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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듣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BWV 1007–1012, 감상 및 추천 음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한 대의 첼로로만 이루어진 춤곡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모음곡’(suite)은 여러 개의 춤곡을 한데 모아놓은 것을 말한다. 바흐의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오늘날 ‘첼로의 구약성서’라 불릴 만큼 음악 역사에서 전체 첼로 음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Suites for Solo Cello (Six Suites for Unaccompanied Cello), BWV 1007–1012

— Key Takeaways —
  • 6개의 모음곡, 각기 프렐류드+춤곡6악장 구성.
  • 쾨텐기(1717–1723) 작 추정, 자필은 유실·사본(안나 막달레나·켈너)로 전승.
  • 5번은 스코르다투라(A→G), 6번5현 악기(violoncello piccolo) 사용설.
  • 19세기 초 인쇄 후 침체, 1890년 카잘스의 재조명으로 본격 확산.
  • 아침엔 1번 프렐류드—안정된 템포와 여백이 집중을 돕는다.


첼로 악기의 위상 변화

  17–18세기에는 첼로가 단순히 저음역 반주악기로 치부되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다 바흐라는 작곡가를 만나 독주 음악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선율악기로 격상되었다. 첼로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여 반주가 없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단조로움을 극복한 작품이 바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바흐 덕분에 첼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첼로를 연주하는 이들이라면 필수로 다루어야 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Johann Sebastian Bach portrait by Elias Gottlob Haussmann, 1748
바흐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자필 악보와 사본의 차이

  이 작품이 세상에 보존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바흐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 바흐(Anna Magdalena Bach, 1701–1760)이다. 첫 번째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Maria Barbara Bach, 1684–1720)를 원인 모를 병으로 잃은 바흐는 17개월 후 막달레나와 재혼했다. 막달레나는 유능한 소프라노로 바흐와 살면서도 음악 활동을 계속 이어갔는데, 그녀가 유독 바흐의 음악을 좋아했기에 음악에 대한 관심사가 부부의 사랑과 행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바흐가 막달레나에게 많은 곡을 헌정했고, 자녀를 13명이나(이 가운데 7명 사망) 둘 정도면 말 다 한 것이다.

  첼로 모음곡의 바흐 자필 악보는 소실되어 전하여 지지 않지만, 안나 막달레나와 요한 페터 켈너(Johann Peter Kellner)18세기 사본으로 작품이 전승되었다. 한편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BWV 1001–1006)는 1720년 자필 악보가 남아 있다. ‘막달레나가 바이올린 곡과 분리해서 필사해 지금의 독립 작품이 됐다’기보다는 그녀가 중요한 사본을 남겨 전승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바흐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의 글을 참고하면 된다.

      바흐의 생애와 음악(작품)


Pablo Casals seated with cello, c.1915–1920 (Library of Congress, Bain Collection)
카잘스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
 

출판 시도와 카잘스의 재조명

  19세기 초 유럽에서 첼로 모음곡의 인쇄본이 나오지만,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했다. 로베르트 슈만은 1853–1854년에 무반주 현악 작품에 피아노 반주를 덧붙이는 시도를 했으나 널리 정착되지는 못했다. 그러다 스페인 출신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에 의해 드디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카잘스는 1890년 바르셀로나의 악보점에서 프리드리히 그뤼츠마허(Friedrich Wilhelm Ludwig Grützmacher, 1832–1903) 편집의 판본을 발견한 뒤, 이를 더욱 면밀히 다듬고 분석해 연주와 녹음으로 바흐의 위대한 업적을 널리 알렸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구조

  모음곡의 전통적 핵심 구성은 알르망드(독일 계통의 빠른 춤곡)–쿠랑트(이탈리아 계통의 발랄한 춤곡)–사라방드(스페인 계통의 느린 춤곡)–지그(1/2박자의 영국의 발랄한 춤곡)의 네 축이며, 중간에 갈랑트리(미뉴에트·가보트·부레 중 하나)가 끼어든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개는 모두 앞에 자유로운 전주곡(프렐류드)을 둔 6악장 구성으로 정교하게 확장되었다. 따지고 보면 파격적인 편성인 셈이다.

  • No.1 in G major, BWV 1007
  • No.2 in D minor, BWV 1008
  • No.3 in C major, BWV 1009
  • No.4 in E-flat major, BWV 1010
  • No.5 in C minor, BWV 1011scordatura 표기 판본 존재
  • No.6 in D major, BWV 1012 — 5현 악기 사용설


감상 포인트

  첼로의 ‘무반주 연주’라는 점에서 특별함을 선사한다. 무반주 연주로 선율악기의 역할과 반주악기의 역할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첼로 연주자에게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 어려운 곡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아침에 오랫동안 자주 듣는 음악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어느 성악가도 아침에 듣기에 좋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들으면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기분에 따라 다양한 연주 음반을 따라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한다. 아래 추천 음반에는 없지만 가브리엘 립킨드(Gavriel Lipkind)의 빠른 템포의 연주도 가끔 감상하는 편이다.


추천 음반 및 감상

1. 역사적 필청 음반: 파블로 카잘스 (Pau/Pablo Casals)

  이 곡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의 연주이다. 1930년대의 녹음이라 음질은 좋지 않지만, 마치 성서를 읽어 내려가듯 경건하고 깊이 있는 해석은 후대의 모든 연주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역사적 의미만으로도 반드시 들어봐야 할 필청 음반이다.

2. 현대의 표준적 명반: 요요 마 (Yo-Yo Ma)

  대중적으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첼리스트 요요 마의 연주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해석과 완벽한 기교가 어우러져 듣는 이에게 큰 위안과 감동을 준다. 특히 1983년의 첫 녹음은 흠잡을 데 없는 명연으로 꼽히며, 클래식 입문자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는 음반이다.

3. 귀족적인 품격의 명연: 피에르 푸르니에 (Pierre Fournier)

  ‘첼로의 귀족’이라 불렸던 피에르 푸르니에의 연주는 우아함과 절제된 품격이 돋보인다. 낭만적이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그의 해석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담백하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바흐의 음악을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만나고 싶을 때 추천한다.

4. 러시아 거장의 깊은 성찰: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중 한 명인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엄청난 스케일과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마치 거대한 산맥을 마주하는 듯한 장엄함과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해석은 바흐의 음악에 담긴 우주를 탐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