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 작품번호·조성: D 328, 작품 1번, 사단조
• 작곡: 1815년, 열여덟 살
• 시: 괴테가 1782년에 쓴 발라드
• 형식: 통작곡(durchkomponiert). 절을 되풀이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써 나가는 방식
• 노래 시간: 4분 안팎
• 무대 공연: 1821년 3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요한 미하엘 포글 노래, 안젤름 휘텐브렌너 피아노
〈마왕〉은 4분이 채 안 되는 노래이고, 그 안에서 한 아이가 죽습니다. 밤길을 달리는 아버지의 품에서 아이는 누군가 자기를 부른다고 말합니다. 이 노래가 무서운 것은 두 목소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외침은 되풀이될 때마다 악보에서 자리를 올려 가고, 쫓아오는 쪽은 마지막 순간에야 한 번 돌변합니다.
이 곡은 D 328, 슈베르트의 작품 1번입니다. 열여덟 살이던 1815년에 썼고, 시는 괴테가 1782년에 쓴 발라드입니다. 친구 슈파운은 그날 오후를 회고하며 "가장 짧은 시간에" 발라드가 종이 위에 놓였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를 무섭게 하는 것들 가운데 몇 가지는 그날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이때 슈베르트는 아버지 학교에서 조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에 곡을 쓰던 시기입니다. 그해 앞뒤의 사정은 슈베르트의 생애와 작품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밤에 말을 달리는 아버지와 아이, 가사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시의 첫 줄은 질문입니다. 이 늦은 밤 바람 속을 달리는 이는 누구인가. 답은 곧바로 나옵니다. 아이를 데린 아버지이고, 그는 아이를 팔에 단단히 붙들어 따뜻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묻습니다. 왜 그렇게 겁먹은 얼굴을 감추느냐고요. 아이는 되묻습니다. 왕관을 쓰고 긴 자락을 끄는 마왕이 보이지 않느냐고요.
아버지의 대답은 안개 한 줄기라는 짧은 말입니다. 이런 대답이 이 시에서 세 번 나옵니다. 두 번째는 마른 잎에서 바람이 바스락거린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늙은 버드나무가 잿빛으로 보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사이에 마왕은 세 번 아이를 부르는데, 처음에는 함께 가서 고운 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물가에 알록달록한 꽃이 있고 자기 어머니에게 금빛 옷이 많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자기 딸들이 시중을 들고 밤의 춤으로 흔들어 재워 주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네 고운 모습이 나를 끈다면서, 순순히 오지 않으면 힘을 쓰겠다고 말합니다.
아이의 마지막 외침은 붙잡혔다는 말입니다. 마왕이 자기를 아프게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소름이 돋아 말을 몰아 겨우 집 마당에 닿습니다. 그의 팔 안에서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이 시는 원래 홀로 서 있던 작품이 아닙니다. 괴테가 1782년 자기 음악극 〈어부의 딸〉에 끼워 넣은 노래입니다. 극에서는 어부의 딸 도르트헨이 그물을 손질하며 혼자 나직이 부릅니다. 소재는 덴마크 민요 발라드에서 왔고, 무대에서는 일하는 여자가 저녁에 흥얼거리는 노래였던 셈입니다.
아이를 부르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름부터가 수수께끼입니다. 독일어 Erlkönig 를 글자 그대로 옮기면 오리나무 왕입니다. 그런데 오리나무는 이 시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는 것은 안개와 마른 잎과 늙은 버드나무뿐입니다.
내력을 보면, 이 이야기가 온 덴마크 쪽에서 그 존재는 요정 왕이었습니다. 헤르더가 독일어로 옮기면서 요정을 뜻하는 낱말을 오리나무로 읽었습니다. 그렇게 Erlkönig 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림 형제의 독일어 사전과 20세기 초의 한 백과사전은 이것을 오해에서 비롯한 번역이라고 적습니다.
다만 이것이 정말 번역 오류인지는 지금도 연구에서 갈립니다. 헤르더가 그 덴마크 낱말이 오리나무와 요정을 둘 다 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골랐으리라는 반론이 있습니다. 그 반론은 요정이라는 오랜 표상과, 오리나무가 자라고 춤추는 너울 같은 안개가 끼는 축축한 곳을 하나로 묶어 봅니다. 그렇게 보면 어느 쪽을 택하든 그 이름은 물가와 안개를 함께 데려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첫 대답이 공교롭습니다. 아이가 왕관 쓴 형체를 보았다고 하자 아버지는 안개 한 줄기라고 말합니다. 이름 논쟁이 근거로 드는 그 안개가 시 안에서는 아버지의 입으로 나오는 셈입니다. 시는 둘 중 누가 옳은지 끝내 말하지 않습니다.
영어권 자료 한 곳은 덴마크 원형에서 사람을 홀리는 쪽이 요정 왕의 딸이라고 적습니다. 괴테의 시에서 딸들은 유혹의 도구로 남고, 부르는 쪽은 왕입니다. 다만 이 대목은 자료 한 곳에서 확인한 것이라 그 범위로만 적어 둡니다.
무엇이 이 노래를 무섭게 만드나
그 상승은 괴테에게 보낸 자필보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아버지를 부르는 두 번째 외침이 첫 번째보다 높고, 세 번째가 두 번째보다 높습니다.
세 번째 외침은 오선 맨 윗줄과 그 위에 놓입니다. 아이는 매번 같은 말을 하는데 자리만 올라가는 것입니다. 소리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높아집니다.
마지막 외침에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독일의 슈베르트 가곡 전문 자료 하나가 그 자리를 짚습니다. 아버지라는 낱말과 붙잡는다는 낱말에 해당하는 자리에서 성악 성부에 9도가 울리고 곧 풀린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자료는 근거 문헌을 밝히지 않았으니, 악보에서 확인한 값이 아니라 그 자료가 짚은 자리로 둡니다.
그런데 짚인 자리가 공교롭습니다. 1815년 그 저녁, 악보를 들고 달려간 친구들 모임에서 몇몇이 여러 번 되풀이되는 불협화음을 문제 삼았습니다. 나이 든 오르간 주자 루지치카(Ruzicka)가 그 음을 피아노로 짚어 가며 그것이 가사에 어떻게 들어맞는지 설명했습니다. 이런 사적인 자리가 슈베르트에게 어떤 무대였는지는 슈베르티아데를 다룬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세 번째로 들어 볼 곳은 무서운 자리가 아닙니다. 마왕이 아이에게 처음 말을 거는 대목입니다. 그때까지 몰아붙이던 반주의 짜임이 바뀌고 음악이 장조로 돌아섭니다. 붙잡으려는 쪽이 가장 부드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이 곡의 공포는 그 어긋남에서 나옵니다. 위협하는 목소리는 위협처럼 들리지 않고, 겁에 질린 아이만 자리를 올려 갑니다. 아버지가 세 번 되풀이한 안심의 말도 세 번 다 빗나갑니다. 그 부드러움이 깨지는 것은 마지막 한 번뿐인데, 힘을 쓰겠다고 말하는 순간 음악이 아버지와 아이 쪽 단조로 넘어갑니다.
녹음은 두 가지를 권합니다. 제럴드 핀리와 줄리어스 드레이크의 2010년 녹음은 4분 22초입니다. 세라 워커와 그레이엄 존슨의 1989년 녹음은 4분 14초입니다. 어느 쪽으로 들으셔도 위의 세 자리는 가사만 따라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공포는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한 번 써 놓고 손을 뗀 것이 아닙니다. 1815년에 쓴 그 원고 자체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악보들을 견주어 본 비평판은 첫 악보와 뒤의 악보 사이의 차이를 열두 항목으로 열거합니다. 그 가운데 일곱은 첫 악보에 없던 지시가 나중에 붙은 경우입니다.
나중에 붙은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여리게 치라는 표시, 점점 세게, 악센트 같은 것들입니다. 적어도 남아 있는 세 악보 사이에서는 이 곡의 명암이 처음부터 다 있던 것이 아닙니다. 여리고 세게의 낙차는 슈베르트가 뒤에 손으로 세워 놓은 것입니다.
가장 뚜렷한 손질은 1821년 3월 7일 공연을 앞둔 리허설에서 붙었습니다.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포글이 이 곡을 부르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 리허설에서 포글은 숨 돌릴 자리를 달라고 했고, 슈베르트는 반주에 몇 마디를 끼워 넣었습니다.
그 마디를 새 종이에 적지 않은 것이 우리에게는 다행입니다. 슈베르트는 이미 있던 자필보 위에 붉은 초크로 적어 넣었고, 그 자국이 지금도 그 종이에 남아 있습니다. 자리는 아버지가 마른 잎에서 바람이 바스락거린다고 달랜 직후입니다. 마왕이 다시 말을 걸기 바로 전이라는 뜻입니다.
곡 한가운데에서 반주가 몇 마디 더 이어지는 자리가 그렇게 생겼습니다. 그 마디가 전부 인쇄된 판에 다시 나타난다고 비평판이 확인하고, 슈베르트는 그 뒤 그 판을 교정했습니다. 그때 첫머리에 메트로놈 지시를 적고 여린 셈여림을 두 군데 더 붙였습니다. 손질은 그 무대에서도 끝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쉬지 않는 반주를 두고 사람들이 무엇을 떠올렸는지는 일찍부터 이야깃거리였습니다. 1858년 빈의 한 음악 잡지에 실린 비평은 온 세상이 이 반주에서 말 달리는 아버지를 본다는 것을 못마땅해했습니다. 쓴 사람은 자기도 가곡을 짓던 작곡가였습니다. 그 익숙한 해석과 슈베르트가 곡을 팔던 사정은 슈베르트는 왜 가곡을 600곡이나 썼을까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서워하는 소리 가운데 몇 가지는 나중에 붙은 것입니다. 여리게 치라는 표시도, 곡 한가운데의 늘어난 마디도 그렇습니다. 이 노래를 어떻게 들을 것인지도 1858년에 이미 갈려 있었습니다. 오늘 이 곡을 틀어 보시면, 처음부터 있던 아이의 상승과 뒤에 붙은 여리고 세게의 낙차가 함께 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