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숭고함의 최정점을 단 하나만 고르라면, 주저 없이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교향곡 9번 d단조 Op.125 ‘합창’(Choral)을 떠올립니다. 이 작품은 ‘교향곡’이라는 틀 안에서 완성되었지만, 그 울림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고통의 심연을 지나 환희의 정상으로 나아가는 이 여정은, 인류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가장 위대한 위로이자,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형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의 선언에 가깝습니다.
이 글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탄생 배경과 1824년 5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초연의 현장을 짚은 뒤, 1~4악장(특히 4악장 ‘환희의 송가’)의 구조·상징·청취 포인트를 정밀하게 해설하고, 마지막에는 해석 성향별 추천 명반·유튜브 감상 가이드까지 한 번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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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비히 판 베토벤 초상(요제프 카를 슈틸러, 1820) |
필요한 구간만 골라 읽어도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구성했습니다.
1. 창작의 기원 · 2. 악장별 정밀 해설 · 3. 1824년 초연 · 4. 유산과 파급력 · 5. 추천 명반 가이드 · 6. 마무리 · 7. 감상 팁 & FAQ
1. 창작의 기원: 30년의 기다림과 침묵 속의 투쟁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작품이 아닙니다. 이 교향곡의 씨앗은 베토벤이 아직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거대한 건축에 손대기 전, 청년 시절부터 마음 깊은 곳에 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30년 이상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베토벤의 삶과 함께 자라고 뒤틀리고, 다시 단단해지면서 마침내 1824년의 대작으로 응결합니다.
실러의 ‘환희의 송가’와 평생의 숙원
1790년대 초, 베토벤은 계몽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를 접하고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유·평등·인류애를 노래하는 이 시는, 젊은 베토벤에게 “음악이 인간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준 텍스트였습니다. 주변 인물들이 그가 이 시를 ‘언젠가 반드시’ 음악으로 옮기려 했다고 전해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곧장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은 오랜 시간 ‘때’를 기다리며 음악적 실험을 반복합니다. 1795년의 가곡 ‘서로 사랑함(Gegenliebe)’에서 ‘형제애’의 정서를 만져 보고, 1808년의 ‘합창 환상곡(Choral Fantasy, Op. 80)’에서는 피아노·오케스트라·합창이 결합된 형태로 ‘합창 교향곡’의 도착지를 미리 비춰 봅니다. 특히 합창 환상곡은 9번 교향곡 4악장의 구성을 예고하는 전초전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런던의 위촉, 그리고 ‘빈’이라는 무대의 위기감
교향곡 9번의 직접적인 작곡 동기는 1817년, 런던 필하모닉 협회(Philharmonic Society of London)의 위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베토벤은 경제적 곤궁, 건강 악화, 조카 카를을 둘러싼 법적 분쟁 등으로 지쳐 있었습니다. 한편 빈에서는 로시니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오페라 열풍이 거세졌고, 베토벤의 진지하고 구축적인 독일 기악 음악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 보였습니다.
베토벤이 “독일인들은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탄식하며 이주까지 생각했다는 전언은, 그가 당대의 취향 변화 앞에서 얼마나 예민하게 상처받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위기감이 베토벤을 ‘마지막 교향곡’의 완성으로 밀어붙입니다. 빈의 귀족과 문화계가 그를 붙잡기 위해 탄원서를 돌렸다는 이야기는, 베토벤이 여전히 ‘빈의 정신’으로 남아 있길 바랐던 시대의 감정도 드러냅니다.
소리 없는 세계의 건축: 내청(Inner Hearing)의 승리
1820년대의 베토벤은 사실상 완전한 청력 상실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일상의 대화를 들을 수 없어, 사람들이 수첩에 질문을 쓰면 자신이 답을 적는 방식의 대화 수첩(Conversation Books)으로 의사소통을 이어갔습니다. 작곡은 오로지 내청(Inner Hearing), 즉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외부의 소리가 끊긴 고독은 베토벤의 내면세계를 오히려 무한히 확장시킵니다. 9번 교향곡의 거대한 구조, 전례 없는 화성과 리듬의 혁신은 ‘절대 고독’ 속에서만 가능했던 집중의 산물입니다. 흔히 베토벤의 삶을 관통하는 문장으로 “고뇌를 뚫고 환희로(Through suffering to joy)”가 거론되는데, 9번 교향곡은 그 명제를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음악적 논리로 증명해 냅니다.
2. 악장별 정밀 해설: 무엇을 들으면 이 교향곡이 열리는가
베토벤 9번은 고전주의 교향곡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내부를 완전히 새로 설계한 작품입니다. 네 개의 악장은 각각 독립된 세계를 가지지만,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로 연결됩니다. 아래 해설은 ‘음악 분석’만이 아니라, 실제로 들을 때 잡히는 포인트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제1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 태초의 혼돈과 비극적 투쟁
1악장의 시작은 음악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도입부 중 하나로 꼽힙니다. 현악기들이 A–E로 이루어진 ‘텅 빈 5도(open fifth)’를 트레몰로로 떨며 깔아 놓습니다. 장조인지 단조인지 즉각 단정하기 어려운 이 모호함은, 마치 안개 속에서 거대한 형상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듯한 효과를 냅니다.
그리고 그 안개를 가르듯 d단조의 강력한 제1주제가 내리꽂힙니다. 이 순간을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멜로디”보다 “에너지의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단지 선율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는 세계가 만들어지는 방식—혼돈이 질서로, 공포가 결의로 바뀌는 순간—을 오케스트라의 총력으로 구축합니다.
청취 포인트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재현부에서 밝음이 곧바로 ‘구원’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설계한 베토벤의 역설입니다. 둘째, 악장의 말미로 갈수록 “끝나지 않는 하강”처럼 느껴지는 베이스 진행이 만드는 장송의 그림자입니다. 셋째, 이 어둠이 4악장의 환희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점입니다. 1악장은 환희를 위해 의도적으로 무겁게 깔린 비극의 토대입니다.
제2악장 : Molto vivace — 광란의 춤과 운명의 북소리
전통적인 교향곡은 2악장에 느린 악장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베토벤은 순서를 뒤집어 격렬한 스케르초를 앞당깁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형식 파괴가 아니라 드라마의 가속입니다. 1악장에서 생겨난 어둠이 “멈춰 서서 슬퍼하기” 전에, 베토벤은 그것을 “움직이게” 만들고, 리듬으로 밀어붙입니다.
이 악장은 ‘팀파니를 위한 협주곡’이라 불릴 만큼 타악의 역할이 강합니다. 팀파니의 타격은 단순한 박자가 아니라, 불안과 결의를 동시에 두드리는 심장박동처럼 들립니다. 또한 베토벤은 리듬의 단위를 교묘히 흔들어, 듣는 이가 박자 감각을 잃었다가 다시 붙잡게 만듭니다. 이때의 쾌감은 “혼란”이 아니라 “통제된 혼란”입니다.
중간부 트리오(Trio)는 잠시 목가적 숨을 고르게 하지만, 그 평화는 영구적 피난처가 아닙니다. 다시 스케르초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깨닫습니다. 베토벤은 아직 “휴식”을 허락하지 않으며, 환희에 도달하기 전까지 긴장의 엔진을 꺼뜨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3악장 : Adagio molto e cantabile — 폭풍 전의 고요, 천상의 위로
앞선 두 악장의 격렬함 뒤에 찾아오는 3악장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순한 형태의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따뜻한 조성의 포근함이 지친 영혼을 감싸고, 오케스트라는 마치 “말이 아닌 기도”로 공간을 채웁니다.
여기서는 두 개의 주제가 번갈아 변주되며, 하나는 현악 중심의 경건한 명상, 다른 하나는 목관 중심의 유동적인 호흡으로 펼쳐집니다. 이 악장을 듣는 핵심은 ‘시간이 느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베토벤이 “느림”을 통해 드라마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3악장은 4악장의 폭발을 위한 충전이며, 그 충전이 아름답기에 4악장의 환희가 값싸지지 않습니다.
제4악장 : Finale — ‘환희의 송가’와 교향곡의 혁명
4악장은 교향곡의 핵심이자, 기악 음악의 한계를 넘어선 혁명의 장입니다. 첫 순간부터 관악기의 불협이 치고 올라오고, 저음 현악(첼로·콘트라베이스)이 말하듯 이어지는 기악 레치타티보로 길을 냅니다. 이 시작은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깝습니다.
4악장은 과거의 주제를 ‘거부’한 뒤, 마침내 환희의 주제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합창으로 ‘선언’하는 드라마입니다.
이 악장의 백미는 ‘회상과 부정’입니다. 1·2·3악장의 주제들이 차례로 등장하지만, 저음 현악의 레치타티보는 매번 그것들을 밀쳐냅니다. “아니, 이것도 아니다. 우리의 고뇌를 해결해 줄 음악은 이것이 아니다.” 그렇게 부정이 반복된 뒤, 목관이 D장조의 ‘환희의 주제’를 조용히 제시합니다. 이 주제가 처음 등장할 때는 ‘승리’가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너무 크지 않게, 너무 확신하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리고 결정적 순간이 옵니다. 다시 한 번 불협의 폭풍이 치솟지만, 이번에는 바리톤 독창이 등장해 베토벤이 직접 쓴 문장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O Freunde, nicht diese Töne!
Sondern laß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오 친구여, 이런 소리가 아니오!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자.” 이 문장은 단지 가사가 아니라, 베토벤이 교향곡이라는 장르 자체에 내린 판결문처럼 들립니다. 이제부터는 ‘기악’이 말하지 못한 것을, 인간의 목소리가 말합니다.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가 합창으로 터질 때,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Alle Menschen werden Brüder)”는 선언이 음악 속에서 현실의 언어가 됩니다.
중간의 ‘튀르크 풍 행진곡’(터키 군악대 풍)은 종종 가볍게 오해되지만, 여기서 베토벤은 ‘환희’의 대상을 궁정의 품격으로만 제한하지 않습니다. 심벌즈·트라이앵글·큰북이 더해진 이 구간은 환희가 거리로 내려와 대중의 발걸음이 되고, 몸의 리듬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모든 에너지가 푸가적 기법과 격정의 가속으로 결집하며, 환희는 더 이상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인류의 합창”으로 확장됩니다.
3. 1824년 5월 7일: 전설이 된 빈 초연의 현장
베토벤 9번의 초연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Theater am Kärntnertor)은 한 시대의 정점과 전환을 동시에 목격했습니다. 프로그램은 ‘헌당식 서곡’과 ‘장엄미사’ 일부, 그리고 대망의 ‘교향곡 9번’으로 구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무엇보다 이 공연은 단지 ‘신작 발표’가 아니라, 베토벤이 빈이라는 무대에 남긴 최후의 교향적 선언이었습니다.
|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합창’ 초연을 재현한 Carl Offterdinger의 석판화(1879) |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열기, 그리고 대편성의 의미
초연 무대에는 케른트너토어 극장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여러 연주자들이 동원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합창단까지 포함한 대규모 인원이 무대에 올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거대한 편성 자체가 이미 메시지였습니다. “이 음악은 개인의 방에서 울리는 독백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합창이다.”
움라우프의 실질 지휘, 그리고 카롤리네 웅거의 장면
초연에는 미하엘 움라우프(Michael Umlauf)가 실질적 지휘를 맡았고, 베토벤은 무대 한편에서 악보를 넘기며 템포를 ‘지시’하려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이 연주를 직접 통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베토벤의 존재를 존중하되, 실제 진행은 움라우프의 신호에 따라 움직였다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객석은 폭발했고, 박수와 환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알토 솔리스트였던 카롤리네 웅거(Caroline Unger)가 베토벤에게 다가가 관객석을 향해 몸을 돌려 주었다는 장면은, 음악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회자됩니다. 베토벤이 그제야 ‘환호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줍니다. 그는 소리를 잃었지만, 인류는 그를 통해 ‘더 큰 목소리’를 얻었습니다.
4. 유산과 파급력: 저주, 정치, 그리고 ‘표준’이 된 음악
베토벤 9번은 음악사 내부에서만 위대해진 작품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때로는 ‘저주’의 신화로, 때로는 정치의 언어로, 때로는 기술 표준의 일화로 확장되며 살아 움직여 왔습니다. 바로 그 점이 9번을 “공연 레퍼토리”가 아니라 “문화 현상”으로 만듭니다.
‘9번 교향곡의 저주’: 넘을 수 없는 벽이 만든 신화
베토벤 이후 “9번을 쓰면 죽는다”는 이른바 ‘9번 교향곡의 저주’가 작곡가들 사이에 퍼졌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여러 작곡가의 생애와 겹치며 이 미신은 더욱 굳어졌고, 말러가 숫자를 피하려 했다는 일화도 자주 인용됩니다. 물론 이는 합리적 인과라기보다, 베토벤 9번이 후대에게 남긴 압도적 압력—“그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만들어 낸 심리적 상징으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정치적 도구와 자유의 상징: 같은 음악, 다른 얼굴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는 메시지는 그만큼 강력하기에, 시대는 이 음악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어가려 했습니다. 어떤 시대는 이 작품을 선전의 장식으로 소비했고, 어떤 시대는 자유와 화해의 상징으로 다시 불러냈습니다. 이 교향곡이 시대의 갈등과 화해의 순간마다 호출되어 왔다는 사실 자체가, 9번의 사회적 생명력을 증명합니다.
CD 74분의 비밀: ‘전설’이 남긴 상징
CD 용량이 ‘베토벤 9번 한 곡을 끊김 없이 담기 위해’ 74분으로 정해졌다는 이야기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일화입니다. 다만 기술 표준화의 실제 과정이 단일 이유로 결정되기보다 여러 조건과 타협의 산물이었다는 반론도 함께 거론됩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베토벤 9번이 단지 ‘연주되는 작품’이 아니라, 현대 매체와 문화 상상력 속에서 표준의 기준점처럼 자리해 왔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5. 추천 명반(유튜브 검색 키워드 제공)
외부 링크 대신, 유튜브에서 그대로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는 “검색어(키워드)”를 함께 적었습니다. 같은 지휘자라도 연도·오케스트라에 따라 해석이 크게 달라지므로, 검색어는 가능한 정확히 안내드립니다.
• 푸르트벵글러 — 1951 바이로이트 실황: 전후의 공기 속에서 폭발하는 ‘존재의 비명’ 같은 연주로 회자됩니다. 템포는 유연하고 음향은 거칠 수 있지만, 4악장의 환희가 “승리”라기보다 “필사적 구원”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어: Furtwangler Beethoven 9 1951 Bayreuth
• 카라얀 — 1963 베를린 필: ‘현대적 표준’에 가까운 완성도로 꾸준히 사랑받는 해석입니다. 견고한 합주력과 조형미가 강점이며, 처음 듣는 분에게도 “교향곡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나”를 체감시키는 타입입니다. 유튜브 검색어: Karajan Beethoven 9 1963 Berlin Philharmonic
• 번스타인 — 1989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공연: 순수한 연주 완성도만으로 평가하기보다, “그 장면”이 음악에 덧입혀지는 감동이 큽니다. 9번이 현실의 언어로 호출될 때 어떤 힘을 갖는지, 역사와 음악이 겹치는 방식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유튜브 검색어: Bernstein Beethoven 9 1989 Berlin Wall
• 가디너 — 시대악기(원전 지향) 연주: 비브라토를 절제하고 리듬을 날렵하게 세워, 베토벤의 ‘혁명성’을 전면에 드러냅니다. 2악장의 추진력이 특히 강하고, 4악장의 환희가 “장엄한 축제”라기보다 “폭발하는 해방”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어: Gardiner Beethoven 9 period instruments
• 일본 ‘다이쿠(第九)’ 대규모 합창: 정교함의 잣대보다, 9번이 ‘국민적 합창’으로 살아 움직이는 힘을 체감하는 데 의미가 큽니다. 베토벤 9번이 어떻게 한 사회의 연례 의식이 되었는지, 음악이 문화로 번역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유튜브 검색어: Japan Daiku Beethoven 9 10000 chorus / 第九 1万人 ベートーヴェン
6. 마무리하며: 고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구원의 빛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단지 “위대한 음악”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고난을 견디는 방식, 그리고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선언입니다. 1악장의 혼돈과 비극, 2악장의 광란과 긴장, 3악장의 기도 같은 위로가 없었다면, 4악장의 환희는 그저 ‘밝은 노래’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그 환희를 값싼 긍정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고통을 통과시켰고, 그 다음에야 “형제애”를 말하게 했습니다.
혹시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신가요. 삶의 무게가 너무 크다고 느끼시나요. 그렇다면 4악장만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1악장 도입부터 천천히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긴 여정을 끝까지 통과했을 때, 마지막의 환희는 단순한 감동을 넘어 “다시 살아갈 이유”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베토벤이 소리를 잃고도 끝내 노래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7. FAQ: 베토벤 9번을 더 깊이 즐기는 방법
베토벤 9번은 “그냥 들어도 감동”이 오는 작품이지만, 구조를 조금만 알고 들으면 감동의 결이 달라집니다. 특히 처음 듣는 분들은 4악장만 자주 접하기 때문에, 1~3악장이 ‘서론’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향곡은 4악장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작품이 아닙니다. 1~3악장은 4악장의 환희를 ‘싸게 만들지 않기 위한’ 긴 여정이며, 그 여정이 있어야 마지막이 빛납니다.
FAQ 1. 베토벤은 초연 당시 정말 귀가 안 들렸나요?
여러 기록과 정황은 1824년 무렵 베토벤이 정상적인 청취로 연주를 듣기 어려운 상태였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그래서 초연 과정에서 ‘실질적 지휘’가 별도로 이루어졌다는 일화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이 작품의 ‘전설’을 만들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9번 교향곡이 “내청의 승리”라는 서사를 갖게 된 핵심 배경이라는 점입니다.
FAQ 2. 왜 ‘합창’ 교향곡인가요?
4악장에 4명의 독창자와 혼성 합창단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교향곡에 성악을 결합한 사례가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베토벤은 이를 ‘부록’이 아니라 작품의 핵심 논리로 끌어올립니다. 즉, 합창은 장식이 아니라 결론입니다. 기악이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을 “인간의 목소리”로 완결합니다.
FAQ 3. ‘환희의 송가’ 가사는 누가 썼나요?
기본 텍스트는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입니다. 다만 도입부의 “O Freunde, nicht diese Töne!”는 베토벤이 직접 덧붙인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한 줄이 들어오는 순간, 시는 단지 인쇄된 텍스트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불려야 할 노래로 변합니다.
FAQ 4. 4악장만 들어도 되나요? 처음 듣는 순서가 궁금합니다.
4악장만 들어도 감동은 옵니다. 하지만 ‘왜’ 감동이 오는지까지 알고 싶다면, 최소한 1악장 도입부(텅 빈 5도) → 3악장 중후반의 평화 → 4악장 초반의 부정과 선택 이 세 지점을 이어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 순간부터 4악장은 “유명한 멜로디”가 아니라 “승리의 결론”으로 바뀝니다.
템포 논쟁: 베토벤의 메트로놈은 고장 났었나?
베토벤이 악보에 남긴 메트로놈 지시어는 오늘날에도 논쟁의 대상입니다. 일부 구간은 실제 연주 난이도가 극단적으로 높아 “메트로놈이 고장 났던 것 아니냐”는 설이 반복되곤 합니다. 반대로, 베토벤이 의도한 것은 바로 그 ‘극한의 긴장감’이며, 빠른 템포가 만들어내는 혁명적 에너지 자체가 작품의 본질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9번 교향곡의 ‘명연’은 종종 템포 미학으로 갈립니다. 장엄함과 인간적 드라마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고, 날렵한 리듬과 혁명성을 강조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위의 추천 명반 가이드는 바로 이 차이를 ‘취향의 언어’로 정리한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