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BWV 988)에는 잘 알려진 사연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밤마다 불면에 시달리던 카이절링 백작을 위해, 바흐가 이 곡을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확정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통째로 지어낸 것으로 보기에는, 세 사람이 실제로 서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포르켈은 이렇게 전합니다. 러시아 대사 카이절링 백작(Hermann Carl von Keyserlingk)이 불면증을 달래기 위해, 전속 연주자였던 소년 골드베르크에게 연주시킬 곡을 바흐에게 위촉했다. 곡을 받은 백작은 크게 만족해 황금 잔에 백 루이도르를 채워 바흐에게 사례했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무엇이며 얼마나 늦게 나왔는가
이 이야기의 사실상 유일한 출처는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Johann Nikolaus Forkel)이 1802년에 펴낸 바흐의 첫 전기, 《바흐의 생애와 예술, 작품에 대하여》입니다. 바흐가 175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 기록은 바흐 사후 52년이 지나서야 나온 셈입니다. 포르켈은 바흐를 직접 만난 적이 없고, 이 전기의 상당 부분은 바흐의 두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와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Wilhelm Friedemann Bach)에게 들은 이야기에 기대고 있습니다.
포르켈에 따르면 카이절링은 라이프치히에 자주 머물 때마다 골드베르크를 데리고 다니며 바흐에게 음악을 배우게 했고, 병약해 잠 못 이루는 밤이 잦았습니다. 포르켈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Goldberg, der bey ihm im Hause wohnte, mußte in solchen Zeiten in einem Nebenzimmer die Nacht zubringen, um ihm während der Schlaflosigkeit etwas vorzuspielen." 우리말로 옮기면 "그의 집에 살던 골드베르크는 그런 밤이면 옆방에서 밤을 지새우며 불면 중에 무언가를 연주해 주어야 했다"입니다. 이어 포르켈은 이렇게 썼습니다. "Einst äußerte der Graf gegen Bach, daß er gern einige Clavierstücke für seinen Goldberg haben möchte, die so sanften und etwas muntern Characters wären, daß er dadurch in seinen schlaflosen Nächten ein wenig aufgeheitert werden könnte." "언젠가 백작은 바흐에게, 자신의 골드베르크를 위해 부드럽고도 다소 경쾌한 성격의 클라비어 소품 몇 곡을 갖고 싶다고, 그러면 잠 못 이루는 밤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뒷받침하는 다른 기록은 없습니다. 계약서도, 백작이나 바흐가 남긴 편지도, 이 위촉을 언급하는 동시대 문서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있는 것은 포르켈의 문장뿐이고, 그 문장은 반세기가 넘는 시차를 두고 구전에 기대어 쓰였습니다.
1741년 초판에 없는 것
위촉을 받아 쓴 곡이라면 보통 위촉자에게 바치는 헌정사가 붙습니다. 바흐도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에게, 음악의 헌정을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바치며 그 사실을 표제지에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1741년 초판, 뉘른베르크의 발타자어 슈미트(Balthasar Schmid)가 동판으로 찍어 낸, 오늘날 클라비어 연습곡 제4부로 분류되는 이 작품의 표제지에는 카이절링도 골드베르크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초판을 소장한 모건 도서관 박물관(The Morgan Library & Museum)은 표제지 문구를 이렇게 전합니다. "Clavier Ubung bestehend in einer Aria mit verschiedenen Veraenderungen vors Clavicimbal mit 2 Manualen. Denen Liebhabern zur Gemüths-Ergetzung verfertiget von Johann Sebastian Bach, Königl. Pohl. u. Churfl. Saechs. Hoff-Compositeur, Capellmeister, u. Directore Chori Musici in Leipzig." 우리말로 옮기면 "두 단 건반의 클라비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다양한 변주들로 이루어진 클라비어 연습곡. 애호가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 폴란드 왕실 겸 작센 선제후의 궁정작곡가이자 카펠마이스터, 라이프치히 합창감독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지음" 정도가 됩니다. 백작에게 바치는 문구도, 곡을 처음 연주할 골드베르크의 이름도 어디에도 없고, 대신 바흐 자신의 공식 직함만 나열되어 있습니다.
한 개인을 위해, 그것도 백작의 불면증을 달래기 위해 특별히 위촉받은 곡이 정작 인쇄될 때는 그 백작의 이름을 지운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 침묵은 이야기가 지어낸 것이라는 증거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열네 살 소년과 백작의 밤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Johann Gottlieb Goldberg)는 1727년 3월 14일 단치히의 성모교회(Marienkirche)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곡이 인쇄된 1741년을 기준으로 그는 열네 살, 위촉이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1740년을 기준으로는 아직 열세 살이었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서른 개의 변주와 아리아로 이루어진, 바흐의 건반 작품 가운데서도 손꼽히게 연주하기 어려운 곡입니다. 통설이 그리는 장면은, 이 곡을 열세, 열네 살 소년이 백작의 침실 옆방에서 밤마다 즉석으로 연주해 냈다는 것입니다. 골드베르크가 뛰어난 신동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이 정도 난도의 신작을 그 나이에 상시로 소화했다는 서사는 나이만 놓고 보면 빠듯합니다.
그런데 카이절링과 바흐는 실제로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야기 전체를 지어낸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이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카이절링 백작은 실존 인물입니다.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절링(1696~1764)은 1733년부터 1745년까지 드레스덴 작센 선제후궁에 주재한 러시아 대사였고, 이 기간에 라이프치히의 바흐와 실제로 접점이 있었습니다. 1736년 바흐가 오랫동안 원하던 폴란드 왕실 겸 작센 선제후 궁정작곡가 칭호를 받았을 때, 카이절링이 이 과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골드베르크와 카이절링의 관계도 통설이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골드베르크는 실제로 카이절링의 전속 실내악사로 일했고, 바흐와 그의 맏아들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에게 배운 제자였습니다. 즉 백작, 골드베르크, 바흐라는 세 인물이 한 무대 위에 있었다는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 통설이 흔들리는 지점은 이들이 만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만남에서 정확히 무엇이 오갔는가, 즉 이 곡이 불면증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위촉되었고 그 대가로 황금 잔이 오갔다는 구체적인 장면입니다.
최종 판정
카이절링, 골드베르크, 바흐 세 사람의 실제 관계는 확인됩니다. 그러나 불면증을 달래기 위한 위촉과 황금 잔 사례라는 이야기의 핵심 장면은 바흐 사후 52년이 지나 나온 포르켈의 단일 기록에만 의지하고 있고, 1741년 초판에는 이를 뒷받침할 헌정사가 없으며, 골드베르크의 나이도 이야기가 그리는 상시 연주자 역할과 아슬아슬하게 맞물립니다. 무대는 실재했지만, 그 무대 위에서 벌어졌다는 구체적 사건을 확정할 독립된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특히 황금 잔에 백 루이도르를 채워 사례했다는 장면은 포르켈의 서술 외에 이를 뒷받침하는 독립된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곡 자체의 구조나 서른 개 변주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무엇을 듣고 있나에서 이어 볼 수 있습니다. 이 곡을 실제로 어떻게 들을지, 연주로 넘어가 보고 싶다면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1955년과 1981년은 왜 이렇게 다를까를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