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파블로 데 사라사테 (Pablo de Sarasate, 1844~1908)
• 작품: 《치고이너바이젠(Zigeunerweisen)》 작품 20
• 편성: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 바이올린과 피아노(작곡가 자신의 편곡) 두 판본
• 작곡·출판: 1877년 자필본 완성, 1878년 라이프치히 센프 출판사에 매각
• 연주 시간: 약 8~10분, 단악장(네 부분)
• 이 곡은 정말 집시 민요를 옮긴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출처가 있을까요.
• 사라사테가 직접 연주한 1904년 녹음에서는 왜 한 선율이 빠져 있을까요.
애절하면서도 화려한 바이올린 곡을 꼽으라면 많은 분이 파블로 데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Zigeunerweisen)》을 떠올립니다. 제목은 몰라도 선율을 들으면 곧바로 알아차리는, 익숙한 곡입니다. 그런데 이 곡에는 흔히 알려진 것과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제3부의 서정적인 선율은 집시 민요가 아니라 당시 헝가리에서 유행하던 노래였고, 사라사테 자신이 남긴 1904년 녹음에서는 바로 그 선율이 빠져 있습니다.
치고이너바이젠이라는 이름
'치고이너(Zigeuner)'는 집시를, '바이젠(Weisen)'은 선율을 뜻합니다. 제목 그대로 '집시의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합니다. 흔히 '집시 음악'이라 불리는 것은 인도 북서부에서 이동해 온 로마(Romani)의 음악 전통과, 19세기 헝가리에서 형성된 이른바 헝가리계 집시 양식이 뒤섞여 통용되는 개념입니다. 사라사테의 이 곡은 그 통념적인 헝가리풍 양식 위에 서 있으며, 실제 로마 음악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파블로 데 사라사테라는 연주자
이토록 어려운 기교와 감성을 요구하는 곡을 쓴 파블로 데 사라사테(1844~1908)는 스페인 팜플로나 출신입니다. 여덟 살 무렵 공개 연주를 시작했고 파리 음악원에서 장 델팽 알라르에게 배운 뒤, 유럽과 아메리카를 오가며 연주자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여러 작곡가가 그에게 작품을 헌정했고, 사라사테 자신도 바이올린의 노래하는 음색과 기교를 함께 드러내는 곡들을 썼습니다. 《치고이너바이젠》은 그 특성이 압축된 대표작입니다.
![]() |
| 사라사테의 모습 |
자필본과 800마르크, 작품의 탄생
《치고이너바이젠》은 오늘날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판본, 그리고 작곡가 자신이 편곡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판본 두 가지로 전해집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판 자필본은 1877년 8월 독일 본(Bonn)에서 완성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듬해인 1878년 1월 31일, 사라사테는 이 작품을 라이프치히의 출판업자 바르톨프 센프에게 800마르크를 받고 팔았습니다. 작곡가가 자신의 대표작을 얼마에 넘겼는지 구체적으로 남은 드문 기록입니다.
네 부분으로 읽는 흐름
《치고이너바이젠》은 약 8분에서 10분가량의 단악장 곡이지만,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며 변화무쌍하게 전개됩니다. 제1부 모데라토(Moderato)는 오케스트라의 서주에 이어 바이올린이 독백하듯 극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2부 렌토(Lento)는 분위기가 급변하며 애절한 선율이 이어집니다. 제3부 운 포코 피우 렌토(Un poco più lento)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전체 흐름은 느린 '라수'에서 빠른 '프리슈'로 향하는 차르다시(Csárdás)의 관습을 떠올리게 하며, 제4부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Allegro molto vivace)는 그 빠른 프리슈에 해당합니다. 이 마지막 부분에서 스피카토와 더블 스톱, 왼손 피치카토 같은 기교가 집중됩니다.
제3부, 센티르마이의 헝가리 선율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제3부입니다. 서정적인 그 선율은 사라사테가 지어낸 것도, 집시 민요를 옮긴 것도 아닙니다. 헨레 원전판 서문 기준으로 악보 마디 49부터 64에 나오는 이 선율은, 헝가리 작곡가 센티르마이 엘레메르의 노래 〈Csak egy szép lány van a világon〉(세상에는 오직 한 명의 아름다운 소녀가 있을 뿐)에서 왔습니다. 사라사테는 이 선율을 연주자들에게서 듣고 널리 퍼진 대중적인 선율로 알았던 것으로 보이며, 처음에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사용했습니다.
이 사실은 뒤늦게 정리되었습니다. 1883년 12월 10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라사테의 반주자였던 오토 골드슈미트가 센티르마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신 썼습니다. 편지는 사라사테가 그 선율을 연주자들에게서 듣고 대중적인 곡으로 알고 사용했으며, 앞으로 작곡가의 이름을 표기하겠다는 뜻을 전합니다. 헨레 서문은 실제로 후대 인쇄본의 마디 49에 이 선율이 센티르마이의 것임을 밝히는 주석이 추가되었다고 확인합니다. 이 대목은 몰래 가져온 선율이라기보다, 출처가 뒤늦게 밝혀지고 표기된 헝가리 선율이라고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1904년 녹음에서 사라진 제3부
더 흥미로운 것은 사라사테가 직접 남긴 녹음입니다. 1904년에 녹음된 그의 자작자연 음반(Disque Pour Gramophone, G.C.37930, 매트릭스 4263º)에서는 바로 이 센티르마이의 선율이 들어 있는 구간이 빠져 있습니다. 헨레 서문에 따르면 악보 기준으로 마디 45부터 56, 그리고 61부터 69가 녹음에 없고, 마디 57부터 60은 피아노만 남습니다. 악보와 이 녹음을 나란히 대조하며 들으면, 제3부의 서정 선율이 사라지고 곡이 곧장 제4부 차르다시로 압축되어 넘어가는 흐름을 실제 소리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라사테가 왜 이 구간을 뺐는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문제를 의식한 선택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초기 음반의 짧은 수록 시간 제약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녹음에는 반주자와 짧게 상의한 흔적까지 들리지만, 어느 쪽이 이유였는지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사실과 해석을 나누어, 선율이 빠졌다는 기록은 분명히 하되 그 이유는 열어 두는 것이 정직한 읽기입니다.
명연으로 듣기
한 번의 감상이 긴 설명보다 큰 울림을 줍니다. 서로 다른 두 연주를 비교해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는 빠른 템포와 정밀한 기교로 이 곡의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 줍니다. 이 완전판 녹음과 앞서 들은 1904년 사라사테 자신의 녹음을 견주면, 제3부가 있고 없음의 차이가 분명하게 들립니다.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연주는 따뜻한 음색과 깊은 감성으로 같은 곡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같은 악보가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며 들으면 좋습니다.
《치고이너바이젠》은 한 민족의 음악에 대한 통념과 실제 출처, 그리고 작곡가 자신이 남긴 녹음의 공백까지 함께 품은 작품입니다. 화려한 기교 뒤에 놓인 이 사실들을 알고 들으면, 익숙하던 선율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