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 한마디. 그런데 이 말은 정말 베토벤이 한 말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일화는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위대하다는 사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단 네 개의 음이 어떻게 30분이 넘는 거대한 음악적 우주를 짓는가, 오늘은 그 비밀을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 작품: 교향곡 5번 다단조 작품 67
• 작곡 시기: 1803~04년 무렵 착수, 1808년 3월 총보 완성
• 초연: 1808년 12월 22일, 빈 테아터 안 데어 빈
• 헌정: 로프코비츠 후작, 라주모프스키 백작
• 추천 음반: 카를로스 클라이버 / 빈 필(DG, 1974)
| 요제프 카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의 초상(1820) |
「운명」이라는 이름의 진실
「운명」이라는 부제는 베토벤이 악보에 직접 적은 공식 부제가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널리 통용되는 별칭이지만, 서구권에서도 완전히 낯선 표현은 아닙니다. 다만 악보상의 공식 제목은 어디까지나 〈교향곡 5번 다단조 작품 67〉입니다.
이 일화의 출처는 베토벤의 비서이자 전기 작가였던 안톤 쉰들러입니다. 지면까지 특정할 수 있습니다. 1840년에 나온 그의 전기 『Biographie von Ludwig van Beethoven』 초판 241쪽이고, 독일어 원문은 「So pocht das Schicksal an die Pforte!」입니다.
덜 알려진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앞뒤를 읽어 보면 쉰들러가 이 말을 꺼낸 자리는 작품 해설이 아닙니다. 첫 다섯 마디를 얼마나 느리게 연주해야 하는가라는 연주 속도 주장의 근거로 이 문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곡의 뜻을 전하려던 말이 연주 지시를 떠받치는 자리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쉰들러가 신뢰하기 어려운 증인이라는 점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시간입니다. 쉰들러가 베토벤을 처음 만난 것은 1814년 4월입니다. 이 교향곡의 총보가 완성된 것이 1808년 3월, 초연이 그해 12월이니 그가 베토벤 곁에 온 것은 이 곡이 세상에 나오고 여섯 해가 지난 뒤입니다. 본 베토벤 하우스는 이 일화를 아예 「말도 안 되는 일화」라고 부르며 「그 진정성은 마음 놓고 의심해도 된다」고 적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비롯한 여러 참고 자료도 그를 두고 「사실 따위가 좋은 이야기를 막도록 두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합니다. 쉰들러가 베토벤의 대화 노트 일부를 사후에 써넣었다는 사실은 음악학자 피터 슈타들렌이 1977년에 밝혔고, 그 뒤 시어도어 알브레히트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위조와 폐기의 범위를 다시 살폈습니다. 다만 위조가 확립된 것은 대화 노트이며,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는 일화 자체는 여전히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남아 있고 그 진위는 논란 대상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또 다른 전승입니다.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는 「그 짧은 음형은 베토벤이 빈의 프라터 공원을 산책하다가 들은 노랑멧새의 울음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영국의 음악학자 안토니 홉킨스는 노랑멧새와 운명 중 대중은 더 극적인 신화를 선호했지만, 체르니의 이야기가 완전히 꾸며낸 것 같지는 않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운명」이라는 말은 작품 탄생의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후대 청중이 이 곡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보여주는 수용사의 자료에 가깝습니다. 쉰들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안톤 쉰들러 글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4년에 걸쳐 빚어낸 시간
베토벤이 5번 교향곡의 첫 스케치를 시작한 것은 1803년에서 1804년 사이로 봅니다. 3번 「에로이카」를 완성한 직후입니다. 한 해를 못 박기는 어렵습니다. 본 베토벤 하우스는 1803년 가을을 들고, 세이어는 적어도 1805년으로 잡습니다. 자료마다 갈립니다.
하지만 곧바로 마무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이 베토벤은 오페라 「피델리오」, 바이올린 협주곡, 라주모프스키 현악 사중주,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교향곡 4번 등 수많은 명작을 쏟아냈습니다. 본 베토벤 하우스는 작업이 밀린 사정 하나를 더 짚습니다. 이 무렵 베토벤은 파리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계획이 무산되면서 교향곡을 한동안 밀어 두었던 것으로 봅니다. 본격적인 작업은 1807년 봄부터였고, 완전한 총보 자필본이 완성된 것은 1808년 3월입니다.
이 시기 베토벤의 청력은 빠르게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운명의 멱살을 잡을 것이다. 운명이 나를 완전히 짓누르게 두지는 않겠다.」 작품에 「운명」이라는 정식 부제는 없지만, 베토벤 자신의 글에는 운명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1808년 12월 22일, 얼어붙은 극장의 4시간
이 작품이 초연된 1808년 12월 22일, 빈 테아터 안 데어 빈의 풍경은 마치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프로그램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오늘날의 「전원」 교향곡 초연, 콘서트 아리아, 미사 다장조의 「글로리아」와 「상투스」 두 곡, 피아노 협주곡 4번의 공개 초연(1807년 3월 로프코비츠 후작 저택에서 이미 한 차례 비공개로 연주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운명」 교향곡 초연, 합창 환상곡 초연까지. 전부 베토벤 작품만으로 구성된 콘서트였고, 베토벤이 직접 지휘하고 피아노 협주곡과 합창 환상곡의 독주를 맡았으며, 합창 환상곡 도입부의 유명한 피아노 솔로는 그 자리에서 즉흥연주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흥미롭게도 초연 당시 프로그램은 오늘날의 「전원」을 5번, 다단조 교향곡(오늘날의 「운명」)을 6번으로 표기했으나, 출판 때 현재 번호(전원은 6번, 운명은 5번)로 확정됐습니다.
조건은 최악이었습니다. 한겨울 극장은 얼어붙어 있었고, 관객은 그 추위 속에서 네 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연습도 부족했습니다. 그날 객석에 있었던 라이하르트는 「연주할 곡들을 전부 한 번에 맞춰 볼 총연습을 단 한 번도 할 수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곡마다 따로 연습했을 뿐 전곡을 통으로 맞춰 보는 자리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베토벤과 단원들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합창 환상곡 연주 도중에는 음악이 흐트러져 베토벤이 연주를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작곡가 라이하르트가 편지에 남긴 기록이 그날의 가장 생생한 증언입니다. 「우리는 가장 혹독한 추위 속에 6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앉아 있었다. 좋은 것도, 강한 것도, 너무 많으면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경험으로 확인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박스석에 앉아 모피와 외투를 뒤집어쓰고 있었다고 적었고, 소프라노가 노래하기보다 떨었다고 썼으며, 이 다단조 교향곡을 두고 「크고 매우 공들였으나 너무 긴 교향곡」이라고 평했습니다.
시작 시각은 그날 신문 광고에 적혀 있어 확실합니다. 끝난 시각 10시 반은 라이하르트 한 사람의 편지에 남은 숫자입니다.
초연의 평가는 미지근했습니다. 그러나 1년 반 뒤 작가이자 작곡가 E.T.A. 호프만이 이 작품을 「당대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라고 격찬한 평론을 발표하면서 운명은 빠르게 위상을 얻었습니다. 5번 교향곡은 초연 당일보다 이후의 듣기와 비평을 통해 더 큰 작품이 된 셈입니다.
네 음이 짓는 우주, 1악장의 비밀
「따다다 딴.」 짧은 음 셋과 긴 음 하나. 이것이 전부입니다. 같은 높이의 솔이 세 번 짧게 나오고, 그보다 낮은 미플랫이 길게 이어집니다. 이 단순한 동기 하나로 베토벤은 1악장 전체를 짓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보입니다. 1악장의 거의 모든 마디에 이 네 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주제로도 등장하고, 반주 음형으로 숨어 있고, 다른 악기로 옮겨 다니며 모양을 바꿉니다. 단 네 개의 음이 세포 분열하듯 거대한 음악적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첫 30초만 따라 들어도, 같은 네 음이 현에서 관으로 넘어가며 조금씩 몸집을 불리는 과정을 잡아낼 수 있습니다.
이 곡의 핵심은 「운명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동기가 구조가 되는 과정」입니다. 네 음은 표어가 아니라 설계도입니다.
여기서 범위를 한 번 재 볼 만합니다. 네 음이 네 악장 전부를 지배한다는 말이 흔히 쓰이는데, 이 통일성 이론의 출발점으로 지목되는 호프만의 1810년 서평은 그 범위를 「1악장 전체(dem ganzen Allegro)」로 적고 있습니다. 그가 악장을 건너뛰어 이은 대목은 마지막 악장 코다의 저음이 1악장 28마디의 저음과 같다는 지적, 그 하나입니다.
반대편도 만만치 않습니다. 영국의 음악학자 도널드 토비는 회의적이었습니다.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열정」 소나타도, 피아노 협주곡 4번도 똑같이 통일돼 있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앤터니 홉킨스는 더 구체적으로 짚었습니다. 3악장의 음형은 센박과 여린박의 자리가 1악장과 달라서, 귀에는 다른 리듬으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뉴 그로브 음악사전을 비롯한 주류 쪽은 여전히 동기적 통일성을 핵심 특징으로 봅니다.
그러니 선을 이렇게 잡는 편이 정확합니다. 네 음이 1악장을 지배한다는 것은 확실하고, 네 악장 전부로 넓히는 문제는 아직 논쟁 중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악장별 가이드
5번 교향곡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서사는 다단조에서 다장조로의 이동입니다. 어둠의 조성에서 빛의 조성으로 가는 거대한 여정입니다.
|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자필 악보 |
3악장이 끝나면 음악은 멈추지 않고 4악장으로 곧바로 이어집니다. 이 끊김 없는 연결을 음악 용어로 아타카(attacca)라고 합니다. 팀파니가 같은 음을 끈질기게 반복하는 가운데 현악기가 점점 부풀어 오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장조의 밝은 소리가 한꺼번에 터집니다.
바로 이 순간 트롬본·피콜로·콘트라바순이 새롭게 합류합니다. 베토벤은 이 세 악기를 1악장부터 3악장까지는 한 음도 쓰지 않다가 4악장에 새롭게 합류시켰습니다. 콘트라바순은 총보에서 「베이스와 함께(Contrafagotto col Basso)」라고 지시됩니다. 자기 보표를 따로 두는 대신 가장 낮은 소리를 아래로 한 겹 더 받치는 자리입니다. 이 편성 확장이 다장조 피날레의 승리감을 극적으로 키웁니다. 1808년 3월 후원자 오페르스도르프 백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토벤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마지막 악장에는 트롬본 셋과 피콜로가 있다. 팀파니 세 개는 아니지만, 팀파니 여섯 개보다 더 크고 듣기 좋은 소리를 낼 것이다.」 실제 팀파니 개수를 특정한 말이 아니라, 새로운 악기 편성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낼지 재치 있게 과장한 표현입니다.
4악장 중간에 베토벤은 다시 한 번 3악장의 어두운 회상을 끼워 넣습니다. 빛에 도달했다고 안심한 순간 어둠이 잠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광휘로. 이 한 번의 망설임이 마지막 승리를 더욱 강렬하게 만듭니다. 호프만은 1810년 서평에서 이 회상의 길이를 54마디라고 적었습니다.
네 음이 간 곳
이 곡의 첫 네 음은 음악회장 밖으로도 나갔습니다. 그것도 이 곡이 무엇을 뜻하느냐와 상관없이, 리듬 하나 때문에 나갔습니다.
모스 부호에서 알파벳 V는 짧게 셋, 길게 하나입니다. 첫 네 음의 순서와 똑같습니다. 1941년 1월, 벨기에 방송인 빅토르 드 라블레가 영국 BBC에서 점령당한 유럽의 청취자들에게 V를 저항의 표시로 삼자고 제안했습니다. 프랑스어로 승리를 뜻하는 victoire, 플랑드르어로 자유를 뜻하는 vrijheid의 첫 글자였습니다. 그해 중반부터 BBC는 유럽으로 보내는 방송을 이 네 음으로 열었습니다. 팀파니로 두드리기도 했고 피아노로 치기도 했으며 그냥 모스 부호로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라디오를 몰래 듣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이 네 음이 신호가 되었습니다. 독일 작곡가의 교향곡 첫머리였다는 사실이 역사가 남긴 농담처럼 보입니다.
1977년에는 지구를 떠났습니다. 그해 발사된 보이저 탐사선에 금박 음반을 실어 지구의 소리를 담을 때, 그 목록에 이 곡의 1악장이 들어갔습니다. 오토 클렘페러가 지휘한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의 연주로 7분 20초입니다. 인류가 자신을 소개하려고 고른 소리 가운데 하나가 이 네 음이었던 셈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경우 모두 「운명」이라는 이야기와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BBC가 고른 것은 리듬이었고, 보이저에 실린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이름은 나중에 붙은 것인데 곡은 이름 없이도 멀리 갔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추천 연주
5번 교향곡은 거의 모든 위대한 지휘자가 녹음한 작품입니다. 하나의 정답은 없지만, 자주 추천되는 음반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 빈 필하모닉 · 도이체 그라모폰, 1974년 녹음.
첫 악장의 네 음과 그 뒤의 쉼을 일정하게 유지해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고, 곡 전체를 앞으로 미는 힘이 큽니다. 처음 한 번에 이 곡의 뼈대를 잡기에 가장 좋은 출발점입니다. 다만 넓고 무겁게 울리는 베토벤을 기대한다면 다소 성급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베를린 필하모닉 · 1947년 실황.
전쟁이 끝나고 그가 다시 지휘대에 선 시기의 녹음입니다. 박자가 실시간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에 3악장 끝의 어둠이 유독 길게 느껴지고 그만큼 마지막 악장의 폭발이 크게 다가옵니다. 1947년 실황이라 소리의 결이 거친 것이 아쉽습니다.
존 엘리엇 가디너 · 오케스트르 레볼뤼시오네르 에 로망티크 · 아르히프, 1994년 녹음.
베토벤 시대의 악기와 연주 방식을 되살린 연주입니다. 팀파니를 단단한 채로 쳐서 리듬이 건조하게 들리고, 마지막 악장에서 새로 합류하는 콘트라바순과 피콜로의 자리가 또렷하게 갈립니다. 대신 묵직하게 퍼지는 소리를 기대하면 가볍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이 밖에 토스카니니의 1939년 NBC 심포니 녹음과 카라얀의 1962년 베를린 필 녹음도 자주 꼽힙니다. 명반별 깊은 비교는 운명 교향곡 명반 비교, 클라이버부터 가디너·호네크까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이어서 읽을 글
이 글은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다룬 우리 글 가운데 가장 넓게 훑는 글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 주제 | 읽으면 좋은 분 |
|---|---|
| 운명 동기 따다다딴, 악장별 음악 분석 | 악장별 구조와 동기 변형을 자세히 알고 싶은 분 |
| 운명 교향곡 명반 비교 | 어떤 연주를 들을지 고민하는 분 |
| 안톤 쉰들러,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의 진실 | 「운명」 일화의 진실을 끝까지 따져보고 싶은 분 |
| 1808년 12월 22일, 운명 초연의 그날 | 초연 콘서트의 풍경을 자세히 알고 싶은 분 |
자주 묻는 질문
Q.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지휘자에 따라 대개 30분에서 40분 사이입니다. 1악장의 반복 구간을 지키느냐 마느냐에 따라 몇 분이 갈립니다.
Q. 4악장에서 새로 합류하는 트롬본·피콜로·콘트라바순 편성은 음악사적으로 왜 특별한가요?
4악장 도입부에서 다섯 명의 연주자(트롬본 셋, 콘트라바순, 피콜로)가 새로 가세하며 음역이 위아래로 동시에 넓어집니다. 1809년에 나온 초판 파트보를 보면 이 세 악기의 파트 첫머리에 1악장과 2악장이 tacet, 곧 쉼이라고 인쇄돼 있습니다. 3악장 내내 쉬다가 4악장에서 첫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다만 선례가 있습니다. 1807년 5월에 초연된 요아힘 니콜라스 에게르트의 내림마장조 교향곡이 이미 트롬본 세 대를 쓰고 있어 1년 반쯤 앞섭니다. 이 곡의 자리는 순서보다 쓰임에 있습니다. 확장된 편성을 피날레의 전환과 한 몸으로 묶어 낭만주의 교향곡 대규모화의 선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Q. 이 곡은 누구에게 헌정되었나요?
1809년 4월 초판 악보에 로프코비츠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 두 후원자에게 헌정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베토벤의 오랜 후원자였으며, 로프코비츠 후작은 3번 교향곡 에로이카의 첫 비공개 연주도 자신의 저택에서 열게 했던 인물입니다.
이름이 아니라 구조
베토벤 교향곡 5번은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새롭게 듣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우리는 첫 네 음을 이미 알고 있고, 「운명」이라는 이름도 알고 있으며, 이 곡이 명곡이라는 결론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감상은 그 익숙함을 잠시 내려놓는 순간 시작됩니다.
이 작품을 다시 들을 때는 이름보다 구조를 먼저 들어보십시오. 네 음이 어떻게 1악장을 몰아붙이는지, 2악장이 어떻게 숨을 고르는지, 3악장이 어떻게 어둠 속에서 피날레를 준비하는지, 그리고 4악장이 어떻게 다장조의 빛으로 문을 여는지 따라가 보십시오.
그때 「운명」은 더 이상 낭만적인 표어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음악 안에서 압력으로 작동하고, 반복으로 지속되며, 마침내 방향으로 바뀝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이 오늘도 강렬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곡은 운명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운명과 맞서는 구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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