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라는 문제 — 때린 직후 즉시 물러나야 하는 망치
피아노 이전의 건반악기는 두 종류였다. 하프시코드는 깃촉으로 현을 뜯고, 클라비코드는 작은 금속 탄젠트로 현을 누른다. 두 악기 모두 손가락이 음의 강약을 만들기 어렵다. 하프시코드는 깃촉이 현을 지나가는 순간이 정해져 있어 세게 누르나 약하게 누르나 거의 같은 음량이 나온다. 클라비코드는 강약 표현이 가능하지만 음량 자체가 너무 작아 큰 공간을 채울 수 없다.
크리스토포리가 풀려고 한 것은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음악적 요구였다. 건반에서 손가락 힘으로 강약(piano e forte)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도달한 해법은 발현이 아닌 타현이었다. 망치로 현을 때리면 망치의 속도가 곧 음의 강약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망치가 현 위에 닿은 채 머물면 현은 진동할 수 없다. 발현악기처럼 어떤 부품이 현을 떠나야 하지만, 발현과 달리 그 부품은 손가락이 누른 직후의 한순간에만 현에 닿아야 한다. 누른 다음에는 떠나야 한다. 누르고 있는 동안에도.
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액션 메커니즘이다. 그래서 피아노 액션은 단순한 지렛대 장치가 아니라 "건반과 망치의 연결을 의도적으로 끊어 주는" 정교한 분리 시스템이다. 그것이 피아노가 다른 모든 건반악기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 망치가 강철 현을 때리고 즉시 후퇴하는 메커니즘 |
손가락에서 현까지 — 한 건반의 70개 부품
현대 그랜드 피아노의 액션은 한 건반당 약 70개 부품으로 구성된다. 88건반 전체로는 6천 개에서 1만 개를 넘는 부품이 한 악기 안에 들어 있다(제작사·모델별 편차). 손가락이 건반을 누른 직후부터 망치가 현을 때릴 때까지의 시퀀스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건반 → 현, 부품 시퀀스
건반(key) → 캡스턴(capstan) → 위펜(wippen) → 잭(jack) → 너클(knuckle, 망치 발등의 가죽 받침) → 망치 섕크(hammer shank) → 망치 헤드(hammer head) → 현(string)
이 시퀀스에서 결정적인 부품은 잭(jack)이다. 잭은 위펜 위에 수직으로 서 있는 작은 막대인데, 평소에는 망치의 너클을 받쳐 위로 밀어 올린다. 그러나 망치가 현에 거의 도달한 순간, 잭은 옆으로 살짝 빠진다. 이 순간 망치는 잭의 지지를 잃고 자유 비행 상태로 현을 때린 뒤, 중력과 스프링 힘으로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잭이 옆으로 빠지는 이 동작이 바로 에스케이프먼트(escapement)다. 잭이 망치를 "탈출시킨다"는 의미다.
건반에 손가락이 닿은 직후부터 망치가 현을 때리기까지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이 짧은 구간 안에서 약 70개의 부품이 정해진 순서대로 정해진 각도로 움직인다. 부품 한 개의 위치가 미세하게 어긋나도 음의 반응성과 음색이 달라질 수 있다. 피아노 조율사가 단순히 음정만이 아니라 레귤레이션(regulation, 액션 조정)까지 함께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원리가 그랜드 피아노에서 수평으로, 업라이트 피아노에서 수직으로 작동하는 차이는 그랜드와 업라이트의 액션 비교에서 따로 다룬다.
에스케이프먼트 — Cristofori가 풀어낸 핵심 문제
크리스토포리가 1700년경 피렌체에서 만든 악기에는 처음부터 에스케이프먼트가 있었다. 그가 발명한 악기는 처음에는 "gravicembalo col piano e forte"(여리고 세게 칠 수 있는 하프시코드)라 불렸고, 1700년 메디치가 재산 목록에 그 이름이 남아 있다. 1711년 시인이자 학자였던 시피오네 마페이(Scipione Maffei)가 Giornale de' Letterati d'Italia에 이 악기의 도식과 설명을 게재했고, 이 한 편의 글이 크리스토포리의 발명을 유럽 전역에 알렸다(Pollens 1995).
현존하는 크리스토포리 피아노는 단 세 대다. 1720년 악기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722년 악기는 로마 국립악기박물관(Museo Nazionale degli Strumenti Musicali), 1726년 악기는 라이프치히 악기박물관에 있다. 이 세 악기를 직접 살펴본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지적한다. 에스케이프먼트 메커니즘이 이미 1720년 시점에 거의 완성된 형태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후 약 100년 동안 피아노는 음역과 음량은 크게 늘었지만, 에스케이프먼트라는 핵심 원리 자체는 크리스토포리의 설계를 정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왜 이 형태였는가. 답은 음악 실무 안에 있다. 18세기 초 이탈리아 음악은 성악을 모델로 한 강약 표현을 점점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고, 건반악기에서도 같은 표현이 가능해야 한다는 압력이 누적되고 있었다. 크리스토포리의 해법은 사회사적 우연이 아니라 그 시대 음악이 요구한 구체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그의 액션은 처음부터 단순한 "타현 장치"가 아니라 "손가락의 강약을 망치 속도로 번역하는 장치"로 설계되었다. 이 설계 의도가 액션 시퀀스의 모든 단계에 새겨져 있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피아노 —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제작 (출처: metmuseum.org) |
1821, Érard의 더블 에스케이프먼트
크리스토포리 액션에는 한 가지 한계가 있었다. 같은 음을 빠르게 반복하려면 건반이 완전히 위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잭이 다시 너클 아래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다음 타격을 위한 준비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18세기까지의 음악은 이 한계와 충돌하지 않았지만, 19세기 비르투오시티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한계는 점점 더 큰 문제가 되었다.
1821년, 파리의 피아노 제작자 세바스티앵 에라르가 더블 에스케이프먼트(double escapement) 메커니즘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다(Grove "Érard"). 핵심은 위펜에 추가된 작은 부품, 리피티션 레버(repetition lever, 반복 레버)다. 망치가 현을 때리고 아래로 떨어질 때, 이 레버가 떨어지는 망치를 중간에서 받아 다시 잭이 들어올 수 있는 위치로 잡아 둔다. 결과적으로 건반이 절반쯤만 다시 올라와도 잭이 너클 아래로 복귀하여 다음 타격을 준비한다. 같은 음의 빠른 반복이 비로소 안정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Q. 더블 에스케이프먼트가 없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작곡가는 늘 악기의 한계 안에서 다른 표현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음의 폭발적 반복, 길고 균일한 트릴, 손가락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패시지는 훨씬 더 제한되었을 것이다.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들의 패시지, 알캉의 극단적 기교 — 이 음악들의 작곡 방식 자체가 다른 길을 갔을 가능성이 크다. 더블 에스케이프먼트는 음악을 대신 만든 장치가 아니라, 작곡가가 상상한 속도와 밀도를 실제 건반 위에서 실현하게 한 조건이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그랜드 피아노는 에라르식 더블 에스케이프먼트의 직계 후손이다. 19세기 후반 스타인웨이를 비롯한 주요 제작사들이 자기 방식의 개량을 더했지만, 1821년의 핵심 원리 — 망치를 중간에서 받아 두는 리피티션 레버 — 는 그대로 유지된다. 19세기 피아노 발전사 전반은 19세기 피아노 대혁신에서 별도로 다룬다.
현·브리지·향판 — 작은 타격이 큰 울림이 되는 과정
해머가 현을 때리면 현은 진동한다. 그러나 현 자체만으로는 우리가 아는 피아노의 큰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강철 현은 얇고, 공기를 직접 밀어내는 면적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의 진동은 브리지(bridge)를 통해 향판(soundboard)으로 전달된다. 브리지는 현과 향판을 연결하는 다리이며, 향판은 피아노 소리의 실제 확성 장치다.
향판은 넓은 가문비나무 판이다. 현의 작은 진동을 받아 더 넓은 면적의 공기를 움직이게 한다. 이때 비로소 피아노 소리는 방 안을 채우고, 콘서트홀 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울림이 된다. 즉 피아노 소리는 액션과 망치만의 결과가 아니다. 현이 시작한 진동을 향판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악기 전체가 어떻게 공명하는가의 결과다. 같은 망치, 같은 현이라도 향판이 제대로 진동하지 않으면 소리는 작고 답답해진다. 그래서 피아노 제작에서 향판의 재료, 두께, 건조 상태, 크라운(crown, 향판의 미세한 곡면) 구조는 음색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현 자체의 구성도 음색에 크게 작용한다. 고음역의 현은 짧고 가늘며, 저음역의 현은 길고 굵고 구리 감김으로 질량을 늘린다. 또한 현대 그랜드 피아노에서는 한 음에 여러 줄의 현이 배치된다. 고음역은 세 줄, 중음역은 두세 줄, 저음역은 한두 줄이 일반적이다. 이 여러 현이 거의 같은 음정으로 조율되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지니기 때문에, 피아노 소리는 단일한 선이 아니라 넓고 풍부한 울림으로 들린다.
| 망치의 타격은 현에서 시작되지만, 피아노다운 울림은 향판을 통해 공간으로 퍼진다(Steinway & Sons 그랜드 피아노 내부) |
댐퍼·백체크·망치 헤드 — 소리를 멈추고 색을 만드는 장치
피아노에서 소리를 내는 장치만큼 중요한 것이 소리를 멈추는 장치다. 그것이 댐퍼(damper)다. 건반을 누르면 해당 음의 댐퍼가 현에서 떨어져 현이 자유롭게 울리고, 손을 떼면 댐퍼가 다시 현에 닿아 진동을 멈춘다. 댐퍼가 없다면 피아노는 음을 시작할 수는 있어도 명확하게 끝낼 수 없는 악기가 된다. 빠른 음형과 선명한 화성 진행은 댐퍼의 정확한 작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페달 세 개가 이 댐퍼 동작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확장하는지는 피아노 페달 3개의 음악적 의미에서 베토벤·드뷔시·라벨 작품과 함께 따로 다룬다.
액션에는 또 하나의 통제 장치가 있다. 백체크(back-check)다. 강하게 타격된 망치가 현에서 튕겨 내려올 때, 그대로 두면 망치가 반동으로 다시 현을 때릴 수 있다. 백체크는 떨어지는 망치의 꼬리 부분을 잡아 정해진 위치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이 이중 타격을 막는다. 연주자가 건반을 누르고 있는 동안 망치는 백체크에 걸려 있다가, 다음 타격이 필요할 때 다시 출발한다. 빠른 반복에서 망치가 안정적으로 거동하는 것은 백체크와 더블 에스케이프먼트가 함께 작동하는 결과다.
액션이 망치를 현까지 정확하게 보내는 시스템이라면, 음색을 결정하는 마지막 변수는 망치 헤드 그 자체다. 현대 피아노 망치의 헤드는 단단한 나무 코어 위에 양털 펠트를 압축해 감은 구조다. 펠트는 현과 닿는 순간 약간 압축되어 변형되었다가 다시 복원된다. 이 짧은 접촉 시간 동안의 변형 정도가 음색의 핵심 변수 중 하나다. 단단한 펠트는 밝고 직접적인 음을, 부드러운 펠트는 어둡고 둥근 음을 만든다. 그래서 피아노 기술자들은 바늘로 펠트를 부분적으로 풀어 주는 보이싱(voicing) 작업으로 망치 하나하나의 단단함을 미세 조정한다. 이 펠트의 단단함이 제작사별 음색 철학으로 어떻게 갈라지는지는 스타인웨이·뵈젠도르퍼·야마하·파치올리 4대 명기 비교에서 함께 다룬다.
음색 인과에 대한 주의
"왜 스타인웨이는 그 소리가 나는가" 같은 질문에는 단일한 답이 없다. 망치 펠트의 단단함, 사운드보드 목재의 결, 현의 길이와 장력, 림(rim)의 강성, 심지어 청취자의 심리음향적 편향까지 복수의 변수가 동시에 작용한다. 음향학 연구는 이 변수들의 상대적 비중을 두고 지금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Galpin Society Journal, CAS Journal 등에서 진행 중인 논쟁). 이 글에서 다룬 액션·망치·향판은 음색을 만드는 여러 층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 해머 펠트(흰색·빨간 압축 코어)가 현을 때리는 순간, 그 변형 정도가 음색을 결정한다.(출처: pianopricepoint.com) |
두 곡으로 듣는 피아노 액션
피아노 액션의 의미는 추상적인 설명보다 한 곡 안의 한 순간에서 더 분명하게 들린다. 다음 두 곡을 추천한다.
프란츠 리스트 〈라 캄파넬라〉(파가니니 대연습곡 제3번, 1851 개정판) — 라자르 베르만, DG 1976. 이 곡 중간부에서 같은 음 D♯이 빠르게 반복되는 패시지를 의식적으로 들어 보자. 한 손가락이 한 음을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차례 두드릴 때, 건반이 완전히 올라오기 전에 다음 타격이 가능해야 그 속도가 나온다. 더블 에스케이프먼트가 없었다면 이 패시지는 손가락 두 개를 번갈아 쓰는 다른 운지법으로 작곡되었을 것이고, 곡의 인상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다. 리스트의 음악적 상상력이 1821년 에라르의 메커니즘 위에 얹혀 있다는 사실이 가장 직접적으로 들리는 순간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다단조 Op.111(1822) 2악장 마지막 변주의 트릴 — 마우리치오 폴리니, DG 1977. 마지막 변주의 후반부, 오른손이 고음역에서 길게 트릴을 유지하는 동안 왼손이 그 아래에서 주제를 노래한다. 트릴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빛처럼 들리는 이유는, 두 음의 망치가 교대로 빠르게 현을 때리는 동안 댐퍼가 두 현 모두에서 떨어져 있어 진동이 자유롭게 공명하기 때문이다. 액션과 댐퍼와 페달이 한 음악적 인상을 만들어 내는 합주가 들리는 곳이다. 같은 곡의 1820년대 포르테피아노 연주(예: Tom Beghin, Andreas Staier 등)와 비교해 들으면, 현대 피아노가 어떤 음향적 가능성을 추가로 얻었는지 또렷하게 드러난다.
자주 묻는 질문
Q. 피아노 액션이란 무엇인가요?
건반을 누르면 망치가 현을 치도록 만드는 내부 기계 장치다. 건반·위펜·잭·망치·댐퍼 등이 지렛대 구조로 연결되어 손가락의 움직임을 현의 진동으로 변환한다. 한 건반당 약 70개 부품이 정해진 순서로 협업한다.
Q. 에스케이프먼트와 더블 에스케이프먼트는 어떻게 다른가요?
에스케이프먼트는 1700년경 Cristofori가 고안한 기본 원리로, 망치가 현을 친 직후 현에서 빠져나와 현의 자유 진동을 보장하는 분리 구조다. 더블 에스케이프먼트는 1821년 Érard가 등록한 발전된 장치로, 건반이 완전히 복귀하지 않아도 다음 타격을 준비할 수 있게 해 같은 음의 빠른 반복을 가능하게 한다.
Q. 피아노 소리는 현에서만 나는 것인가요?
현은 진동의 출발점이지만, 큰 소리를 공간으로 내보내는 핵심은 향판이다. 현의 진동이 브리지를 거쳐 향판으로 전달되고, 향판이 넓은 면적의 공기를 움직이며 우리가 듣는 피아노 울림을 만든다. 같은 망치와 같은 현이라도 향판이 제대로 진동하지 않으면 소리는 작고 답답해진다.
Q. 한 건반당 부품이 정말 70개나 들어가나요?
현대 그랜드 피아노 액션은 1건반당 약 70개 부품으로 구성되며, 88건반 전체로는 약 6천 개에서 1만 개 이상의 부품이 한 악기 안에 들어간다. 정확한 수치는 제작사·모델별로 차이가 있다. 부품마다 정해진 시점에 정해진 각도로 움직여야 안정된 액션 반응이 만들어진다.
피아노 작동 원리를 한 번에 이해하려는 시도는 곧 그 악기가 풀어 온 320년 동안의 문제를 따라가는 일과 같다. 이 글이 다룬 메커니즘은 그 출발점이다. 피아노의 다음 단계 — 1700년 발명에서 1900년 모던 피아노까지의 발전사, 4대 명기의 음향 철학, 페달과 작품의 결합 — 는 피아노의 역사와 종류의 다른 글들에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