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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시리즈] 클라우디오 아바도, 침묵으로 이끈 지휘자

루체른 페스티벌의 리허설장. 위암 투병 이후 눈에 띄게 야윈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눈빛과 손짓만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습니다.

아바도의 리허설을 지켜본 이들의 증언에는 한 가지 특징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카네기홀 전 총감독 클라이브 길린슨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는 리허설에서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너무 수줍어서 아주 조용히 말한다. 하지만 효과가 있다. 모두가 그의 연주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권위 대신 침묵과 신뢰로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의 이야기를 추적해 보려 합니다.

인물 한눈에 보기
• 한 줄 정의: 권위 대신 침묵과 신뢰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청년음악가 육성에 헌신한 지휘자
• 생몰: 1933년 6월 26일 ~ 2014년 1월 20일
• 국적·주 활동지: 이탈리아(밀라노) 출생, 밀라노·런던·빈·베를린·루체른 중심 활동
• 오페라·오케스트라 경력: 라 스칼라 1969~1986(상임지휘자→음악감독→공동예술감독), 런던 심포니 상임지휘자 1979~1988,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 1986~1991
•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1990~2002
• 대표 창단: 구스타프말러청년오케스트라 창단(1986), 루체른페스티벌오케스트라 창단(2003)

아바도 시작하기 좋은
• 처음이라면: 루체른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남긴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2013년 볼로냐에서 미소 짓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근접 초상
2013년 3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의 클라우디오 아바도 (출처 : Wikimedia Commons · Sideralis · CC BY-SA 4.0)

라 스칼라, 개혁의 시작

밀라노에서 태어난 아바도는 밀라노 음악원과 빈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했습니다. 그의 경력은 1960년대 후반, 밀라노의 명문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는 1969년 이 극장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됐습니다. 1972년에는 음악감독이 됐습니다. 1976년부터는 연출가 조르조 스트렐러 등과 공동예술감독을 맡았고, 1986년까지 재직했습니다(이후 후임은 리카르도 무티였습니다).

이 시기 그가 시행한 개혁은 오페라계의 관습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오페라 시즌을 4개월로 늘렸습니다. 노동자와 학생을 위한 저렴한 공연도 마련해, 그때까지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오페라를 더 많은 시민에게 열어 주었습니다.

루이지 달라피콜라나 루이지 노노 같은 현대 작곡가의 작품도 적극적으로 무대에 올렸습니다. 1976년에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라 스칼라 오페라단을 이끌고 워싱턴 D.C.에서 공연했습니다.

런던과 빈을 거쳐 베를린으로

라 스칼라에서 물러날 무렵, 아바도의 활동 무대는 이미 오페라하우스 밖으로 넓어져 있었습니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았습니다. 1986년에는 빈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도 취임해 1991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세 도시의 경력이 겹치는 이 시기는 그가 오페라와 교향악단을 오가며 다음 자리를 준비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 자리가 베를린 필하모닉이었습니다.

카라얀의 후임, 베를린필하모닉

1989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상임지휘자직에서 물러나고 몇 달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베를린필하모닉 단원들은 그해 말 투표를 통해 아바도를 후임으로 선출했습니다. 아바도는 이듬해인 1990년 정식으로 취임해 2002년까지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후 사이먼 래틀이 뒤를 이었습니다.

카라얀 시대와 비교하면 오케스트라의 소리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베를린필 공식 회고는 아바도 시기의 음향이 점점 더 투명해졌다고 설명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대편성의 실내악'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구스타프 말러와 현대음악 레퍼토리도 오케스트라의 중심 목록으로 끌어올렸습니다.

2008년 베를린 발트뷔네 야외무대에서 연미복 차림으로 서 있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뒤편의 오케스트라
2008년 5월 베를린 발트뷔네 무대에 선 클라우디오 아바도 (출처 : Wikimedia Commons · Leonach · CC BY-SA 3.0 DE)

젊은 음악가를 키우다

아바도는 평생 젊은 연주자를 발굴하고 키우는 일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습니다. 1976년, 조이와 라이오넬 브라이어 부부가 유럽의회의 결의에 따라 유럽연합청년오케스트라(당시 명칭은 유럽공동체청년오케스트라)를 창설했습니다. 아바도는 이 오케스트라의 초대 음악감독을 맡았습니다.

1986년에는 직접 구스타프말러청년오케스트라를 창단했습니다. 유럽 전역의 젊은 연주자들이 오디션을 거쳐 모이는 오케스트라입니다. 여기서 성장한 연주자들의 네트워크는 이후 아바도가 만든 여러 악단으로 이어졌습니다.

투병과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000년, 아바도는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한동안 무대를 떠나 치료와 회복에 전념했습니다. 2001년 2월, 그는 베를린필과 함께 빈 무지크페라인 무대에 다시 섰습니다. 몰라보게 야윈 모습이었지만, 그는 지휘봉을 다시 들었습니다.

이 복귀 공연 몇 주 뒤, 그는 루체른 페스티벌 예술감독 미하엘 해플리거와 함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창단을 발표했습니다. 2003년 출범한 이 악단은 1938년 토스카니니가 모았던 전설적인 '엘리트 오케스트라'의 정신을 되살린 것으로 소개됩니다. 단원은 아바도가 직접 골랐습니다. 저명한 솔리스트와 실내악 연주자, 음악 교수, 그리고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라 스칼라 필하모니카의 단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년 여름 그의 음악적 유산이 집약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침묵의 리더십, 권위 대신 신뢰

아바도의 리허설은 결이 달랐습니다. 그는 리허설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대신 짧은 요청과 눈빛, 손짓만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그의 수줍은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지휘자가 리허설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단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카라얀이 정교하게 통제된 음향을, 첼리비다케가 극단적으로 긴 리허설을 택했다면, 아바도는 침묵과 신뢰로 같은 목표에 다가갔습니다.

오늘 어디서부터 들을까

처음이라면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남긴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들어 보세요. 현이 거의 속삭이듯 들어오고, 하프가 그 위를 조용히 받칩니다. 말을 아낀 지휘자가 소리로 무엇을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 발 더 들어간다면 베를린필하모닉 시절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들어 보세요. 카라얀 이후 이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어느 방향으로 투명해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아바도는 카라얀과 첼리비다케 다음 세대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 준 지휘자였습니다. 통제도, 고집도 아닌 침묵과 신뢰였습니다.

그는 이 방식을 병마 앞에서도 놓지 않았습니다. 치료로 한동안 무대를 떠났지만, 회복한 뒤에는 다시 야윈 몸으로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젊은 연주자들을 무대 위로 이끌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가 키운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들은 계속 연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