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사계 가을, 소네트와 악장 해설, 수확 축제와 사냥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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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서는 새가 노래하고 〈여름〉에서는 폭풍이 몰아칩니다. 〈가을〉에서 먼저 들리는 것은 사람입니다. 합주가 묵직한 발걸음 같은 리듬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사계〉 세 번째 곡 〈가을(L’Autunno)〉 F장조 RV 293입니다. 1725년 초판 악보는 첫머리에 「농부들의 춤과 노래」라고 적었습니다. 이어 「술꾼」, 「잠든 술꾼들」, 「사냥」이라는 표기가 차례로 나옵니다. 악보의 표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하는 일, 곧 춤과 술과 잠과 사냥을 부릅니다.

붉은 두건을 쓴 여인이 창가에서 포도 바구니를 들고 있는 그림
프란츠 폰 마치가 그린, 포도 바구니를 든 여인이다. 청포도와 적포도가 바구니에 가득하다.

  〈사계〉가 어떤 곡집에 실렸는지, 소네트와 악보에 붙은 A, B, C 글자 표시가 무엇인지는 비발디 사계 봄 글에서 정리했습니다. 바로 앞 곡은 비발디 사계 여름입니다.

1. 사계 가을 소네트 원문과 번역

  원문은 1725년 초판의 철자를 따랐습니다. 괄호 안의 영문 대문자는 악보의 해당 대목에 새겨진 글자입니다.

1악장 알레그로(Allegro), F장조

(A) Celebra il Vilanel con balli e Canti
Del felice raccolto il bel piacere
(B) E del liquor di Bacco accesi tanti
(C) Finiscono col Sonno il lor godere

  농부가 춤과 노래로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축하합니다. 바쿠스의 술에 달아오른 많은 이들이 결국 잠으로 그 즐거움을 끝맺습니다.

2악장 아다지오 몰토(Adagio molto)

(D) Fà ch’ogn’uno tralasci e balli e canti
L’aria che temperata dà piacere,
E la Staggion ch’invita tanti e tanti
D’un dolcissimo Sonno al bel godere.

  기분 좋게 선선한 공기가 모두에게 춤도 노래도 내려놓게 하고, 계절은 그 많은 이들을 더없이 달콤한 잠의 즐거움으로 이끕니다.

3악장 알레그로(Allegro), F장조

(E) I cacciator alla nov’alba à caccia
Con corni, Schioppi, e canni escono fuore
(F) Fugge la belva, e Seguono la traccia;
(G) Già Sbigottita, e lassa al gran rumore
De’ Schioppi e canni, ferita minaccia
(H) Languida di fuggir, mà oppressa muore

  사냥꾼들이 새벽이 밝자 뿔나팔과 총과 개를 거느리고 사냥에 나섭니다. 짐승이 달아나고 사냥꾼들은 그 자취를 쫓습니다. 총소리와 개 짖는 소리에 이미 겁에 질리고 지친 짐승은 상처를 입은 채 힘없이 달아나려 하지만, 몰린 끝에 죽고 맙니다.

2. 가을 1악장, 농부들의 춤과 술꾼

  1악장은 합주가 같은 리듬을 힘차게 되풀이하는 춤 가락으로 시작합니다. 악보의 첫 표기 「농부들의 춤과 노래(Ballo e Canto de’ Villanelli)」 그대로,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발을 구르는 소리입니다. 이 가락은 악장 안에서 여러 번 돌아오며 잔치의 바탕이 됩니다.

  B에서 독주 바이올린 악보에는 「술꾼(L’Ubriaco)」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빠른 음형을 위아래로 휘두르다 셋잇단음(한 박을 셋으로 나눈 음)으로 리듬을 바꾸고, 가락이 높이 올라갔다 갑자기 떨어지기를 거듭합니다. 술에 달아올라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들립니다. 악장이 끝나 갈 무렵 C에서는 음악이 갑자기 아주 여려지고 긴 음으로 늘어집니다. 시의 「결국 잠으로 즐거움을 끝맺는다」는 대목입니다. 술꾼이 잠깐 졸다 깨듯, 합주는 다시 빠른 춤 가락으로 돌아와 악장을 마칩니다.

3. 가을 2악장, 잠든 술꾼들

  2악장의 악보에는 「잠든 술꾼들(Dormienti Ubriachi)」이라고 적혀 있고, 독주 바이올린과 두 합주 바이올린, 비올라에는 약음기(소리를 줄이는 작은 장치)를 끼우라는 지시가 붙어 있습니다. 약음기를 끼운 현악기들이 긴 화음을 천천히 이어 가고, 그 사이로 쳄발로(하프시코드)가 화음을 한 음씩 흩어 굴립니다. 악보에 쳄발로를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라는 지시가 따로 적혀 있습니다. 이 악장에는 독주 바이올린이 앞에 나서는 가락이 없습니다. 협주곡의 느린 악장인데 주인공이 빠진 셈이고, 들리는 것은 잠든 사람들 위로 흐르는 흐릿한 화음뿐입니다. 1악장의 소란이 컸던 만큼 이 고요가 더 깊게 들립니다. 쳄발로를 어떻게 굴리는지는 연주자에게 맡겨져 있어서, 음반마다 이 악장의 결이 가장 많이 달라집니다.

4. 가을 3악장, 새벽 사냥

  3악장 첫머리에는 「사냥(La Caccia)」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 마디를 셋으로 세는 경쾌한 박자(3/8박자)에 합주가 짧고 긴 음을 엇갈려 부는 가락을 냅니다. 사냥 나팔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로, 이 가락이 돌아올 때마다 사냥꾼들이 들판을 누빕니다. 그 사이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달아나는 짐승이 됩니다. G에서 시구는 「총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말하고, 독주 바이올린은 셋잇단음을 쉼 없이 몰아치며 쫓기는 짐승의 다급함을 그립니다. H에서는 악보에 「달아나다 죽는 짐승(La Fiera fuggendo Muore)」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독주 바이올린의 빠른 음형이 길게 끌리다 잦아듭니다. 사냥 가락이 돌아와 악장을 닫습니다. 경쾌한 사냥 음악 한가운데 짐승의 죽음이 들어 있다는 것이 〈가을〉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5. 사계 가을 추천 음반, 카르미뇰라와 비온디

  두 음반 모두 바로크 시대 방식의 악기와 연주법을 따르는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의 녹음입니다. 같은 방식인데도 1악장의 춤과 2악장의 쳄발로가 꽤 다르게 들립니다.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안드레아 마르콘 (소니, 2000년 발매)

  카르미뇰라(Giuliano Carmignola)는 〈사계〉를 두 번 녹음했습니다. 1992년 소나토리 데 라 조이오사 마르카와 디복스에 녹음했고, 1999년 안드레아 마르콘이 이끄는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다시 녹음해 2000년 소니에서 냈습니다. 아래 영상은 두 번째 녹음입니다.

1악장

2악장

3악장

파비오 비온디, 에우로파 갈란테 (오푸스 111, 1991년)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오 비온디(Fabio Biondi)가 1990년에 만든 악단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와 1991년 오푸스 111(Opus 111)에 녹음한 음반입니다. 쳄발로와 류트 계열 악기가 받치는 저음이 두텁고, 셈여림과 빠르기의 변화를 크게 써서 1악장의 춤이 더 거칠게 들립니다. 비온디는 2000년에 같은 악단과 다시 녹음해 버진(Virgin)에서 냈습니다. 아래 영상은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가을〉 전 악장입니다.

  두 연주를 비교할 때는 1악장 B의 술꾼 대목과 2악장의 쳄발로를 들어 보십시오. 악보에 적힌 것은 같아도 연주자가 채우는 몫이 가장 큰 두 곳입니다.

6. 사계 네 계절 함께 듣기

계절 작품 번호·조성 소네트의 장면
봄 RV 269 · E장조 새소리·샘물·천둥 · 잠든 염소지기와 개 · 백파이프 춤
여름 RV 315 · G단조 더위와 새들·바람 · 파리 떼와 천둥 · 우박 폭풍
가을(지금 글) RV 293 · F장조 수확 춤과 술꾼 · 잠든 술꾼들 · 새벽 사냥
겨울 RV 297 · F단조 떨림과 칼바람 · 난롯가와 바깥의 비 · 얼음길과 바람의 싸움

  다음에 〈가을〉을 들을 때는 1악장 끝의 짧은 졸음과 2악장 전체를 이어서 들어 보십시오. 1악장 끝에서 잠깐 스치던 졸음이 2악장에서는 한 악장 전체의 잠으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3악장은 소네트대로 새벽의 사냥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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