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곡 가운데 이만큼 널리 쓰인 첫머리도 드뭅니다. 드라마와 광고, 영상, 심지어 식당에서도 저 잔물결 같은 시작은 어김없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곡을 첫 1분 남짓만 아는 분이 많습니다. 느리고 조용한 악장이 끝날 무렵 곡을 끄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그 뒤를 위한 글입니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첫 악장의 잔물결과 마지막 악장의 파도는 같은 것이고, 베토벤은 그 순서를 일부러 뒤집었으며, 첫 악장은 애초에 소리가 흐려지도록 적혀 있습니다.
• 작품: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c♯단조 「월광」, Op.27 No.2
•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원제: Sonata quasi una Fantasia (환상곡풍의 소나타)
• 작곡: 1801년 / 초판 출판: 1802년, 빈 조반니 카피(Giovanni Cappi)
• 헌정: 줄리에타 귀차르디 백작영애 (Giulietta Guicciardi)
• 구성: 3악장. I. Adagio sostenuto / II. Allegretto / III. Presto agitato
• 연주 시간: 15분 안팎
• 감상 열쇠: 첫 악장 첫머리에 적힌 「댐퍼 없이」라는 지시, 그리고 잔물결이 파도로 돌아오는 자리
| 첫 악장 첫머리. 오른손이 잔물결과 노래를 함께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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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월광 소나타, 달빛이라는 이름의 출처
「월광(Mondscheinsonate)」이라는 이름은 베토벤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독일의 음악평론가이자 시인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1824년 소설 〈테오도어〉에서 이 곡의 첫 악장을 달빛에 비유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별명이 곡에 붙어 널리 쓰인 것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1827년 뒤의 일로, 1830년대에 독일 출판물을 통해 퍼지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흔히 함께 언급되는 「루체른 호수 위의 달빛과 배」라는 구체적인 장면은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후대의 저술가 빌헬름 폰 렌츠가 1852년에 렐슈타프의 말이라며 전한 것인데, 정작 렐슈타프의 원문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널리 퍼진 이야기라고 해서 출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는 같은 악장을 전혀 다르게 적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구슬픈 유령의 목소리 같다고요. 달빛과 유령, 같은 소리를 듣고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이름은 클래식 바깥으로도 넘어갔습니다. 비틀즈의 1969년 앨범 〈애비 로드〉에 실린 〈Because〉가 그렇습니다. 존 레논은 1980년 인터뷰에서, 요코 오노가 월광 소나타 첫 악장을 치는 것을 듣고 그 화음을 거꾸로 쳐 달라고 부탁한 데서 곡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화음이 그대로 뒤집힌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지만, 첫 악장의 잔물결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레논 본인의 이야기입니다.
환상곡풍 소나타가 뒤집은 순서
초판 표지에 적힌 정식 제목은 Sonata quasi una Fantasia, 우리말로 「환상곡풍의 소나타」입니다. 이 부제가 곡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자리 잡은 고전파 소나타는 대개 빠른 첫 악장으로 문을 열고, 느린 악장에서 숨을 고른 뒤, 다시 빠른 악장으로 닫았습니다. 곡의 무게가 앞쪽에 있었던 것입니다. 베토벤은 이 곡에서 그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 1악장 Adagio sostenuto (아주 느리게, 소리를 이어서)
- 2악장 Allegretto (조금 빠르게)
- 3악장 Presto agitato (매우 빠르고 격하게)
느리게, 조금 빠르게, 그리고 폭발하듯이. 악장이 갈수록 빨라지고 세지는 이 배열은 단순한 순서 바꾸기가 아닙니다. 곡의 무게를 맨 뒤로 미루겠다는 뜻입니다. 첫 악장에서 참고, 둘째 악장에서 잠깐 숨을 돌린 뒤, 마지막에 한꺼번에 쏟아 냅니다. 「환상곡풍」이라는 부제는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첫 악장이 이 곡의 전부처럼 여겨지는 오늘날의 사정은, 그 결정이 뜻밖에 낳은 결과인 셈입니다.
소리를 흐리라는 지시
첫 악장에는 악보에서 바로 읽히는 특별한 지시가 하나 있습니다. 베토벤은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곡 전체를 최대한 섬세하게, 그리고 댐퍼 없이.
댐퍼는 건반에서 손을 떼면 현의 진동을 멈춰 주는 장치입니다. 이것을 들어 올린 채로 치면 앞서 친 음이 바로 사라지지 않고 다음 음과 겹칩니다. 소리가 쌓이면서 흐려지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이 악장을 그렇게 들리도록 적어 두었습니다.
문제는 악기가 바뀌었다는 데 있습니다. 베토벤 시대의 피아노는 오늘날의 콘서트용 그랜드피아노보다 울림이 짧게 사라졌습니다. 댐퍼를 계속 들어 두어도 소리는 안개처럼 흐려질 뿐 뭉개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대 피아노로 같은 지시를 곧이곧대로 지키면 서로 관계없는 음까지 겹겹이 쌓여 탁해집니다. 그래서 오늘날 연주자들은 페달을 아주 조금씩 끊어 가며 그 흐릿함을 흉내 냅니다.
즉 우리가 음악회에서 듣는 첫 악장은 베토벤이 적어 둔 것을 그대로 옮긴 소리가 아니라, 오늘의 악기로 다시 만들어 낸 소리에 가깝습니다. 이 지시를 알고 들으면 첫 악장의 그림이 달라집니다. 달빛보다 물안개 쪽입니다.
첫 악장을 들을 때는 선율만 좇지 말고 그 뒤에 남아 있는 울림을 함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음과 음 사이가 끝까지 끊기지 않는 것이 이 악장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월광 소나타 3악장, 잔물결에서 파도까지
첫 악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고 보면 단순합니다. 왼손은 낮은 자리에서 드문드문 음을 짚어 바닥을 알립니다. 오른손은 한 박을 셋으로 나눈 음들로 잔물결을 만듭니다. 그리고 같은 오른손이 그 위에 노래를 얹습니다. 한 손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입니다. 물결을 굴리는 손끝이 길고 짧은 두 음을 되풀이하며 그 유명한 선율을 떠받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들으면 처음보다 훨씬 잘 들립니다.
잔물결은 악장이 끝날 때까지 거의 그치지 않고, 소리도 내내 여리게 유지됩니다. 그래서 음악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 않고 제자리에서 깊어지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곡의 첫 악장이 격렬해서가 아니라 멈추지 않아서 긴장되는 이유입니다.
둘째 악장은 2분 남짓으로 짧고, 이 곡에서 유일하게 가볍습니다. 조성이 어두운 c♯단조에서 밝은 D♭장조로 옮겨 가는데, 건반 위에서는 거의 같은 자리이면서도 귀에 들리는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프란츠 리스트는 이 악장을 두 심연 사이에 핀 한 송이 꽃이라 불렀습니다. 앞뒤의 깊은 물을 알고 들으면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악장에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두 손이 건반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빠른 음 덩어리를 쏟아 내고, 이따금 낮은 음이 무겁게 내리찍힙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갑자기 여리게라는 지시가 여러 번 나온다는 점입니다. 치솟던 소리가 한순간 죽은 듯 조용해졌다가 다시 터지기를 되풀이합니다. 기교를 뽐내는 악장이 아니라 감정이 통제를 잃어 가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파도는 처음 듣는 소리가 아닙니다. 첫 악장에서 쉬지 않고 굴러가던 그 잔물결이, 속도와 세기를 몇 배로 얹고 돌아온 것입니다. 물 위에 떠 있던 길고 짧은 노래의 리듬은 이제 밀어붙이는 힘이 됩니다. 같은 재료가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것, 세 악장을 한 곡으로 묶는 끈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소나타의 큰 흐름은 고요함에서 시작해 잠깐 숨을 돌린 뒤 마지막에 긴장을 풀어놓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첫 악장만 듣고 고요한 곡으로 기억하면 절반만 들은 셈이 됩니다.
| 요제프 카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1820년. |
월광 소나타 헌정에 얽힌 사정
1801년의 베토벤은 서른을 갓 넘긴 나이로, 빈에서 가장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습니다. 그러나 편안한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귓병의 조짐이 있었고, 이듬해 가을에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쓰게 됩니다.
그해 11월 16일, 베토벤은 고향 본의 친구인 의사 프란츠 게르하르트 베겔러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 한 통에 두 가지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귀가 나빠지고 있다는 고백과,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적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결혼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신분이 다르다는 사실도 함께 적었습니다. 같은 편지에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운명의 목을 움켜쥐겠다고요.
상대는 그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제자, 줄리에타 귀차르디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나타의 초판 표지에 오른 이름도 그녀입니다.
다만 표지에 그 이름이 오른 사연은 생각보다 우연에 가깝습니다. 베토벤이 원래 그녀에게 주려던 곡은 이 소나타가 아니라 론도 사장조 Op.51 No.2였습니다. 그는 악보를 이미 건넸는데, 그 곡을 리히노프스키 백작부인에게 헌정해야 하게 되자 그녀에게 돌려 달라고 청했고, 대신 마침 쓰고 있던 이 소나타에 그녀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경위는 줄리에타 본인이 1852년에 학자 오토 얀에게 직접 이야기한 것으로 전합니다.
그래서 이 곡을 슬픈 짝사랑의 노래로 읽는 이야기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정은 사실이고 감정도 사실이지만, 이 곡이 그 사랑을 그리려고 쓰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하지 못했고 그녀는 2년 뒤 다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나란히 놓인 사실뿐입니다. 흐려지는 귀와 시작된 사랑을 함께 안고 있던 해에, 그는 소나타의 순서를 뒤집은 곡을 썼습니다.
베토벤 월광 소나타 추천 연주
녹음이 워낙 많아 무엇부터 들을지 막막합니다. 서로 다르게 들리는 세 가지만 짚겠습니다. 연주자 이름과 곡 제목을 함께 검색하면 바로 나옵니다.
빌헬름 켐프 · 도이체 그라모폰, 1965년 1월 녹음(1964~65년 스테레오 전집).
담담하게 흘려보내는 독일 정통 해석으로, 세 악장의 흐름을 한 호흡에 잡기에 좋은 출발점입니다. 켐프는 1951년부터 1956년 사이에 모노 전집도 남겼으니 음반을 고르실 때 헷갈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다만 60년대 녹음이라 요즘 음반의 해상도를 기대하면 여린 소리가 다소 답답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다니엘 바렌보임 · EMI, 1966~69년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 녹음.
곡의 짜임을 또렷하게 짚어 주는 쪽이라, 첫 악장에서 무엇이 반복되고 마지막 악장에서 그것이 어떻게 돌아오는지 따라가기에 좋습니다. 바렌보임은 1980년대에 도이체 그라모폰으로 전집을 다시 녹음했으니,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앞의 것입니다. 반대로 설명 없이 그냥 흘러가는 연주를 좋아한다면 손이 많이 간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로날트 브라우티감 · BIS, 2006년 발매(BIS-SACD-1473).
현대 피아노가 아니라 베토벤 시대 악기를 본뜬 포르테피아노로 녹음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댐퍼 없이」가 원래 어떤 소리였을지 가장 가깝게 확인할 수 있는 녹음입니다. 소리가 얇고 빨리 사그라지기 때문에 음이 겹치면서도 탁해지지 않습니다. 대신 현대 피아노의 크고 긴 울림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만 고르신다면 켐프로 전곡을 먼저 듣고, 첫 악장의 울림이 궁금해졌을 때 브라우티감을 비교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다음에 이 곡을 트실 때는 첫 악장이 끝나는 자리에서 끄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만 따라가 보십시오. 첫 악장의 잔물결과 마지막 악장의 파도가 같은 종류의 소리라는 것, 그리고 첫 악장 노래의 길고 짧은 리듬이 마지막 악장 어디에서 돌아오는지입니다. 이 둘을 좇다 보면 세 악장이 왜 한 곡인지 머리가 아니라 귀로 알게 됩니다. 달빛이라는 이름은 뒷사람들이 붙인 것이고, 1801년에 쓰인 곡은 소나타의 순서를 뒤집은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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