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년 12월 22일 밤, 빈의 안 데어 빈 극장(Theater an der Wien)에서 네 시간짜리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교향곡 5번과 6번, 합창 환상곡이 이날 초연됐고,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처음으로 일반 청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곡을 연주하던 도중 음악이 멈췄습니다.
이 밤은 오랫동안 ‘실패한 초연’으로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추운 극장, 지친 청중, 무너진 앙상블. 그런데 그날의 기록을 하나씩 꺼내 나란히 놓으면 이상한 점이 보입니다. 연주가 왜 멈췄는지에 대해,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의 증언과 후대 연구기관의 설명이 서로 다른 지점을 비춥니다. 이 글은 그 어긋남을 따라갑니다.
이 글이 답하는 질문
1808년 12월 22일 밤, 연주가 멈춘 그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 밤을 ‘실패’로 기록한 것은 누구인가.
그날 밤 무엇이, 어떤 순서로 연주되었나
여덟 곡이 두 부로 나뉘어 연주되었고, 전부 베토벤의 작품이었습니다.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해 밤 10시 30분에 끝났습니다.
| 부 | 곡 | 비고 |
|---|---|---|
| 1부 | 교향곡 F장조 ‘전원’ op. 68 | 초연(당일 프로그램에는 5번으로 표기) |
| 아리아 ‘아, 배신자여’(Ah! perfido) op. 65 | 소프라노 독창 | |
| 미사 C장조 op. 86 중 글로리아 | 교회음악 단독 연주 제약을 피한 편성 | |
|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 op. 58 | 공개 초연(1807년 3월 로브코비츠 궁에서 비공개로 먼저 연주). 베토벤이 직접 독주 | |
| 2부 | 교향곡 C단조 op. 67 | 초연(당일 프로그램에는 6번으로 표기) |
| 미사 C장조 중 상투스 | ||
| 피아노 즉흥 연주 | 베토벤 단독 | |
| 합창 환상곡 c단조 op. 80 | 초연(연주 중단 후 재시작) |
오늘 우리가 5번이라 부르는 곡이 그날은 6번이었습니다. 번호는 이듬해 악보가 출판되면서 지금의 형태로 굳었습니다. 프로그램 순서로 보면 이유는 단순합니다. 먼저 연주된 전원 교향곡이 앞 번호를 달고 있었습니다.
연주는 왜 멈췄나: 두 당사자의 증언과 후대 연구기관의 설명
멈춘 지점은 마지막 곡 합창 환상곡이었고,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이 갈립니다. 앞의 둘은 그날 무대에 있던 사람이 남긴 증언이고, 마지막 하나는 후대 연구기관이 정리한 설명입니다. 층위가 다르므로 나눠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① 무대에 있던 자이프리트: 반복을 생략하기로 한 약속
이날 극장의 악장이자 지휘자였던 이그나츠 폰 자이프리트는 리허설 정황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그는 “늘 그렇듯 젖은 성부보로” 급하게 진행된 리허설에서, 두 번째 변주를 반복 없이 지나가기로 베토벤과 합의했다고 적었습니다. 잉크가 마르지 않은 악보가 그대로 보면대에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이 증언이 중요한 이유는 사고 지점을 특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흔들린 곳은 곡 전체가 아니라 변주가 이어지는 구간이었고, 문제는 ‘반복을 하느냐 마느냐’라는 아주 좁은 합의였습니다.
② 베토벤 자신: “나는 갑자기 멈추게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밤에서 2주가 조금 지난 1809년 1월 7일, 베토벤은 라이프치히의 출판사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에는 그날의 중단이 베토벤 자신의 1인칭 시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Hauptsächlich waren die Musiker aufgebracht, daß indem aus Achtlosigkeit bey der einfachsten plansten Sache von der Welt gefehlt worden war, ich plözlich stille ließ halten, und laut schrie[:] noch einmal“
“무엇보다 음악가들이 화가 난 것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대목에서 부주의로 실수가 났을 때 내가 갑자기 연주를 멈추게 하고 큰 소리로 ‘한 번 더!’라고 외쳤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베토벤은 추위도 프로그램 길이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편지에 적은 것은 멈춤과 그 뒤에 남은 감정입니다. 둘째, 그는 ‘음악가들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문장의 주어 자리에 놓습니다. 그날 밤을 그는 작품이 실패한 사건이 아니라 연주자들과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③ 후대의 정리, 본 베토벤하우스: 급히 적은 악보 자체에 오류가 있었다
본의 베토벤하우스는 이 작품 항목에서 합창 환상곡이 초연 직전에 쓰였고, 그래서 리허설이 거의 없었으며, 서둘러 적은 악보에 오류가 있어 어느 지점에서 악기들이 어긋났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베토벤이 연주를 중단시키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증언 둘과 후대의 설명 하나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 기록(성격) | 지목하는 원인 | 시점 |
|---|---|---|
| 자이프리트(악장, 당사자 증언) | 두 번째 변주의 반복을 생략하기로 한 합의(젖은 성부보) | 무대 위 |
| 베토벤(1809년 1월 7일 편지, 당사자 증언) | 부주의로 인한 실수, 그리고 자신이 멈추게 한 행동 | 피아노 앞 |
| 베토벤하우스(후대 연구기관의 정리) | 급히 필사한 악보 자체의 오류 | 후대의 정리 |
같은 사고를 두고 무대의 사람은 약속을, 작곡가는 자신의 행동을, 후대의 연구는 악보를 지목합니다. 앞의 둘은 그날의 기억이고 마지막은 자료를 통해 뒤에 내린 판단이지만, 서로 모순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겹쳐 읽으면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마르지 않은 잉크로 적힌 파트보가 연주자 앞에 놓였고, 반복을 건너뛰기로 한 좁은 합의가 어긋났으며, 그 순간 피아노 앞의 작곡가가 연주를 세웠습니다.
객석은 그 밤을 어떻게 적었나: 라이하르트의 문장
‘실패한 초연’이라는 오늘의 서사는 대체로 객석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의 문장에서 나왔습니다. 작곡가이자 음악 저술가였던 요한 프리드리히 라이하르트는 그날 극장에 있었고, 빈 여행기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Da haben wir denn auch in der bittersten Kälte von halb sieben bis halb elf ausgehalten, und die Erfahrung bewährt gefunden, daß man auch des Guten – und mehr noch, des Starken – leicht zu viel haben kann.“
“우리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여섯 시 반부터 열 시 반까지 버텼고, 좋은 것도, 하물며 강한 것이라면 더욱, 지나치게 많을 수 있다는 경험을 확인했다.”
이 문장이 왜 그렇게 오래 인용되었는지는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라이하르트는 베토벤의 적이 아니었습니다. 호의적인 청중이 남긴 불평이라서 더 설득력이 있었고, 그래서 후대는 이 문장을 그 밤의 요약으로 삼았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가 분명해집니다. ‘네 시간’과 ‘추위’는 객석의 언어입니다. 무대 위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는 그 두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밤을 실패로 기억하는 방식은, 사실 어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의 기록을 골랐느냐에 크게 기대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함께 일어난 일들: 독창자 교체와 베토벤의 마지막 독주
중단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날 아리아 ‘아, 배신자여’를 부르기로 했던 소프라노 안나 밀더는 공연에 서지 않았습니다. 베토벤과 그녀의 약혼자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대신 무대에 오른 사람은 십대였던 요제피네 킬리치기, 즉 바이올리니스트 슈판치히의 처제였습니다. 그녀는 무대 공포로 아리아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베토벤이 협주곡 독주자로 청중 앞에 선 마지막 무대였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직접 연주했고, 2부에서 즉흥 연주를 했으며, 마지막 곡에서는 피아노를 치면서 전체를 이끌었습니다. 청력이 이미 상당히 나빠진 상태에서였습니다.
귀로 확인해 보기: 합창 환상곡의 그 구간
기록만 읽고 끝내면 아깝습니다. 합창 환상곡 op. 80을 틀고 다음 세 지점을 순서대로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사고가 난 자리가 어떤 성격의 자리였는지 귀로 잡을 수 있습니다.
- 맨 앞, 피아노 혼자 나오는 구간. 오케스트라 없이 피아노가 한참 혼자 갑니다. 그날 이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지휘도 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들어 보세요.
- 오케스트라가 처음 들어오는 순간. 피아노 독백이 끝나고 관현악이 합류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누군가 신호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 주제가 나온 뒤 형태를 바꿔 가며 되풀이되는 구간. 같은 선율이 악기를 바꿔 가며 변주로 이어집니다. 자이프리트가 ‘두 번째 변주의 반복’을 말한 자리가 바로 이 흐름 안입니다. 한 번 더 도는지 그냥 넘어가는지, 그 갈림에서 어긋나면 어떻게 되는지 상상하면서 들어 보면 그날의 사고가 훨씬 구체적으로 잡힙니다.
이 곡을 처음 듣는다면 마지막 합창이 들어오는 대목도 놓치지 마세요. c단조에서 출발해 밝은 쪽으로 열리고 합창이 합류하는 이 설계는, 15년 뒤 교향곡 9번에서 훨씬 큰 규모로 다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 밤은 실패였나
공연으로 보면 잘 굴러간 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초연’이라는 이름표는 기록의 편식에서 나온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밤을 요약하는 문장은 거의 언제나 라이하르트의 것이고, 그것은 객석의 감각, 곧 추위와 길이를 말합니다. 반면 무대 쪽 기록은 다른 것을 말합니다. 자이프리트는 합의가 어긋난 좁은 지점을 말하고, 베토벤은 자신이 멈추게 했다는 사실과 그 뒤 연주자들의 감정을 말합니다. 어느 쪽도 ‘작품이 형편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한 문장이 어떻게 정설의 자리까지 올라갔는지를 되짚어 보면, 그 경로 자체가 눈에 띕니다. 라이하르트가 이 문장을 남긴 ‘Vertraute Briefe’의 해당 지면은 오늘날까지도 원본으로 직접 확인되지 않습니다. 독일어 위키백과의 교향곡 5번 항목을 보면 이 문장은 라이하르트의 책이 아니라, 베토벤의 초기 전기 작가 신들러(Schindler)의 책에 달린 각주를 거쳐 인용되고 있습니다. 원 지면으로 되짚어 검증되기보다 후대의 각주를 통해 옮겨진 문장이, 오늘날 ‘실패한 초연’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불려 나오는 셈입니다.
그 문장이 유독 오래 살아남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밤을 기록한 사람은 라이하르트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이프리트는 급하게 진행된 리허설과 어긋난 합의를 남겼고, 베토벤 자신도 2주 뒤 편지에 그 밤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되풀이되는 ‘추위’와 ‘네 시간’이라는 두 단어는 오직 라이하르트의 문장에만 있습니다. 무대 쪽의 두 기록 어디에도 이 단어들은 없습니다. 인용하기 좋은 한 문장이 거듭 인용되는 사이, 같은 밤을 다르게 증언하는 문장들은 그만큼 인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 그날의 조건을 얹으면 평가는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초연 직전에 완성된 곡, 잉크가 마르지 않은 파트보, 충분치 않은 리허설, 예정된 독창자의 이탈. 이런 조건에서 네 시간짜리 신작 여덟 곡을 한 번에 내놓는 일은 오늘날 어떤 단체에게도 무리입니다.
덧붙이자면, 베토벤 본인이 이 밤을 어떻게 정리했는지도 편지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사고를 감추지 않았고, 자기가 소리쳐 멈추게 했다고 적었습니다. 실패담으로 쓰기 좋은 소재를 스스로 남긴 셈인데, 정작 그 문장이 향하는 곳은 변명이 아니라 연주자들에게 생긴 앙금이었습니다. 그 밤 그가 신경 쓰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1808년 12월 22일 밤에 대해 우리가 가진 것은 성격이 다른 세 갈래의 기록입니다. 객석에서 추위를 견딘 사람의 문장, 무대에서 합의가 어긋난 지점을 아는 사람의 회고, 그리고 피아노 앞에서 연주를 세운 사람이 2주 뒤에 쓴 편지.
증언 둘과 후대의 설명을 같이 놓고 보면 그 밤은 ‘망한 초연’보다 조금 더 복잡한 사건이 됩니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악보를 들고 신작 여덟 곡을 하룻밤에 통과시키려던 무리한 기획이 있었고, 그 안에서 한 번 어긋났으며, 작곡가는 그것을 감추는 대신 편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처음 울린 네 음은 이후 200년 동안 연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날 흔들린 것은 작품의 질이 아니라, 신작 여덟 곡을 하룻밤에 감당하려 한 기획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