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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구노(Charles Gounod)의 생애와 음악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샤를 프랑수아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1818-1893)는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23년 구노가 5세 때 아버지가 사망했지만 어머니에게 음악교육을 받으며 뛰어난 음악적인 재능과 소질을 보였다.

 

  19세가 되는 1836년에는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그랑 오페라 작곡가였던 알레비(1799-1862)와 르쉬외르(17601837)에게서 작곡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피에르 짐머만(1785-1853)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로시니와 모차르트 오페라에 감동을 받아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839년 로마대상을 수상하여 1843년까지 3년간 로마에서 유학했다. 로마에 있는 동안 3년간 로마에 머물며 시스티나 성당에서 16세기 교회음악에 심취하였는데, 특히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1594)를 좋아했다.


샤를 구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샤를 구노의 모습

  1844년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파리로 되돌아온 구노는 신학에 몰두하여 1846년에는 생 쉴피스 신학교에 진학하였는데, 그는 평생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자신의 이름을 아베 구노’(Abbe Gounod)로 칭하면서 1851년에는 <장엄미사 Messe Solennelle>를 성공적으로 초연하였다.

 

  하지만 구노는 1851년 스승인 짐머만의 딸과 결혼하면서 사제가 되는 것을 포기하였고 창작 활동, 특히 종교 색채 음악과 오페라 창작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구노는 파리의 오르페옹이란 남성 합창단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2개의 미사곡을 작곡했으며, 1853년에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평균율> 1권의 첫 번째 프렐류드를 배경 화성으로 사용한 <아베 마리아>를 작곡하였다.

 

  구노는 1859년 오페라 <파우스트>의 성공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오페라를 발전하는 데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으며 19세기 유럽과 미국 모두 성공하였는데, 그 이유는 멜로디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표된 지 3년 후인 1870년에는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으로 인해 구노는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 거주하던 3년 동안 구노 합창단(Gounod Choir) 등을 조직하고 칸타타와 합창곡을 다수 작곡하였다. 1871년 보불전쟁이 끝나자 구노의 가족은 파리로 돌아왔으나, 그는 런던에 남아 조지나 웰던(Georgina Weldon)이라는 아마추어 여가수의 집에 머물렀다.

 

  1875년 파리로 돌아온 이후 오페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오라토리오 <속죄><죽음과 삶> 등의 종교음악 작곡에 치중하였다. 1888년에는 프랑스의 명예 훈장(Légion d’honneur)도 받았고, 손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레퀴엠>를 작곡하는 동안 쓰러져 고향인 파리 서부 교회에 위치한 생클루(Saint-Cloud)에서 생을 마감했다.

 

  구노는 팔레스트리나와 슈만과 베를리오즈의 영향을 받았다. 구노의 음악에서는 아름다운 색채와 세련된 화성의 오케스트레이션, 감미로운 서정적 선율이 나타난다.

 

  세속적 삶과 종교적 삶 사이에서 방황한 구노는 세속 음악과 종교 음악을 모두 작곡하였는데, 종교음악에는 오페라와 같은 극적인 요소가, 오페라에서는 엄숙하고 경건한 종교적인 분위기가 나타난다.


  구노는 15개의 미사곡, 12개의 오페라, 2개의 교향곡, 10개의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200여 곡의 가곡, 관현악곡 11, 협주곡 2, 실내악 14, 다수의 피아노 곡들을 작곡하였다. 이 중 오페라 <파우스트 Faust><로미오와 줄리엣 Romeo et Juliette>은 프랑스 오페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구노의 오페라는 반세기 이상 세계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필수 공연 작품이었는데, 오늘날 <파우스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고 구노의 명성도 많이 퇴색하였다. 분명한 것은 생전에 구노의 인기는 대단하였고, 그가 남긴 우아한 선율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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