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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그라베는 왜 세 번 돌아올까

청중이 처음 듣는 것은 화음만이 아닙니다. 낮고 무거운 다단조 화음이 눌린 뒤, 그 소리가 빠르게 사라지며 남기는 정적까지가 도입부의 일부입니다. 곧이어 음악은 느린 그라베에서 매우 빠르고 격렬한 알레그로로 튀어 오릅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의 핵심은 단순한 슬픔이 아닙니다. 베토벤은 빠르게 잦아드는 포르테피아노의 음향을 강한 타격과 정적으로 바꾸고, 1악장의 느린 그라베를 세 차례 되돌려 악장 전체에 기억의 축을 세웠습니다. 이 두 장치를 따라가면 세 악장이 어떻게 긴장과 회상을 이어 가는지 훨씬 또렷하게 들립니다. …

피아노는 누가 만들었나 — 크리스토포리와 1700년경 피렌체

1711년, 베네치아에서 발행되던 학술지 〈Giornale de' letterati d'Italia〉 제5권에 익명의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제목은 〈Nuova invenzione d'un gravicembalo col piano, e forte〉, 곧 ‘약한 소리와 강한 소리를 내는 새로운 하프시코드의 발명’이었다. 글쓴이는 베로나의 학자 시피오네 마페이(Scipione Maffei)였고, 그가 소개한 악기는 피렌체 메디치 궁정의 한 공방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논문이 유럽에 알린 악기가 오늘날 우리가 피아노라고 부르는 악기…

드뷔시 〈달빛〉 해설 — 제목에 숨은 베를렌의 두 시와 감상 포인트

곡 한눈에 보기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작품: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제3곡 'Clair de lune(달빛)' 작품번호: L.75 작곡·출판: 1890년경 착수, 1905년 프로몽(E. Fromont) 출판사에서 출판 편성: 피아노 독주 조성·박자: 내림라장조, 9/8박 빠르기: 'Andante très expressif(매우 표정 풍부하게, 느린 걸음으로)' 연주 시간: 대체로 약 4∼6분 목차 달빛이라는 제목 앞에서 제목의 비밀, 베를렌의 두 시 1890년…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1955년과 1981년은 왜 이렇게 다를까

글렌 굴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두 번 녹음했습니다. 1955년과 1981년 — 26년의 간격을 둔 이 두 녹음은 같은 악보 앞에 앉아서도 전혀 다른 음악을 들려줍니다. 두 녹음의 차이는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 녹음이 각각 어떤 음악적 질문에 답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봅니다. 두 녹음 한눈에 보기 •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 작품: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 1955년 녹음 발매: 1956년 (Columbia Records, 현 Sony Classical)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완전 가이드

19세기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는 피아노 음악사에 남을 비유를 남겼습니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 피아니스트의 구약성서라면,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니스트의 신약성서입니다.  어느 쪽도 건너뛸 수 없는 건반 음악의 두 기둥이라는 뜻입니다. 베토벤에게 교향곡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거대한 선언이었다면, 피아노 소나타는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일기장이었습니다. 1795년 첫 소나타를 출판한 이후 1822년 마지막 32번을 완성하기까지 27년, 그 여정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언어에서 출발해 형식과 감정의 가능성을 끝까…

피아노 작동 원리 — 액션 메커니즘과 에스케이프먼트(escapement)의 완전분석

피아노 건반 하나를 손가락이 누른다. 그 작은 동작이 끝나기 전에 펠트 망치 하나가 빠르게 위로 솟구쳐 강철 현을 때리고, 때리자마자 곧바로 아래로 떨어져 나간다. 망치는 현 위에 머무를 수 없다. 머무르는 순간 자기가 만든 진동을 자기 몸으로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피아노 작동 원리의 핵심에는 이 한 가지 모순이 있다 — 때리는 동시에 즉시 떠나야 한다. 1700년경 피렌체에서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가 처음 이 문제에 답을 냈고, 1821년 파리의 세바스티앵 에라르(Sébastien Érard)가 그 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