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these first

Latest on the blog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 역사적 배경과 음악적 메시지

클래식 공연을 관람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곡 중 하나가 바로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입니다. 오늘날에는 연주회 서곡에 특화된 곡처럼 느껴지지만, 의외로 이 곡의 배경과 이야기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음악적 메시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은 단순히 오케스트라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아니라 압제와 투쟁, 그리고 결국 자유를 쟁취하는 인간의 의지라는 웅장한 드라마를 단 몇 분 안에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이 곡은 베토벤이 깊은 존경심을 표했던 괴테의 동명 비극을 위해 1809년 10월부터 1810년 6월 사이에 작곡한 극음악(Incidental Music)의 일부입니다. 이 시기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오스트리아가 큰 타격을 입고, 1809년에는 프랑스군이 빈을 점령했던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베토벤은 이러한 정치적 혼란과 압제를 직접 목도하면서, 자유와 저항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형상화하고자 이 극음악을 구상했습니다.



라모랄 에그몬트 백작 초상화
라모랄 에그몬트 백작 초상화

1. 에그몬트 백작: 자유를 위한 16세기 네덜란드의 영웅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에그몬트 백작은 16세기 중반 네덜란드에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입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스페인 왕실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국민들의 신임을 받던 에그몬트 백작은 이러한 스페인의 폭정에서 벗어나 평화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독립 운동을 이어갔지만, 결국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에그몬트 백작의 처형은 네덜란드 국민의 분노와 전국적인 저항 운동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결국 스페인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끌어내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2. 베토벤이 에그몬트에게서 본 메시지

베토벤이 에그몬트 이야기에 깊이 감명받은 것은 당시 그의 개인적인 상황과 정치적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무분별한 영토 확장과 유럽 지배 야욕을 증오했습니다. 그는 이미 1804년 교향곡 3번 《영웅》의 표지에서 원래 적혀 있던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격분하여 찢어버림으로써 폭군에 대한 증오심을 강하게 표출한 바 있습니다. 《에그몬트》는 이러한 그의 정치적 신념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입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오스트리아가 패배하고, 빈이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하는 현실 속에서 베토벤은 바로 곁에서 제국의 폭압과 시민들의 불안을 체감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에그몬트라는 인물 안에서, 폭군에 맞서 고통받지만 결국 자유와 정의의 상징으로 남는 영웅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베토벤은 폭군에 맞서 고통받는 영웅이 구원(또는 해방)을 받는다는 주제에 강한 공감을 느꼈습니다. 억압과 투쟁 끝에 자유를 쟁취해내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3. 음악 속 드라마: 압제에서 찬란한 승리로

《에그몬트》 서곡은 비극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청중에게 "인간의 의지는 결국 승리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이 곡의 진행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1. 장엄하고 공포스러운 시작
    서곡은 장엄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문을 엽니다. 느린 서주부는 에그몬트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하며, 마치 처형을 앞둔 영웅의 긴장감과 공포를 표현하는 듯합니다.
  2. 투쟁과 결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점차 두려움에 맞서는 강한 결기로 변해갑니다. 긴장감 넘치는 선율은 영웅의 투쟁을 상징하며,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베토벤 특유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3. 찬란한 클라이맥스 – '승리의 교향곡'
    이 작품의 백미는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승리의 교향곡'입니다. 역사적으로 에그몬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베토벤은 그의 죽음을 희망찬 승리의 씨앗으로 그렸습니다. 처형을 앞둔 영웅이 단두대 앞에 선 마지막 장면을 위해 베토벤은 역설적이게도 '승리의 교향곡'이라고 이름 붙인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이 찬란한 피날레가 서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먼저 등장함으로써, 서곡 자체가 극의 모든 스토리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네덜란드의 해방을 꿈꾸는 에그몬트의 간절한 염원을 대변합니다.

4. 완전한 극음악 Op. 84에 대하여

우리가 흔히 듣는 《에그몬트》 서곡은 사실 베토벤이 괴테의 희곡을 위해 작곡한 전체 극음악 Op. 84 중 첫 번째 곡에 불과합니다.

이 극음악은 서곡을 포함해 모두 10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곡 외에도 소프라노 독창과 해설자를 위한 다양한 음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소프라노를 위한 노래 두 곡, 막간곡(Entracte) 네 곡, 클레르헨의 죽음을 묘사하는 관현악곡, 에그몬트의 마지막 밤을 위한 멜로드라마,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승리의 교향곡(Siegessymphonie)'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곡들은 연극의 장면 전환과 분위기 조성을 위해 쓰인 만큼, 서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연극이 상연되는 경우가 드물고, 무엇보다 서곡이 그 자체로 워낙 완결성이 높은 명곡이기 때문에, 오늘날 콘서트 레퍼토리에서는 서곡만 단독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추천 감상 

괴테는 베토벤의 이 음악을 듣고 "베토벤이 텍스트와 음악을 놀라울 정도로 일치시켰으며, 자신의 모든 의도를 음악으로 완벽히 표현했다"고 극찬했습니다.

이처럼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에그몬트》 서곡은 "인간의 의지는 억압을 이겨낼 수 있다"는 베토벤의 굳건한 신념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명작입니다. 이 곡은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연주된 바 있으며, 자유와 해방의 염원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음원을 함께 들어보시면, 베토벤이 그려낸 비극과 승리의 드라마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 《에그몬트》 서곡의 행진곡풍 선율 일부는 로타리 인터내셔널의 공식 찬가(Rotary Anthem)의 멜로디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