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과 러시아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오랜 세월 고통을 받은 핀란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아래 지도 참조). 러시아에 저항하는 핀란드의 저항운동의 대표적인 곡으로 알려진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감상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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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시벨리우스의 생애와 음악(작품) 자세히 알아보기
핀란디아(Finlandia)
서문: 하나의 작품이 국가의 상징이 되기까지
하나의 음악이 어떻게 한 국가의 운명과 동의어가 될 수 있을까요? 유럽 최북단에 위치한 핀란드는 서쪽으로 스웨덴, 동쪽으로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오랜 세월 고난을 겪었습니다. 장 시벨리우스(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 1865–1957)의 교향시 <핀란디아>는 바로 그 저항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핀란드의 영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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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의 지정학적 위치 |
1부. 상징의 탄생: '핀란디아' 이야기
1. 탄생 배경: 억압 속에서 피어난 저항의 외침
<핀란디아>는 1899년 ‘언론의 날(Press Days)’ 역사 테이블로를 위한 음악에서 출발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서곡과 6개의 장면 음악을 썼고, 마지막 곡 “핀란드의 각성(Finland Awakens)”이 훗날 <핀란디아>의 모태가 됩니다. 표면상 목적은 ‘언론인 연금 기금’이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제국의 검열과 탄압에 맞선 문화적 저항이었습니다.
2. '초기 버전'과 이름의 여정
1899년 무대판으로 큰 반향을 얻은 뒤, 시벨리우스는 1900년에 관현악을 다듬어 독립 악곡으로 정리합니다. 개정판의 첫 공개 연주는 1900년 7월 2일 헬싱키(카야누스 지휘)였고, ‘Finlandia’라는 제목으로 카야누스가 지휘한 것은 1901년 2월입니다. 러시아의 검열을 피해 “Happy Feelings at the Awakening of Finnish Spring”, “Impromptu” 같은 위장 제목으로도 자주 연주되었습니다. ‘서두는 기관차 소리 모사’라는 속설이 있으나, 현장 목격자 증언을 근거로 사실이 아님이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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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시벨리우스의 모습 |
2부. 음악에 담긴 국가의 서사: '핀란디아' 분석
작품은 느린 서주–투쟁적 전개–장엄한 찬가–승리의 코다로 압축 전개됩니다. 다만 시벨리우스는 구체적 사건을 묘사하기보다 ‘핀란드의 각성과 투지’라는 정서를 표상하도록 구성했습니다. 금관의 무게감, 목관의 응답, 현의 서정, 그리고 후반의 Finlandia Hymn이 이 큰 흐름을 이끕니다.
1. 서주 (Andante sostenuto)
금관의 위협적 동기와 목관·현의 응답이 대립·화해를 예고합니다.
2. 전개 (Allegro moderato)
에너지와 결연함이 분출하며, 리듬과 동기의 응집이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3. 찬가 에피소드 (Finlandia Hymn)
민요처럼 들리지만 전적으로 시벨리우스의 창작 선율로, 목관 → 현 → 금관으로 확대되며 보편적 위로와 희망을 제시합니다.
4. 피날레
찬가 선율 위로 금관 팡파르가 겹치며 환희의 종결로 치닫습니다.
3부. 불멸의 유산: 콘서트홀에서 국민의 영혼으로
1. 즉각적인 상징화와 비공식 국가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핀란드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사실상의 국가(de facto national anthem)로 채택되었습니다.
2. 가사의 결합과 대중화
조용하게 펼쳐지는 서정성이 풍부한 민요풍의 선율은 <핀란디아 찬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핀란드여, 우리의 조국이여”로 시작하여 핀란드 국민의 뜨거운 애국심을 표현하는 가사는 시인 베이코 코스켄니에미(Veikko Antero Koskenniemi)가 쓴 것인데, 이로써 제2의 국가처럼 불리는 유명한 곡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곡은 ‘This is My Song’이나 ‘Be Still, My Soul’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습니다. 시벨리우스 본인도 1948년에 직접 혼성합창 편곡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3. 보편적인 메시지
<핀란디아>는 핀란드의 역사를 넘어, 억압에 맞서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보편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 작품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4부. 우리가 몰랐던 '핀란디아' 이야기
1. 찬가의 놀라운 세계 일주: '비아프라'의 국가가 되다?
<핀란디아 찬가>는 시벨리우스의 손을 떠나 스스로 생명력을 얻고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핀란드의 애국가를 넘어, 전혀 다른 의미로 재탄생한 사례들은 이 선율이 가진 보편적인 힘을 증명합니다.
- 전 세계 교회의 찬송가, 'Be Still, My Soul'
영어권 국가에서 <핀란디아 찬가>는 '내 영혼아 잠잠하여라(Be Still, My Soul)'라는 제목의 찬송가로 더 유명합니다. 18세기 독일의 작가 카타리나 폰 슈레겔(Katharina von Schlegel)이 쓴 시에 시벨리우스의 선율이 붙여져, 고난 속에서도 평온을 찾는 내용으로 전 세계 교회에서 널리 불리고 있습니다. 이로써 핀란드의 '저항'은 '영적인 위로'로 변주되었습니다.
- 아프리카 신생국의 국가(國歌), 'Land of the Rising Sun'
하지만 이 선율의 여정 중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부분은,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존재했던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 '비아프라 공화국'의 국가(國歌)로 채택되었던 역사입니다. 나이지리아 내전 당시 분리 독립을 선언했던 비아프라는 <핀란디아 찬가>에 "떠오르는 태양의 땅(Land of the Rising Sun)"이라는 새로운 가사를 붙여 자신들의 독립과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핀란드의 독립을 향한 열망이 담긴 선율이, 수십 년 후 다른 대륙의 또 다른 신생국에게 독립의 꿈을 불어넣는 영감이 된 것입니다.
2. 스크린에 등장한 핀란디아: 우리가 몰랐던 등장 장면
<핀란디아>의 극적인 힘은 영화감독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이 음악이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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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이하드 2>의 한 장면 |
- 영화 <다이하드 2 Die Hard 2, 1990>
가장 대표적인 예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액션 영화 <다이하드 2>입니다. 주인공 존 맥클레인이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테러리스트와 사투를 벌이는 클라이맥스 직전의 긴박한 장면에, <핀란디아>의 투쟁적인 알레그로 부분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됩니다. 핀란드의 저항 정신을 담은 음악이, 현대적인 액션 영화 속 주인공의 고독한 사투에 비장함과 장엄함을 더하는 BGM으로 완벽하게 활용된 것입니다.
비교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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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악기에 집중하며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곡에 흐르는 금관악기의 소리가 핀란드인들의 피맺힌 절규를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가지 동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동영상은 BBC Proms에서 연주된 동영상인데, 핀란드 출신 Sakari Oramo가 지휘하며 아주 웅장합니다.
두 번째 동영상은 영국 성공회 신부들로 구성된 The Priests가 핀란디아 찬가로 알려진 부분을 부르는 <This is My Song>이라는 곡입니다. 즐감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