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학원에 다녔다면 누구나 한 번쯤 쳐 봤을 곡입니다. 첫 다섯 음만 들어도 제목이 떠오르고 통화 연결음으로도 익숙합니다. 그런데 이 곡을 베토벤이 직접 적은 악보는 지금 세상에 없습니다. 제목에 붙은 「엘리제」라는 이름도, 그 옆에 적혀 있었다는 4월 27일이라는 날짜도, 베토벤이 쓴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치는 악보는 1865년 뮌헨에서 한 음악학자가 남의 집에서 자필본을 보고 베껴 적은 사본, 그리고 그가 1867년에 인쇄한 판 하나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자필본도 그 사본도 그 뒤로 사라졌습니다. 정작 베토벤 자신은 1822년에 이 곡을 다시 꺼내 크게 고쳤는데, 그 개정본은 우리가 아는 곡과 상당히 다르고 끝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그 사정을 차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작품: 바가텔 가단조, WoO 59
• 주제 스케치: 1808년, 〈전원 교향곡〉 스케치북 안에 16마디짜리로
• 초안: 1810년 봄 (같은 종이의 다른 스케치가 연대를 확정한다)
• 자필 완성본: 1865년 뮌헨에서 필사된 뒤 행방불명
• 첫 출판: 1867년, 음악학자 루트비히 놀(Ludwig Nohl)이 사후에 공개
• 조성·형식·박자: 가단조 · 론도 A-B-A-C-A · 3/8박자 · Poco moto
• 개정: 1822년 가을, 바가텔 모음집의 12번으로 넣으려다 중단
우리가 치는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이 확정한 형태인가.
① 우리가 배운 악보에서 무엇이 빠져 있는가
② 제목의 이름과 날짜는 누가 적었는가
③ 베토벤이 12년 뒤에 고친 판은 어떻게 다른가
엘리제를 위하여, 잘려 나간 곡과 사라진 악보
「엘리제를 위하여를 쳐 봤다」는 분의 상당수는 사실 학원에서 주는 짧은 편곡본을 친 것입니다. 원곡은 우리가 아는 그 주제가 세 번 돌아오고 그 사이에 다른 대목이 두 번 끼어드는 모양입니다. 편곡본은 뒤에 끼어드는 두 번째 대목을 통째로 들어냅니다.
그 대목이 이 곡에서 표정이 가장 크게 바뀌는 자리입니다. 왼손이 낮은 곳에서 같은 음을 계속 두드리는 동안 위쪽 화음이 점점 조여들고, 그러다 오른손이 건반 꼭대기에서 반음씩 두 옥타브 가까이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손이 작거나 배운 지 얼마 안 된 학생에게는 벽이 되는 구간이라 교재가 이 부분을 빼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남는 것은 익숙한 주제를 두 번 되풀이하다 끝나는 짧은 곡입니다. 이 곡이 슬프기만 한 곡으로 기억되는 데에는 그 사정이 있습니다.
| 부분 | 수준 | 핵심 난관 |
|---|---|---|
| 첫 주제 누구나 아는 그 선율 |
체르니 30 진입기 | 음은 단순하지만 여린 소리와 호흡이 관건 |
| 첫 번째 끼어드는 대목 밝게 돌아서는 자리 |
체르니 30 후반 | 잘게 구르는 왼손과 오른손 선율의 음량 균형 |
| 두 번째 끼어드는 대목 편곡본에서 잘려 나가는 자리 |
체르니 40 이상 | 조여드는 화음과 두 옥타브 반음계 하강, 페달. 손보다 표현이 더 어렵다 |
잘려 나간 것은 편곡본만이 아닙니다. 원곡 악보 자체가 베토벤이 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곡의 주제가 처음 종이에 적힌 것은 1808년입니다. 베토벤이 〈전원 교향곡〉을 스케치하던 공책에 16마디짜리 선율로 남아 있고, 지금 우리가 아는 첫머리를 이미 알아볼 수 있습니다. 두 해 뒤 그는 이 주제를 다시 붙들어 널리 펼친 초안을 적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에그몬트〉 부수음악과 군대 행진곡의 스케치가 함께 있어서, 이 초안이 1810년 봄의 것이라는 사실이 표제와 무관하게 확정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베토벤은 완성한 자필본을 선물로 주고 사본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악보는 55년 뒤인 1865년 뮌헨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음악학자 루트비히 놀이 바베테 브레들이라는 여인의 집에서 그것을 보고 베껴 적었고, 1867년 자신이 엮은 베토벤 편지 모음집 안에 인쇄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인쇄본에는 오류가 있고, 자필본도 놀이 베낀 사본도 그 뒤로 둘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치는 그 판본의 뿌리는 결국 놀이 찍어 낸 인쇄본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그 인쇄본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810년의 초안이 남아 있고, 그것은 베토벤이 완성본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을 만큼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오늘의 악보는 놀의 인쇄본을 주된 자료로 삼되 이 초안과 대조해 만들어집니다. 다만 그 대조로도 메워지지 않는 자리가 남습니다. 이 곡을 「베토벤의 악보대로」 친다고 말할 때, 그 말이 가리키는 실물은 지금 없습니다.
| 첫머리. 오른손 두 음이 제자리를 오가는 동안 왼손은 아직 들어오지 않는다. |
엘리제를 둘러싼 끝나지 않은 논쟁
놀이 전한 표제는 「엘리제를 위하여, 4월 27일, 기념으로 L. v. 베토벤」이었습니다. 여기에 연도는 없었습니다. 1810년이라는 해는 뒷사람들이 초안의 연대와 이어 붙인 것입니다. 놀 자신도 이 이름이 걸렸는지, 테레제 말파티의 여동생인 안나 폰 글라이헨슈타인 남작부인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남작부인은 엘리제라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놀이 테레제를 엘리제로 잘못 읽었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퍼져 있지만, 학계에서는 후보가 넷으로 늘어난 상태입니다. 그리고 넷째 것은 앞의 셋과 성격이 다릅니다.
| 견해 | 근거 | 약점 |
|---|---|---|
| 테레제 말파티 놀의 오독설, 웅거 1922/23 |
악보가 그녀의 유품에서 나왔다. 베토벤이 1810년경 결혼을 생각했던 상대다. | 베토벤 필적의 Th와 El을 비교한 뒤로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
| 엘리자베트 뢰켈 코피츠 2009 |
지인들 사이에서 엘리제로 불렸다는 주장. 훗날 훔멜의 아내가 된 소프라노다. | 그녀는 스스로를 베티라 불렀다. 악보가 왜 뢰켈이 아닌 말파티 쪽에서 나왔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
| 엘리제 바렌스펠트 스테블린 2014 |
엘리제로 불린 열세 살 성악 신동. 베토벤이 말파티를 위해 그녀에게 헌정했다는 시나리오다. | 베토벤과의 직접 친분 증거가 약하다. 제안자 본인도 가설임을 인정한다. |
| 헌정 자체가 베토벤의 것이 아니다 마이 2014 |
표제의 4월 27일이 테레제의 사망일과 같은 날이다. 뒷날 소장자가 날짜와 헌정을 함께 적어 넣었다는 추정이다. | 자필본이 없어 필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비평판 서문이 소개하는 가설이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
넷째 견해를 조금 더 풀어 보겠습니다. 악보를 지니고 있던 바베테 브레들에게는 요제프 루돌프 샤흐너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테레제의 음악 동무였고, 테레제는 1850년에 남긴 유언 추가서에서 자신의 피아노와 소장 악보 전부를 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테레제가 세상을 떠난 날이 1851년 4월 27일입니다. 표제에 적힌 그 날짜와 같은 날입니다.
여기서 한 연구자는 이렇게 추정합니다. 날짜도 헌정도 베토벤이 쓴 것이 아니라, 악보를 물려받은 샤흐너가 1851년에서 1852년 사이에 적어 넣은 것이며, 그는 세상을 떠난 테레제를 기억하며 이 악보를 장차 아내가 될 엘리자베트 벤들링에게 건넸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애칭이 엘리제였습니다. 이 추정이 맞는다면 베토벤은 이 곡에 그 유명한 이름을 아예 적은 적이 없는 셈이 됩니다.
같은 자리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ELISE라는 이름에서 음이름으로 쓸 수 있는 글자만 골라내면 E-S-E가 되는데, 독일식 표기에서 S는 Es 곧 미♭을 가리킵니다. 미♭은 건반에서 레#과 같은 자리이므로, E-Es-E는 우리가 듣는 첫 세 음 미-레#-미와 같은 소리가 됩니다. 이 곡의 첫머리에 헌정받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으로, 독일의 음악학자 요하네스 크바크가 제시한 가설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엘리제」라는 이름이 베토벤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전제로 삼습니다. 방금 본 추정이 맞는다면 그 전제부터 흔들립니다.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곡을 둘러싼 설명들이 얼마나 얇은 근거 위에 서 있는지가 오히려 잘 보입니다.
| 요제프 카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1820년. 그가 이 소품을 다시 꺼내기 두 해 전의 모습이다. |
베토벤이 12년 뒤에 고친 1822년판
1822년 가을, 베토벤은 짧은 소품들을 묶어 한 권으로 낼 생각으로 옛 원고들을 뒤지다가 1810년의 그 초안으로 돌아옵니다. 원고 첫 장 왼쪽 위에 적힌 숫자를 보면 이 곡은 그 모음집의 12번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는 초안을 계속 손봤지만, 결국 뒷날 작품 119번으로 나온 그 모음집에 이 곡을 넣지 않았습니다.
고친 자리가 한둘이 아닙니다.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곡이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아는 판은 오른손과 왼손이 나란히 출발합니다. 개정본에서는 왼손이 반 박 늦게 들어옵니다. 선율이 잠깐 혼자 떠 있다가 반주가 뒤늦게 따라붙는 셈입니다. 익숙한 판을 알고 들으면 발을 헛디딘 것 같습니다.
곡의 표정을 정하는 첫 지시도 바뀝니다. 우리가 아는 판에는 「조금 움직임을 가지고」라고 적혀 있습니다. 개정본에는 「매우 우아하게」라고 적혀 있습니다. 같은 음을 놓고 다른 주문을 한 것입니다.
그 밖에도 손댄 자리가 있습니다. 대목과 대목 사이에 짧은 이음매를 넣어 넘어가는 자리를 부드럽게 했고, 곡의 뒷부분은 순서를 다시 짜고 마무리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이 글의 물음이 한 바퀴 돌아옵니다. 1822년 개정은 스케치 상태로 남았고 베토벤은 그것을 완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들을 수 있는 1822년 판도 결국 학자들이 그 스케치를 읽어 정리해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판은 남이 베껴 인쇄한 것에 기대어 있고, 그가 나중에 원했던 판은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이 곡에는 「작곡가가 확정한 최종본」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추천 연주
이 곡은 녹음이 워낙 많아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막막합니다. 서로 확실히 다르게 들리는 세 가지만 짚겠습니다.
빌헬름 켐프(1964년, 도이체 그라모폰).
현대 피아노로 친 표준 녹음입니다. 첫머리를 서두르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쪽이라 곡 전체의 뼈대를 한 호흡에 잡기에 좋은 출발점입니다. 1960년대 녹음이라 요즘 음반의 해상도를 기대하면 여린 소리가 다소 답답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로날트 브라우티감(2011년, BIS, 바가텔 전곡집).
베토벤 시대의 포르테피아노로 쳤습니다. 현대 피아노보다 소리가 얇고 빨리 사그라지기 때문에 왼손 화음이 뒤에 울려 남지 않고, 오른손 선율의 윤곽이 그만큼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같은 악보가 악기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확인하기에 좋습니다. 다만 이 소리에 익숙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낯설게 들립니다.
토비아스 코흐(2019년, 도이체 그라모폰).
앞에서 이야기한 1822년 개정판을 녹음한 흔치 않은 음반입니다. 반 박 늦게 들어오는 왼손과 새로 짜인 마무리를 실제로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판을 기대하고 틀면 다른 곡처럼 들리니, 익숙한 연주를 한 번 들은 뒤에 이어서 듣는 편이 낫습니다.
베토벤의 생애와 작품 전체의 흐름이 궁금하시다면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 글도 함께 읽어 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Q1. 엘리제는 정말 테레제 말파티인가요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악보가 말파티 집안의 유품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나, 놀이 테레제를 엘리제로 잘못 읽었다는 설명은 베토벤 필적을 비교한 뒤로 힘을 잃었습니다. 엘리자베트 뢰켈설과 엘리제 바렌스펠트설이 뒤이어 나왔고, 헌정 자체를 베토벤이 쓰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까지 더해져 지금은 넷이 나란히 있습니다.
Q2. 베토벤의 자필 악보는 어디로 갔나요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1865년 뮌헨의 바베테 브레들이 지니고 있던 것을 루트비히 놀이 베껴 적은 것이 마지막 기록이고, 그 뒤 자필본도 놀의 사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브레들의 아들이 테레제 말파티의 악보를 물려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악보가 어떤 경로로 뮌헨까지 왔는지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됩니다.
Q3. 1822년 개정본은 무엇이 다른가요
첫 주제가 돌아올 때마다 왼손 반주가 반 박 늦게 들어옵니다. 밝게 돌아서는 대목으로 넘어가는 자리에 짧은 이음매가 생기고, 곡 마지막 3분의 1은 얼개가 다시 짜였습니다. 첫머리 지시도 Molto grazioso로 바뀝니다. 다만 이 개정은 스케치로 남아 완성되지 않았고, 오늘 연주되는 1822년 판은 그 스케치를 학자들이 정리한 것입니다.
Q4. 도입부 첫 음들에 숨은 뜻이 있나요
ELISE에서 음이름으로 쓸 수 있는 글자만 골라내면 E-S-E가 되고, 독일식 표기에서 S는 Es 곧 미♭을 뜻합니다. 미♭은 건반에서 레#과 같은 자리이므로 첫 세 음 미-레#-미와 소리가 같아집니다. 이름이 첫머리에 숨어 있다는 가설입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엘리제라는 이름이 베토벤에게서 나왔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 전제 자체가 논쟁 중입니다.
Q5. 이 곡은 어느 정도로 어려운가요
부분마다 다릅니다. 첫 주제는 비교적 접근하기 쉽지만, 편곡본에서 잘려 나가는 두 번째 끼어드는 대목은 조여드는 화음과 두 옥타브 반음계 하강이 나와 손가락보다 표현이 더 까다롭습니다. 쉬운 곡이라는 인상은 대개 짧은 편곡본에서 온 것입니다.
Q6. 곡이 쉬워서 베토벤 작품이 아니라는 말은 사실인가요
그런 문제제기를 한 연구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핵심 주제가 베토벤의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작품이 아니라는 결론이라기보다, 우리가 지금 보는 악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신중하게 보자는 쪽에 가깝습니다.
맺음말
다음에 이 곡을 틀면 첫 열 초만 따로 들어 보십시오. 오른손이 두 음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왼손은 아직 들어오지 않습니다. 선율이 아래로 내려갈 때가 되어서야 왼손이 받쳐 줍니다. 이 짧은 자리가 이 곡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된 대목입니다. 이름이 숨어 있다는 말도, 그 이름이 베토벤의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말도 모두 여기서 나왔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1822년 판을 이어서 들어 보십시오. 같은 자리에서 왼손이 반 박 늦게 들어옵니다. 그것 하나로 곡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베토벤이 12년 뒤에 무엇을 바꾸고 싶어 했는지가 거기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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