘었고, 2026 GRAMMYs 기준 35회입니다.

어디서부터 들을까

처음 접한다면 〈라인의 황금〉 3장, 니벨하임으로 내려가는 장면을 들어 보세요. 악보는 18개의 조율된 모루를 요구하는데, 실제 무대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 지시입니다. 컬쇼는 실제로 모루 18개와 연주자 18명을 구해 이 장면을 녹음했습니다. 대장간의 쇳소리가 스튜디오 안에서 입체적으로 울립니다. 그 순간 ‘마음의 극장’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힙니다.

한 발 더 들어간다면 이 한 장면에서 시작해 전곡으로 넓혀 가 보세요. 오페라하우스의 무대 감각과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녹음실의 책임감이 어디서 만나는지 따라가면 됩니다.

마무리

솔티의 생애에는 프랑크푸르트, 코벤트가든, 시카고, 파리, 런던이 차례로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들은 단순한 이력의 정거장이 아닙니다. 오페라하우스와 교향악단, 녹음실을 서로 떨어진 영역으로 보지 않게 하는 연결점입니다.

그의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들을 때도 같은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시카고 심포니의 22년을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지휘자는 어느 한 자리에서만 완성되는가. 솔티의 경력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서로 다른 자리의 시간이 겹쳐 한 사람의 이름을 만든다고 말입니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 문의 및 쪽지함
반갑습니다!
문의사항은 이 쪽지함으로 남겨주세요!
🔒 관리자에게만 안전하게 전송됩니다.
⏰ 현재:
🚀 최초:
🕐 방금 접속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