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Schafe können sicher weiden)〉는 클래식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 본 잔잔한 노래입니다. 우리말 제목 때문에 이 곡을 들으면 따스한 햇볕 아래 느긋하게 쉬는 양 떼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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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 떼 사진이다. |
그런데 독일어 원래 제목에는 「한가로이」에 해당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낱말은 sicher이고, 이 말은 「안전하게」에 가깝습니다. 이 노래는 쉬는 양을 그린 풍경화라기보다 누군가 지켜 주기 때문에 마음 놓고 풀을 뜯는 양의 노래입니다. 이 글은 그 한 낱말에서 출발해 가사와 소리를 차례로 따라가 봅니다.
| 작곡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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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 | 세속 칸타타 〈나의 즐거움은 오직 힘찬 사냥뿐(Was mir behagt, ist nur die muntre Jagd)〉 BWV 208, 제9곡 아리아 |
| 가사 | 살로모 프랑크(Salomo Franck) |
| 첫 연주 | 1713년 2월 27일, 바이센펠스 |
| 편성 | 소프라노(팔레스 역), 리코더 두 대, 통주저음 |
원어 sicher의 뜻
제목의 원문은 「Schafe können sicher weiden」입니다. 낱말 그대로 옮기면 「양들은 안전하게 풀을 뜯을 수 있다」가 됩니다. Schafe는 양들, können은 ~할 수 있다, weiden은 풀을 뜯다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가운데 낱말 sicher입니다. 독일어 사전은 이 말의 첫째 뜻을 「위험에 위협받지 않는」으로 풀고, 그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틀림없는」 같은 뜻을 듭니다. 「느긋한」이나 「한가로운」은 이 뜻 목록에 없습니다. 말의 뿌리를 따라가면 라틴어 securus에 닿는데, 이 말은 「없이」를 뜻하는 se와 「걱정」을 뜻하는 cura가 합쳐진 것입니다. 영어 secure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이 제목에서 양이 누리는 것은 할 일이 없는 한가함이 아니라 걱정할 위험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말 제목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는 원문을 낱말 그대로 옮긴 말은 아닙니다. 이 차이를 알고 들으면 노래 속 고요함이 어디서 오는지가 달리 보입니다. 그 답은 가사의 다음 줄에 있습니다.
사냥 칸타타 BWV 208과 팔레스
이 아리아는 교회에서 부르려고 만든 노래가 아닙니다. 바흐가 바이마르 궁정에서 일하던 시절, 이웃 작센-바이센펠스의 크리스티안 공작 생일을 축하하려고 쓴 세속 칸타타 BWV 208의 한 곡입니다. 칸타타는 여러 곡의 노래와 합창을 이어 붙인 성악곡이고, 제목부터 사냥 이야기라 이 작품을 흔히 사냥 칸타타라고 부릅니다.
첫 연주는 1713년 2월 27일 바이센펠스에서 열렸는데, 공작의 생일보다 늦게 치른 축하였습니다. 연주된 자리는 가사를 쓴 바이마르 궁정 시인 살로모 프랑크가 1716년에 펴낸 시집에 적어 두었습니다. 「nach gehaltener Kampf-Jagd im fürstl. Jäger-Hofe bey einer Tafel-Music」, 곧 사냥을 마친 뒤 궁정 사냥관에서 열린 식탁 음악이라는 설명입니다. 식탁 음악은 식사하는 자리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칸타타에는 사냥의 여신 디아나를 비롯한 신화 속 인물들이 나와 차례로 노래합니다. 제9곡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를 부르는 이는 로마 신화의 목축 신 팔레스(Pales)이고, 이 역은 둘째 소프라노가 맡습니다. 사냥을 축하하는 노래들 사이에서 가축을 돌보는 신이 나와 양 떼 이야기를 꺼내는 셈입니다.
바흐 자료를 정리하는 바흐 디지털(Bach Digital)의 기록에 따르면 이 칸타타는 1713년에서 1716년 사이 바이마르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 생일에도 다시 연주됐고, 바흐가 총보(모든 악기와 성부를 한데 적은 악보)에서 크리스티안이라는 이름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로 손수 고쳐 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가사의 두 부분과 다 카포
이 아리아의 가사는 짧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A)은 이렇습니다.
「Schafe können sicher weiden, wo ein guter Hirte wacht.」
양들은 안전하게 풀을 뜯을 수 있다, 좋은 목자가 지켜 보는 곳에서는.
양이 안전한 까닭이 바로 붙어 있습니다. 목자가 깨어 지키기 때문입니다. 제목만 떼어 들으면 사라지는 이 반쪽이 sicher의 뜻을 정해 줍니다. 이어지는 뒷부분(B)은 양과 목자에서 사람과 나라로 무대를 옮깁니다.
「Wo Regenten wohl regieren, kann man Ruh und Frieden spüren und was Länder glücklich macht.」
다스리는 이가 잘 다스리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안식과 평화를, 그리고 나라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사는 앞에서 목자를, 뒤에서 다스리는 이를 나란히 놓습니다. 둘을 같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같은 「~하는 곳에서는」이라는 틀로 두 장면을 겹쳐 놓았습니다.
1881년 바흐 전집을 옮긴 악보로 보면 이 아리아는 A를 부르고 B로 넘어간 뒤, 끝에 적힌 다 카포(Da Capo,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표시)에 따라 A를 한 번 더 부르는 A-B-A 모양입니다. 그래서 노래는 나라와 통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목자가 지키는 양 떼로 돌아와 마무리됩니다.
귀로 들을 세 가지
이 곡의 소리는 세 겹으로 나눠 들으면 쉽게 잡힙니다. 위에서 나란히 노는 리코더 두 대, 아래에서 고르게 걷는 저음, 그 사이에 들어오는 소프라노입니다.
나란히 움직이는 리코더 두 대
곡은 노래 없이 리코더 두 대가 먼저 주제를 들려주며 시작합니다. 1881년 바흐 전집을 옮긴 악보로 보면 박자표는 4/4이고, 두 리코더는 대부분 3도·6도 간격으로 나란히 움직입니다. 3도는 도와 미, 6도는 도와 라처럼 함께 울릴 때 잘 어울리는 간격입니다. 두 악기가 같은 리듬으로 짝을 맞춰 걷기 때문에, 들으면 한 줄기 선율이 두 겹으로 포개진 것처럼 부드럽고 둥글게 들립니다. 리코더 특유의 숨 섞인 소리가 이 노래의 들판 분위기를 만드는 첫째 재료입니다.
고르게 걷는 통주저음
통주저음(通奏低音)은 바로크 음악에서 첼로나 건반 악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깔아 주는 낮은 반주를 말합니다. 1881년 바흐 전집을 옮긴 악보에서 이 저음은 고른 8분음표로 이어지고, 같은 음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듣기에는 한자리에서 똑, 똑, 똑 일정하게 짚어 주는 발걸음 같습니다. 위의 리코더와 노래가 아무리 흘러가도 아래에서 박자를 흔들림 없이 받쳐 주는 이 소리가 곡 전체의 차분함을 붙들고 있습니다.
소프라노와 B부 끝의 잔 음표
소프라노는 리코더의 첫 주제가 끝난 뒤에 들어옵니다. 1881년 바흐 전집을 옮긴 악보로 보면 노래는 대부분 이웃한 음으로 오르내리고, 트릴(두 음을 빠르게 번갈아 떠는 꾸밈) 표시가 몇 곳 있습니다. 같은 악보에서 B부 마지막 구절 「und was Länder glücklich macht」(나라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는 짧은 음표가 촘촘히 이어지는 장식이 붙어 있어, 담담하던 노래가 이 대목에서 잠깐 몸을 풉니다. 「행복하게」라는 말 위에서 선율이 가장 바빠지는 셈이니, 두 번째 들을 때 귀를 기울여 볼 자리입니다.
이 아리아의 다른 생애
사냥 칸타타의 몇 곡은 바흐가 나중에 다른 칸타타로 옮겨 썼습니다. 제7곡과 제13곡은 칸타타 BWV 68로, 마지막 제15곡은 칸타타 BWV 149의 첫 합창으로 들어갔습니다. 반면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는 바흐가 다른 곡으로 옮겨 쓴 곡에 들지 않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이 노래는 뒷사람들이 다른 악기로도 여러 번 옮겼습니다. 피아노로 옮긴 사람으로는 에곤 페트리(Egon Petri)와 메리 하우(Mary Howe)가 알려져 있습니다.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감상 영상
첫 번째는 토론토 바흐 페스티벌의 공연 영상입니다. 노래와 반주가 어떻게 주고받는지 눈과 귀로 함께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피아니스트 형제 루카스 유선과 아르튀르 유선의 연주 영상으로, 도이치 그라모폰(DG) 채널에 올라 있습니다. 피아노 소리로 들으면서 리코더의 나란한 두 줄이 건반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비교해 보셔도 좋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는 종교곡인가요?
아닙니다. 1713년 작센-바이센펠스의 크리스티안 공작 생일을 축하하려고 쓴 세속 칸타타 BWV 208의 제9곡입니다. 목자와 양이 나와 성가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노래하는 인물은 로마 신화의 목축 신 팔레스이고 가사는 잘 다스려지는 나라의 평화를 노래합니다.
Q. 반주 악기는 리코더인가요, 플루트인가요?
리코더입니다. 바흐 디지털의 기록에는 이 칸타타의 악기가 「Flauto dolce」 두 대로 올라 있는데, 이것은 리코더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피아노 편곡처럼 다른 악기로 옮긴 연주도 있습니다.
Q. 제목의 sicher는 무슨 뜻인가요?
「위험에 위협받지 않는」, 곧 「안전한」이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securus(걱정 없는)에서 온 말이고, 「한가로운」이라는 뜻은 없습니다. 원문 「Schafe können sicher weiden」은 「양들은 안전하게 풀을 뜯을 수 있다」로 옮길 수 있습니다.
다시 들을 때
다음에 이 곡을 트실 때는 제목 뒤에 숨은 반쪽, 「좋은 목자가 지켜 보는 곳에서는」을 함께 떠올려 보십시오. 그러면 위에서 짝을 맞춰 걷는 두 리코더와 아래에서 같은 음을 고르게 짚는 저음이 다르게 들립니다. 둘 다 서두르지도 흐트러지지도 않습니다. 양이 마음 놓고 풀을 뜯는 들판의 고요는, 그렇게 누군가 곁을 지키고 있다는 소리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가 B부 끝 「glücklich macht」에서 잠깐 바빠졌다가 다시 처음의 양 떼로 돌아오는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다스림과 행복 이야기를 지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지켜지는 양들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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