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가 끝났는데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 〈농담〉 마지막 악장이 그렇습니다. 곡이 분명히 멈췄는데 객석은 서로 눈치를 봅니다. 이 글은 그 마지막 30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농담인지 설계인지를 따져 봅니다.
•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1732~1809)
• 작품번호·조성: 현악 사중주 Op.33 No.2, 내림마장조(Hob.III:38)
• 작곡: 1781년 여름부터 가을
• 헌정: 러시아의 파벨 대공
• 구성: 4악장(알레그로 모데라토, 스케르초, 라르고 소스테누토, 프레스토 론도)
마지막 30초에 무슨 일이 벌어지나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은 빠른 론도입니다. 같은 악구가 몇 번이고 돌아오는 형식이니, 듣는 사람은 그 악구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오고 힘차게 닫히리라고 예상하게 됩니다. 하이든은 그 예상을 하나씩 어깁니다.
먼저 달리던 음악이 갑자기 멈춥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속도의 느린 대목이 끼어듭니다. 빠른 악장 한복판에 느린 노래가 들어앉은 셈이라, 이 지점에서 이미 곡이 끝나려는 것인지 다른 데로 가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느린 대목이 끝나면 처음의 빠른 악구가 다시 돌아옵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입니다. 그런데 그 악구가 통째로 오지 않고 조각으로 끊깁니다. 한 조각이 지나가면 침묵이 오고, 또 한 조각이 지나가면 다시 침묵이 옵니다. 침묵이 점점 길어지므로 듣는 사람은 매번 이번이 끝인가 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마지막이 결정적입니다. 가장 긴 침묵이 지나간 뒤, 첫 악구의 앞부분만 조용히 한 번 놓이고 음악이 그대로 멈춥니다. 닫는 화음도 없고 세게 맺는 몸짓도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끝난 자리가 끝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따라 들어 보시면 이렇게 잡힙니다. 빠른 악장이 멈추는 자리, 느린 대목이 들어오는 자리, 그다음부터 침묵이 몇 번 오는지 세어 보는 것입니다. 세다 보면 어느 침묵에서 손이 올라갔다가 내려오는지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 곡의 농담은 악보 위가 아니라 바로 그 손에서 완성됩니다.
그 끝은 농담인가 설계인가
둘 중 하나를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 끝은 농담이 되도록 설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농담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듣는 사람에게 확고한 예상이 있어야 하고, 그 예상이 정확히 어긋나야 합니다. 론도는 그 예상을 만들어 주는 형식입니다. 같은 악구가 반복해서 돌아오니 청중의 머릿속에 다음에 올 것이 미리 그려집니다. 하이든은 곡의 앞부분 전체를 들여 그 그림을 그려 놓고, 마지막에 그 그림만 정확히 겨눕니다.
침묵을 쓰는 방식도 계산입니다. 음악에서 쉼은 보통 다음 것을 준비하는 자리인데, 여기서는 쉼 자체가 사건이 됩니다. 소리가 없는 동안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판단이 일어나고, 그 판단이 틀리는 것이 이 곡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에서 연주되는 것은 음이 아니라 청중의 기대입니다.
여기서 연주가 갈립니다. 마지막 침묵을 얼마나 길게 잡느냐가 연주자의 선택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짧게 지나가면 농담이 밋밋해지고, 지나치게 늘이면 장난이 티가 납니다. 같은 악보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자리라, 여러 연주를 이어 들어 보면 차이가 바로 잡힙니다.
완전히 새롭고 특별한 방식, 이 말은 어디에 적혔나
Op.33을 다루는 글에는 거의 반드시 하이든 자신의 말이 인용됩니다. 이 사중주들은 완전히 새롭고 특별한 방식으로 썼다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적힌 자리를 보면 읽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이 문구는 작품 해설도 아니고 후대의 평가도 아닙니다. 1781년에 하이든이 악보를 미리 사 줄 만한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들에 반복해서 나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예약 판매를 권하는 편지의 문장입니다. 작곡가가 자기 신작을 팔면서 새롭다고 적은 것이니, 그 자체를 새로움의 증거로 쓰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허풍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적어도 이 문구가 놓인 자리, 곧 악보를 사 달라고 권하는 편지에 관한 한 중립적인 증언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의 판단입니다. 작품이 실제로 달라졌는지는 문구가 아니라 악보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악보에서는 실제로 달라진 것이 보입니다. 이 세트에서 하이든은 미뉴에트가 놓이던 자리에 스케르초를 넣었습니다. 춤곡의 격식이 있던 자리에 농담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악장이 들어온 것입니다. 주제를 한 악기가 노래하고 나머지가 받쳐 주는 대신, 네 악기가 조각을 나눠 주고받는 방식도 이 세트에서 두드러집니다. 편지의 문장을 걷어 내고 보아도 남는 변화가 있는 셈입니다.
러시아 사중주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
Op.33 여섯 곡을 러시아 사중주라고 부르는 이유는 음악이 러시아풍이어서가 아닙니다. 헌정 대상이 러시아의 파벨 대공이었기 때문입니다.
초연에 관해서는 조금 조심해서 말해야 합니다. 1781년 성탄절에 대공의 부인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대공비의 빈 숙소에서 이 곡들이 연주됐다고 전하는데, 여섯 곡 가운데 다수가 그날 연주됐다는 것까지가 자료가 말하는 범위이고 전부였는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도 그 선을 넘지 않습니다.
이 정황이 곡을 이해하는 데 보태 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음악이 큰 연주회장이 아니라 개인의 방에서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방 하나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네 사람이 연주할 때, 마지막의 그 침묵은 훨씬 위험해집니다. 콘서트홀이라면 누군가 먼저 손뼉을 치겠지만, 열 명 남짓한 방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봅니다. 이 곡의 농담은 원래 그런 거리에서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농담이라는 별명은 누가 붙였나
널리 퍼진 이야기와 기록이 어긋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농담〉은 하이든이 악보에 적어 넣은 제목이 아니라 나중에 붙은 별명입니다.
세트 전체에 붙은 옛 별명이 있는데, 그것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여섯 곡 모두에서 미뉴에트 자리를 스케르초가 대신하고 있어서 그렇게 불렸습니다. 다시 말해 이 별명들은 곡을 들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지 작곡가가 내건 간판이 아닙니다. 누가 처음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에 관해서는 이 글이 확인한 범위 안에서 근거를 얻지 못했으므로 여기서 멈춥니다.
그러면 이 사실이 듣는 방식을 바꿀까요. 바꿉니다. 다만 곡이 아니라 우리 쪽이 바뀝니다.
제목을 알고 들으면 우리는 이미 웃을 준비를 하고 앉아 있습니다. 침묵이 올 때마다 아 이게 그 유명한 그거구나 하고 확인하게 되지요. 제목이 농담을 미리 알려 주기 때문에 정작 속을 기회는 사라집니다. 별명은 곡을 찾기 쉽게 만들어 주는 대신 그 곡이 원래 하려던 일을 조금 가져가 버린 셈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청취 방법이 있습니다. 곁에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제목을 말하지 말고 마지막 악장만 들려주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의 손을 보십시오. 어느 침묵에서 손이 올라가는지, 올라갔다가 어떻게 내려오는지가 이 곡이 이백 년 넘게 하고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손을 대신 보고 있는 사이에도 하이든이 짜 둔 마지막 침묵은 여전히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채에는 하이든을 다룬 글이 여러 편 있습니다. 이 곡을 듣고 나서 그 글들과 이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