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소재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브람스는 클래식을 대표하는 음악가라 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그가 저작권 소송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던 <헝가리 무곡 Ungarische Tänze, WoO 1>의 세계를 깊이 있게 탐험해 보고자 합니다.
이 유명한 멜로디 뒤에는 작곡과 편곡의 경계에 대한 브람스의 고뇌, 19세기 유럽을 휩쓴 음악적 유행, 그리고 최근에야 밝혀진 작곡가의 연주 해석에 대한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 먼저 읽어보세요!
[→ 요하네스 브람스의 생애와 작품 세계 자세히 알아보기]
헝가리 무곡 (Hungarian Dances)
무곡(舞曲)은 말 그대로 ‘춤곡’을 의미하지만,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실제 춤을 위한 '파티곡'이라기보다 헝가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집시들의 음악과 민요가 가진 독특한 정취와 열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연주회용 작품에 가깝습니다.
이 곡의 탄생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트 레메니(Eduard Remenyi, 1828-1898)입니다. 1853년, 브람스는 레메니의 피아노 반주자로 함께 연주 여행을 떠나면서 헝가리 집시 음악의 강렬하고 자유로운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여기서 레메니는 단순한 동반자를 넘어, 헝가리 음악의 레퍼토리와 즉흥적인 연주 스타일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전수자' 역할을 했습니다.
브람스가 36세가 되었을 때, 그는 총 21곡의 피아노 연탄곡으로 구성된 <헝가리 무곡>을 1869년(1~10번)과 1880년(11~21번)에 걸쳐 출판합니다. '연탄곡'이란 한 대의 피아노를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곡을 뜻합니다. 당시 유럽 중산층 가정에 피아노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기에,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화려하고 멋진 연탄곡집은 그야말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헝가리 무곡>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 덕분에 브람스는 더 이상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 |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작품 |
피아노 버전의 인기가 워낙 뜨겁자 관현악 편곡에 대한 요청도 쇄도했습니다. 하지만 브람스는 이 중 1번, 3번, 10번, 단 세 곡만을 직접 관현악으로 편곡했고, 우리가 오늘날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나머지 유명한 곡들은 그의 친구였던 드보르자크를 비롯한 다른 작곡가들이 편곡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곡의 성공 뒤에는 씁쓸한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옛 동료였던 레메니가 브람스가 자신의 음악적 선율과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브람스는 이미 출판 당시부터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는 이 작품에 관례적인 작품 번호(Opus)를 붙이지 않고, '작품 번호 없는 작품(Werk ohne Opuszahl)'을 의미하는 'WoO 1'로 표기했습니다. 이는 브람스 스스로 "나는 이 멜로디들의 창작자가 아니라, 기존의 선율을 예술적으로 다듬은 편곡자"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과 같습니다. 결국 이 표기 덕분에 소송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날 헝가리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5번 곡의 주제가 1858년 헝가리 작곡가 켈레르 벨러(Kéler Béla)가 작곡한 <바르트퍼의 추억>이라는 차르다시 선율과 거의 같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곡이 브람스의 창작이 아닌 편곡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음악적 스타일
'헝가리 무곡'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인 '이국주의(Exoticism)'를 대표하는 '헝가리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 음악적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극적인 대비 : 느리고 애수에 찬 '라싼(lassan)'과 빠르고 열정적인 '프리스(friss)' 부분이 급작스럽게 교차하며 변화무쌍한 감정의 파노라마를 펼쳐냅니다.
- 자유로운 리듬 : 템포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템포 루바토(Tempo rubato)'와 당김음(Syncopation)이 빈번하게 사용되어 즉흥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 바이올린의 영향 : 이 음악 스타일의 핵심은 '바이올린'입니다. 마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가 즉흥적으로 연주하듯 화려하고 기교적인 선율은 피아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린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환기시킵니다. 흥미로운 점은, 헝가리에서는 브람스가 사용한 이 '헝가리 스타일'이 헝가리 농촌의 전통 민속 음악이라기보다는, 당시 도시의 카페 등에서 로마(집시) 연주자들이 연주하던 양식화된 음악에 가깝다고 분석합니다. 즉, 브람스가 레메니와의 여행에서 접한 것은 바로 이 '도시풍 집시 음악'이었던 셈입니다.
클래식에서의 춤곡
클래식에서도 춤곡이 많습니다. 미뉴에트(minuet), 왈츠(Waltz), 폴카(Polka) 등 수많은 춤과 관련된 단어들이 있으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또한 춤을 모티프로 한 것입니다. 음악이 존재할 때부터 춤도 존재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클래식에서 춤곡은 14세기 이후 궁정을 중심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바로크 시대에는 나라마다 독특한 특징의 리듬과 빠르기를 가진 춤곡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감상하기!
가장 유명한 5번: 한 편의 춤 드라마
헝가리 무곡 중에서 제5번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 곡을 이렇게 감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와 춤을 추자고 제안을 하지만 여자가 거절합니다. 하지만 결국 여자가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즐겁게 춤을 추게 됩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Berliner Philharmoniker의 연주가 가장 유명하지만 화질이 가장 좋은 헝가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죠.
아는 사람만 들리는 헝가리 무곡 1번
![]() |
브람스의 자필 엽서 이미지 (출처 : G. Henle Verlag) |
그런데 5번만큼이나 유명한 1번 G단조에는 아주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2011년, 100년도 더 된 고서에서 브람스가 직접 쓴 엽서 한 장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 엽서에는 1번의 특정 부분(50-57마디)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브람스의 비밀스러운 지시가 담겨 있었습니다.
"Die rechte Hand hat gar kein ritardando, nur die linke!"
"오른손은 전혀 리타르단도를 하지 않고, 오직 왼손만!"
이는 오른손의 반주는 기계처럼 정확한 박자를 유지하는 동안, 왼손의 멜로디만 감정을 담아 자유롭게 느려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엄격함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이 짜릿한 긴장감이야말로 브람스가 의도한 진정한 '집시 스타일'이었던 것이죠.
이 비밀을 알고 아래 피아노 연탄곡 연주를 감상해 보세요. (영상 1분 20초경부터) 오른손과 왼손의 미묘한 '밀고 당기기'가 들리기 시작하며 곡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