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현악이 몇 초 달리기 시작하면 그 위로 자판이 다다다 두드리는 소리가 뛰어듭니다. 중간중간 땡 하고 종이 울리고, 곧바로 다음 줄로 넘어가는 소리가 따라붙습니다. 르로이 앤더슨(Leroy Anderson, 1908~1975)이 1950년에 완성한 〈타자기〉, 약 1분 45초짜리 관현악 소품입니다.
종종 「타자기 협주곡」이라 불리지만 협주곡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곡은 아닙니다. 타자기가 솔로를 맡은 모양새 때문에 그 별명이 굳었습니다. 그런데 저 소리, 진짜 타자기일까요.
저 소리는 진짜 타자기일까
진짜 타자기가 맞습니다. 다만 두 개의 키만 작동하도록 손을 본 타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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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수동 휴대용 타자기. 이 자판에서 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를 죽이는 것이 이 곡의 준비 과정이다. |
아무 키나 두 개를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엉키지 않는 두 개를 골라 남깁니다. 종이도 빳빳한 것을 씁니다. 그래야 소리가 더 잘 납니다. 그렇게 준비한 타자기를 소리를 증폭해서 타악 주자 한 사람이 칩니다.
그리고 그 땡 소리는 타자기의 벨이 아닙니다. 앤더슨은 1970년에 자기 집 작업실에서 이 곡의 소리를 직접 시연하면서 이유를 말했습니다. 타자기의 캐리지를 곡의 박에 맞춰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종이 울려야 할 자리에 정확히 오게 하려면 타자기에 맡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타자기의 벨은 울리지 않게 해 두고, 옆에 놓은 책상 벨을 두 번째 주자가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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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 무렵의 책상 벨. 우리가 타자기 소리로 듣는 그 땡은 이런 물건에서 나온다. |
이 곡을 직접 연주해 본 지휘자 레너드 슬래트킨은 오늘날 무대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운데 키를 전부 눌러 고정해서 바깥쪽 두 개만 살려 두고, 오른손으로 시작해야 앤더슨이 지정해 둔 자리에서 다음 줄로 넘기는 동작, 곧 캐리지 리턴을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타이피스트가 아니라 드러머가 치는가
속기사는 손가락이 그만큼 빨리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작곡가 본인의 말입니다.
앤더슨은 같은 시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드러머 두 사람을 씁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속기사를 쓴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못 합니다. 손가락을 그만큼 빨리 움직이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드러머를 씁니다. 손목을 쓸 수 있으니까요.
첫 녹음 자리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녹음실 건너편에 속기 학교가 있었고 타자를 배우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그중 몇을 점심시간에 녹음실로 불러 오디션을 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충분히 빠르게 치지 못했고, 결국 타악 주자가 뽑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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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미국의 타자 시연 사진. 손 빠른 타자수가 하나의 기예로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
이 곡은 연주회장이 아니라 그 녹음 세션에서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1953년 9월 8일 뉴욕, 앤더슨 자신의 지휘였습니다. 그 뒤로 타자기 앞에 앉은 사람 중에는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도 있습니다. 보스턴 팝스에서 이 곡의 솔로에 붙은 전통 복장, 곧 녹색 챙모자와 굵은 시가 차림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들으면 되는가
시작하자마자 타자기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관현악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위에 타자기가 얹힙니다. 처음 몇 초는 타자기가 언제 들어오는지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다음 들을 것은 타자 소리의 밀도입니다. 가운데에서 타자 소리가 눈에 띄게 성글어졌다가 다시 조밀해집니다. 그리고 성글어진 그 구간에서는 종소리가 잇따라 끼어듭니다. 손이 한가해진 자리에 종이 들어와 빈 곳을 채우는 셈입니다.
권리를 관리하는 유족 쪽에서는 이 곡의 재미를 오케스트라와 타이피스트의 주고받음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종이 예상된 리듬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놀라움이 생긴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니 종이 언제 울리는지를 세면서 들어 보시면 좋습니다. 규칙적으로 돌아오다가 어느 순간 자리를 옮기는 것이 이 곡이 웃음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음악이 이런 식으로 농담을 거는 다른 예가 궁금하시면 하이든 〈농담〉 현악 사중주도 같은 종류의 장치를 갖고 있습니다.
그 구간을 지나면 타자 소리가 다시 앞의 밀도로 돌아옵니다. 거기서부터는 끝까지 몰아칩니다.
|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타자기 앞에 앉은 사람의 손과, 그 옆에서 벨을 맡은 주자를 함께 보라. |
이 곡을 처음 받아 든 출판사 밀스 뮤직은 인쇄할 가치가 없다고 봤습니다. 호소력이 너무 적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데카 녹음이 나오자 악보를 찾는 수요가 곧바로 몰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소리는 라디오에서 쓰입니다. 주로 뉴스 방송의 시그널로 쓰이니, 곡 이름은 몰라도 이미 여러 번 들으셨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