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과 러시아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오랜 세월 고통을 받은 핀란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아래 지도 참조). 러시아에 저항하는 핀란드의 저항운동의 대표적인 곡으로 알려진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감상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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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시벨리우스의 생애와 음악(작품) 자세히 알아보기
핀란디아(Finlandia)
시벨리우스 핀란디아가 국가의 상징이 되기까지
하나의 음악이 어떻게 한 국가의 운명과 동의어가 될 수 있을까요? 유럽 최북단에 위치한 핀란드는 서쪽으로 스웨덴, 동쪽으로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오랜 세월 고난을 겪었습니다. 장 시벨리우스(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 1865~1957)의 교향시 〈핀란디아〉는 바로 그 저항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핀란드의 영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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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의 지정학적 위치 |
언론의 날 무대에서 태어난 곡
1. 탄생 배경: 억압 속에서 피어난 저항의 외침
〈핀란디아〉는 1899년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열린 「언론의 날」 행사를 위한 음악에서 출발했습니다. 11월 4일 헬싱키 스웨덴 극장의 갈라 공연이 그 자리였습니다. 핀란드 국립극장 감독 카를로 베리봄이 연출하고 시인 에이노 레이노와 얄마리 핀네가 대사를 썼으며, 무대에는 서곡과 여섯 개의 활인화가 올랐습니다. 활인화는 배우들이 무대에서 그림처럼 정지한 자세로 한 장면을 보여 주는 형식입니다. 연극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림에 가깝습니다.
그날 지휘봉을 잡은 사람은 시벨리우스 본인이었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활인화의 제목이 「핀란드가 깨어난다(Suomi herää)」였고, 그 음악이 훗날 〈핀란디아〉가 됩니다. 표면상 목적은 언론인 연금 기금 모금이었지만 실제로는 총독 보브리코프의 언론 탄압에 대한 시위였습니다. 당시 신문 「페이벨레흐티」는 석 달째 정간 중이었습니다.
2. 「초기 버전」과 이름의 여정
1899년 무대판으로 큰 반향을 얻은 뒤, 시벨리우스는 1900년에 관현악을 다듬어 독립 악곡으로 정리합니다. 개정판이 알려진 가장 이른 공개 연주는 1900년 7월 1일과 2일 헬싱키에서 열린 고별 연주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곡의 이름은 〈핀란디아〉가 아니었습니다. 〈수오미(Suomi)〉였습니다.
지금의 제목이 붙은 것은 그해 11월입니다. 1900년 11월에 나온 피아노 편곡판에 〈Finlandia〉라는 이름이 처음 붙었고, 그 이름을 제안한 사람은 악셀 카르펠란 남작이었습니다. 관현악판을 그 이름으로 지휘한 것은 1901년 2월 로베르트 카야누스입니다. 그전까지 이 곡은 〈수오미〉·〈수오멘 헤레미넨(핀란드의 각성)〉·〈피날레〉로, 유럽 순회에서는 〈파터란트〉·〈라 파트리(조국)〉로 불렸습니다.
같은 해 여름 카야누스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유럽 순회에 나섰고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7월 30일과 8월 3일 두 차례 연주했습니다. 이때도 제목은 〈라 파트리〉였습니다. 시벨리우스는 부지휘자로 동행했을 뿐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습니다.
3. 「검열을 피해 제목을 바꿨다」는 이야기
이 곡을 소개하는 글에는 거의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러시아 당국이 연주를 금지해서 〈즉흥곡〉 같은 엉뚱한 제목을 달아 검열을 피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료를 따라가 보면 그림이 조금 다릅니다.
먼저 〈즉흥곡〉이라는 제목은 실재합니다. 시벨리우스 본인이 뒷날 회고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만 그 일은 1904년 여름 레발과 리가에서 있었던 일이고, 1899년 초연 무렵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널리 인용되는 또 다른 가명들은 출처를 찾을 수 없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당시 핀란드 신문입니다. 1901년 11월 헬싱키의 한 신문에는 「장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관현악 교향시. 총보 15마르크」라는 악보 판매 광고가 실렸습니다. 1903년과 1904년에는 헬싱키·투르쿠·탐페레·코트카의 신문들이 〈핀란디아〉라는 이름 그대로 연주회를 보도했습니다. 1904년 1월에는 시벨리우스 본인이 헬싱키에서 이 곡을 앙코르로 지휘했고, 네 신문이 그 사실을 그 이름으로 전했습니다. 압제기 한복판에 총보가 공개 판매되고 있었고 작곡가가 직접 지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대목은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편이 정확합니다. 시벨리우스 자신은 금지됐다고 회고했고 핀란드 학계에도 그 서술을 그대로 받는 쪽이 있습니다. 반면 당시 신문 지면은 다른 그림을 보여 줍니다. 어느 쪽이든 이 곡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작품이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4. 기관차 이야기
서두의 무거운 금관이 기관차 소리를 흉내 낸 것이라는 속설도 돕니다. 1899년 그 무대에 실제로 기관차가 등장했다는 서술이 있어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다만 그 자리에 있었던 헤이키 클레메티의 증언이 이 해석을 반박합니다.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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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시벨리우스의 모습 |
핀란디아의 흐름, 어둠에서 찬가로
작품은 느린 서주~투쟁적 전개~장엄한 찬가~승리의 코다로 압축 전개됩니다. 다만 시벨리우스는 구체적 사건을 묘사하기보다 「핀란드의 각성과 투지」라는 정서를 표상하도록 구성했습니다. 금관의 무게감, 목관의 응답, 현의 서정, 그리고 후반의 Finlandia Hymn이 이 큰 흐름을 이끕니다.
1. 서주 (Andante sostenuto)
금관의 위협적 동기와 목관·현의 응답이 대립·화해를 예고합니다.
2. 전개 (Allegro moderato)
에너지와 결연함이 분출하며, 리듬과 동기의 응집이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3. 찬가 에피소드 (Finlandia Hymn)
민요처럼 들리지만 전적으로 시벨리우스의 창작 선율로, 목관에서 현으로, 다시 금관으로 번지며 넓어집니다. 시벨리우스는 1911년 일기에 이 곡이 「오로지 위에서 주어진 주제들로만 지어졌다. 순전한 영감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어디서 빌려 온 가락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4. 피날레
찬가 선율 위로 금관 팡파르가 겹치며 환희의 종결로 치닫습니다.
비공식 국가가 되기까지
1. 비공식 국가라는 자리와 그 자리가 생긴 시점
이 작품은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핀란드 민족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다만 「사실상의 국가」라는 위상은 조금 뒤에 자란 것입니다. 핀란드의 공식 국가는 1848년에 나온 「우리 땅(Maamme)」이고, 핀란디아의 찬가 선율에 핀란드어 가사가 붙은 것은 훨씬 나중이기 때문입니다.
가사가 붙은 경위는 두 단계입니다. 1937년에 테너 뵈이뇌 솔라가 자기가 쓴 가사를 보냈고, 시벨리우스가 남성합창 편곡을 만들어 1938년 4월 21일 헬싱키의 한 프리메이슨 로지에서 초연했습니다. 이 판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 〈프리메이슨 의식음악〉 작품 113의 열두 번째 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까지 불리는 가사는 그다음입니다. 1940년에 남성합창단 라울루미에헤트가 시인 베이코 코스켄니에미에게 가사를 의뢰했고, 그해 12월 7일 헬싱키 메수할리에서 열린 창단 25주년 연주회에서 초연됐습니다. 바로 다음 날이 시벨리우스의 일흔다섯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혼성합창판은 1948년에 나왔습니다.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코스켄니에미의 시가 처음에는 선율에 맞지 않아 고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시벨리우스가 그 개고에 관여해 승인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초연 다음 날 헬싱키의 두 주요 신문이 연주회 평에서 〈핀란디아〉를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위상을 생각하면 뜻밖입니다.
그리고 가사를 처음 붙인 사람은 핀란드 본국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핀란드 이민자들이 20세기 초부터 여러 가사를 제멋대로 붙여 불렀습니다. 시벨리우스가 남긴 유명한 불평도 그것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건 노래로 부르라고 만든 게 아닙니다. 관현악을 위해 쓴 것이지요. 하지만 세상이 노래하고 싶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1900년 전후에 이 곡이 민족의 상징이 된 것은 맞지만,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된 것은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뒤였습니다.
2. 가사의 결합과 대중화
조용하게 펼쳐지는 서정성이 풍부한 민요풍의 선율은 〈핀란디아 찬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핀란드여, 우리의 조국이여」로 시작하여 핀란드 국민의 뜨거운 애국심을 표현하는 가사는 시인 베이코 코스켄니에미(Veikko Antero Koskenniemi)가 쓴 것인데, 이로써 제2의 국가처럼 불리는 유명한 곡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곡은 「This is My Song」이나 「Be Still, My Soul」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습니다. 시벨리우스 본인도 1948년에 직접 혼성합창 편곡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3. 보편적인 메시지
〈핀란디아〉는 핀란드의 역사를 넘어, 억압에 맞서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보편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 작품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핀란디아 찬가 선율이 국경을 넘어간 길
1. 찬가의 놀라운 세계 일주: 「비아프라」의 국가가 되다?
〈핀란디아 찬가〉는 시벨리우스의 손을 떠나 스스로 생명력을 얻고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핀란드의 애국가를 넘어, 전혀 다른 의미로 재탄생한 사례들은 이 선율이 가진 보편적인 힘을 증명합니다.
· 전 세계 교회의 찬송가, 「Be Still, My Soul」
영어권 국가에서 〈핀란디아 찬가〉는 「내 영혼아 잠잠하여라(Be Still, My Soul)」라는 제목의 찬송가로 더 유명합니다. 18세기 독일의 작가 카타리나 폰 슈레겔(Katharina von Schlegel)이 쓴 시에 시벨리우스의 선율이 붙여져, 고난 속에서도 평온을 찾는 내용으로 전 세계 교회에서 널리 불리고 있습니다. 이로써 핀란드의 「저항」은 「영적인 위로」로 변주되었습니다.
· 아프리카 신생국의 국가(國歌), 「Land of the Rising Sun」
하지만 이 선율의 여정 중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부분은,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존재했던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 「비아프라 공화국」의 국가(國歌)로 채택되었던 역사입니다. 나이지리아 내전 당시 분리 독립을 선언했던 비아프라는 〈핀란디아 찬가〉에 「떠오르는 태양의 땅(Land of the Rising Sun)」이라는 새로운 가사를 붙여 자신들의 독립과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핀란드의 독립을 향한 열망이 담긴 선율이, 수십 년 후 다른 대륙의 또 다른 신생국에게 독립의 꿈을 불어넣는 영감이 된 것입니다.
2. 스크린에 등장한 핀란디아: 우리가 몰랐던 등장 장면
〈핀란디아〉의 극적인 힘은 영화감독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이 음악이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아시나요?
| 영화 〈다이하드 2〉의 한 장면 |
· 영화 〈다이하드 2 Die Hard 2, 1990〉
가장 널리 알려진 예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액션 영화 〈다이 하드 2〉입니다. 음악을 맡은 마이클 케이먼이 〈핀란디아〉를 인용한 곳으로 자료들이 지목하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과 엔드 크레디트입니다. 배경도 덧붙일 만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 레니 할린이 핀란드 출신이어서, 케이먼의 인용은 감독의 고향에 보내는 인사로 읽힙니다. 사운드트랙 음반에는 아예 7분 29초짜리 「Finlandia」 트랙이 실려 있습니다.
비교 감상하기!
✔️ 먼저 읽어보세요!
금관악기에 집중하며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곡에 흐르는 금관악기의 소리가 핀란드인들의 피맺힌 절규를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가지 동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동영상은 BBC Proms에서 연주된 동영상인데, 핀란드 출신 Sakari Oramo가 지휘하며 아주 웅장합니다.
두 번째 동영상은 영국 성공회 신부들로 구성된 The Priests가 핀란디아 찬가로 알려진 부분을 부르는 〈This is My Song〉이라는 곡입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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