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사계 여름, 소네트와 악장 해설, 더위와 폭풍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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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밝은 합주로 문을 열었다면 〈여름〉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여린 소리로 시작합니다. 가락은 자꾸 끊기고 한숨처럼 멈춥니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사계〉 두 번째 곡 〈여름(L’Estate)〉 G단조 RV 315입니다. 1725년 초판 악보는 이 첫머리에 「더위로 인한 나른함」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여름〉은 이 나른함이 불안으로, 불안이 폭풍으로 바뀌어 가는 곡입니다. 소네트 마지막 연은 「아, 그의 두려움은 너무나 옳았다」로 시작합니다. 세 악장은 그 두려움이 맞아떨어지기까지의 과정입니다.

호숫가 마을과 산, 큰 나무가 있는 이탈리아풍 전원 풍경화
호숫가 마을과 먼 산이 보이는 이탈리아풍 전원 풍경화다(작가 미상).

  〈사계〉가 어떤 곡집에 실렸는지, 소네트와 악보에 붙은 A, B, C 글자 표시가 무엇인지는 비발디 사계 봄 글에서 정리했습니다. 여기서는 〈여름〉의 소네트와 세 악장을 따라갑니다.

1. 사계 여름 소네트 원문과 번역

  원문은 1725년 초판의 철자를 따랐습니다. 초판은 이 곡의 제목을 「L’ESTADE」라고 찍었습니다. 괄호 안의 영문 대문자는 악보의 해당 대목에 새겨진 글자입니다.

1악장 알레그로 논 몰토(Allegro non molto), G단조

(A) Sotto dura Staggion dal Sole accesa
Langue l’huom, langue ‘l gregge, ed arde il Pino;
(B) Scioglie il Cucco la Voce, e tosto intesa
(C) Canta la Tortorella e ‘l gardelino.
(D) Zeffiro dolce Spira, mà contesa
Muove Borea improviso al Suo vicino;
(E) E piange il Pastorel, perche sospesa
Teme fiera borasca, e ‘l suo destino;

  해가 달군 가혹한 계절, 사람도 양 떼도 늘어지고 소나무는 타는 듯합니다. 뻐꾸기가 목청을 틔우자 곧 산비둘기와 방울새가 따라 노래합니다.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지만 북풍이 갑자기 그 곁으로 밀고 들어와 다툽니다. 목동은 웁니다. 사나운 폭풍이 닥칠까, 제 앞날이 어찌 될까 마음을 졸이기 때문입니다.

2악장 아다지오(Adagio)와 프레스토(Presto)

(F) Toglie alle membra lasse il Suo riposo
Il timore de’ Lampi, e tuoni fieri
E de mosche, e mossoni il Stuol furioso!

  번개와 사나운 천둥이 두려워 지친 몸은 쉬지 못하고, 파리와 큰 파리 떼가 성나게 몰려듭니다.

3악장 프레스토(Presto), G단조

(G) Ah che pur troppo i Suoi timor Son veri
Tuona e fulmina il Ciel e grandinoso
Tronca il capo alle Spiche e a’ grani alteri

  아, 그의 두려움은 너무나 옳았습니다. 하늘이 천둥 치고 번개 치며 우박을 쏟아, 꼿꼿이 선 이삭과 곡식의 목을 꺾어 버립니다.

비발디 사계 여름 2악장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현대 악보 첫 쪽
〈여름〉 2악장을 피아노용으로 옮긴 현대 편곡 악보(조셉 응우옌 편곡)다. 느린 대목의 반주 음형에 「MOSCHE E MOSCONI(파리와 큰 파리)」, 빠르고 센 대목에 「TUONI(천둥)」라고 적었다. 편곡자가 적어 넣은 말로, 1725년 초판 악보의 표기는 아니다.

2. 여름 1악장, 더위에 늘어진 소리와 새들

  1악장은 아주 여리게, 짧은 마디가 하나씩 멈춰 서듯 시작합니다. 한 마디를 셋으로 세는 느린 걸음(3/8박자) 위에서 가락이 자꾸 쉬어 가니, 더위에 숨이 차는 몸처럼 들립니다. 악보에 적힌 「더위로 인한 나른함(Languidezza per il caldo)」이 바로 이 소리입니다.

  뻐꾸기가 나오는 B에서 음악은 갑자기 박자를 바꾸고 빨라집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같은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다 음높이를 바꾸는 모양으로 뻐꾸기 울음을 흉내 냅니다. 이어 C에서 산비둘기와 방울새가 나오고, D에서는 합주가 여리게 산들바람을 불다가 갑자기 세고 거친 음형으로 바뀌며 북풍이 들이닥칩니다. 시의 마지막 두 줄에서 목동은 폭풍을 두려워하며 웁니다. 〈봄〉의 1악장이 새소리로 봄을 반겼다면, 〈여름〉의 1악장은 같은 새소리를 두고도 불안으로 끝납니다.

3. 여름 2악장, 파리 떼와 멀리서 오는 천둥

  2악장은 느린 대목과 빠른 대목이 번갈아 나옵니다. 느린 아다지오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지친 목동의 탄식 같은 가락을 부릅니다. 그 아래에서 바이올린들이 여리게 짧은 음형을 되풀이하는데, 이것을 흔히 목동을 귀찮게 하는 파리 떼의 소리로 듣습니다. 그러다 몇 마디마다 합주 현악기들이 빠르고 세게 같은 음을 두드리며 끼어듭니다. 악보에서 이 빠른 대목은 「프레스토(Presto)」로 바뀌고 「천둥(Tuoni)」이라는 표기가 붙어 있습니다. 소네트는 이것을 「사나운 천둥(tuoni fieri)」이라고 표현합니다. 끼어드는 이 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천둥입니다. 쉬려고 하면 파리가 성가시게 굴고, 잠들려 하면 천둥이 울리는 것입니다.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악장이지만, 천둥이 끼어들 때마다 다음 악장의 폭풍이 다가오는 것이 들립니다.

4. 여름 3악장, 우박을 몰고 온 폭풍

  3악장의 비올라 악보에는 「여름의 거센 날씨(Tempo impetuoso d’Estate)」라고 적혀 있습니다. 2악장에서 멀리 있던 천둥이 이제 머리 위에 있습니다. 현악기들이 같은 음을 쉴 새 없이 빠르게 두드리고, 그 위로 독주 바이올린이 빠른 음계와 분산화음(화음을 한 음씩 흩어 연주하는 것)을 위아래로 쏟아냅니다. 독주와 합주가 번갈아 몰아치며 쉬는 자리가 거의 없습니다. 시는 우박이 곡식의 목을 꺾는다고 적었고, 음악은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음형을 거듭 들려줍니다. 1악장에서 목동이 두려워하던 것이 이 악장에서 그대로 일어나는 셈입니다.

5. 사계 여름 추천 음반, 카르미뇰라와 케네디

  〈여름〉 3악장은 연주마다 빠르기와 소리의 거칠기가 크게 달라 비교해 듣기 좋은 악장입니다. 바로크 시대 방식으로 연주한 음반과, 오늘날의 악기로 거칠게 몰아붙인 음반을 하나씩 골랐습니다.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소나토리 데 라 조이오사 마르카 (디복스, 1992년 녹음)

  바로크 시대 방식의 악기와 활로 연주한 음반입니다. 1악장의 뻐꾸기·산비둘기·방울새가 저마다 다른 소리로 구별되고, 3악장의 폭풍은 빠르지만 반복음의 박이 흐트러지지 않아 합주와 독주가 무엇을 주고받는지 잘 들립니다.

1악장

2악장

3악장

나이절 케네디,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EMI, 1989년 발매)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절 케네디(Nigel Kennedy)가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직접 이끌며 독주한 음반으로, 1986년과 1989년에 런던에서 녹음해 1989년에 나왔습니다. 발매 뒤 크게 팔려 클래식을 잘 듣지 않던 사람들에게까지 〈사계〉를 알린 음반으로 꼽힙니다. 3악장에서 활을 현에 세게 눌러 긁듯이 소리를 내고 박을 앞으로 밀어붙여, 카르미뇰라의 폭풍보다 훨씬 거칠고 즉흥적으로 들립니다.

  케네디 영상은 〈사계〉 전곡이며, 〈여름〉은 〈봄〉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옵니다. 두 연주를 비교할 때는 3악장만 연달아 들어 보십시오. 같은 악보의 폭풍이 한쪽에서는 짜임새로, 다른 쪽에서는 기세로 들립니다.

6. 사계 네 계절 함께 듣기

계절 작품 번호·조성 소네트의 장면
봄 RV 269 · E장조 새소리·샘물·천둥 · 잠든 염소지기와 개 · 백파이프 춤
여름(지금 글) RV 315 · G단조 더위와 새들·바람 · 파리 떼와 천둥 · 우박 폭풍
가을 RV 293 · F장조 수확 춤과 술꾼 · 잠든 술꾼들 · 새벽 사냥
겨울 RV 297 · F단조 떨림과 칼바람 · 난롯가와 바깥의 비 · 얼음길과 바람의 싸움

  다음에 〈여름〉을 들을 때는 2악장에서 천둥이 몇 번 끼어드는지 세어 보십시오. 그 천둥이 3악장에서 쉬지 않고 울리는 반복음이 되어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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