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작곡가 바그너는 거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무려 28년이라는 세월을 바쳐 1876년에 4부작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를 완성한 것이다. 바그너는 단순히 작곡만 한 것이 아니라, 북유럽과 독일 신화를 바탕으로 대본까지 직접 썼다. 신과 영웅, 난쟁이와 거인이 등장하는 이 장대한 이야기는 신들의 왕 보탄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반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시작된다.
<니벨룽겐의 반지>는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이라는 네 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엄청난 규모의 공연을 제대로 올리기 위해, 바그너는 자신만의 특별한 극장까지 독일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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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여신들 '발퀴레'
<발퀴레>는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다. 여기서 '발퀴레'는 신들의 왕 보탄의 아홉 딸을 가리킨다. 이들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다니며, 전쟁터에서 용감히 싸우다 죽은 영웅들의 영혼을 거두어 신들의 세계 '발할'로 데려가는 임무를 맡은 전쟁의 여신들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발퀴레 중 하나이자 보탄이 가장 사랑하는 딸, '브륀힐데'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는 데서 시작된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이라고 명령한 인간 영웅을 외면하지 못하고, 훗날 더 위대한 영웅 '지크프리트'를 낳게 될 여인 '지클린데'를 구해서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음악으로 그린 폭풍 같은 전장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인 '발퀴레의 기행(Ride of the Valkyries)'은 3막이 시작되자마자 등장한다. 치열한 전투가 끝난 바위산 꼭대기로 발퀴레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장면에서, 음악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전장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음악이 시작되면, 날카롭고 빠르게 떠는 듯한 소리들이 마치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기 전의 긴장감 넘치는 바람 소리처럼 들린다. 곧이어 낮고 육중한 악기들이 '다그닥 다그닥' 규칙적인 리듬을 연주하는데, 이는 수많은 말들이 땅을 울리며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그 장엄하고 힘찬 팡파르가 금관악기들을 통해 터져 나온다. 바로 전쟁터의 여신, 발퀴레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순간을 알리는 신호다. 이 모든 소리가 한데 얽히며 만들어내는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오케스트라를 뒤집은 혁명가
바그너는 오케스트라를 단순히 노래의 배경 음악으로 쓰지 않았다. 그는 특히 트럼펫이나 호른 같은 금관악기의 수를 크게 늘려 웅장함을 극대화했고, 오케스트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주인공처럼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게 만들었다. '발퀴레의 기행'은 바로 그런 바그너의 음악적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곡 중 하나다.
영화 속 강렬한 상징이 되다
이 음악은 영화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군 헬리콥터 부대가 베트남 마을을 폭격하러 가면서 스피커로 이 음악을 크게 트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이후 '발퀴레의 기행'은 단순한 클래식을 넘어, 전쟁의 광기와 파괴적인 힘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