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은 4분이 채 안 되는 노래이고, 그 안에서 한 아이가 죽습니다. 밤길을 달리는 아버지의 품에서 아이는 누군가 자기를 부른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세 번 달래고, 아이는 세 번 더 높이 아버지를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름에서 노래와 피아노가 서로 어긋난 음을 내는 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1815년 어느 저녁 이 곡을 처음 들은 자리에서 몇몇이 문제 삼은 것이 바로 그 소리였습니다.
•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 원어 제목: Erlkönig
• 작품번호: D 328, 작품 1번
• 작곡: 1815년, 열여덟 살
• 시: 괴테가 1782년에 쓴 발라드, 여덟 연
• 등장하는 인물: 이야기꾼, 아버지, 아이, 마왕
• 편성: 성악 한 사람과 피아노
• 형식: 통작곡(durchkomponiert). 절을 되풀이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써 나가는 방식
• 노래 시간: 4분 안팎
• 무대 초연: 1821년 3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요한 미하엘 포글 노래, 안젤름 휘텐브렌너 피아노
• 초판: 1821년 빈, 카피와 디아벨리
이 글은 그 짧은 노래에서 소리 하나를 따라갑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자리입니다. 200년 전 그 저녁의 논쟁과 오늘 우리가 느끼는 소름이 같은 음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이 이 글이 확인한 것입니다. 그 자리로 가기 전에 먼저 가사를 통째로 놓겠습니다. 이 노래에서 무섭다고 느끼는 것 대부분은 실은 말에서 나옵니다.
〈마왕〉 가사 전문과 우리말 번역
시는 여덟 연이고, 말하는 사람이 넷입니다. 이야기꾼과 아버지와 아이와 마왕입니다. 첫 연과 마지막 연은 이야기꾼의 말이고 가운데 여섯 연에서 세 사람이 번갈아 말합니다. 아래에 연마다 누가 말하는지를 붙여 두었습니다.
독일어는 1821년에 나온 초판 악보의 판면에 인쇄된 철자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우리말은 이 글에서 직접 옮겼습니다.
1연 · 이야기꾼
Wer reitet so spät durch Nacht und Wind?
Es ist der Vater mit seinem Kind;
er hat den Knaben wohl in dem Arm,
er fasst ihn sicher, er hält ihn warm.
누가 이토록 늦은 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가?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간다.
아이를 팔에 단단히 안고,
꼭 붙들어 주고, 따뜻하게 감싸 준다.
2연 · 아버지와 아이
Mein Sohn, was birgst du so bang dein Gesicht?
Siehst Vater du, den Erlkönig nicht?
den Erlenkönig mit Kron’ und Schweif?
Mein Sohn es ist ein Nebelstreif.
「내 아들아, 무엇이 두려워 얼굴을 그리 감추느냐?」
「아버지, 저기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왕관을 쓰고 긴 꼬리를 끄는 마왕이?」
「내 아들아, 그것은 안개 한 줄기다.」
3연 · 마왕
Du liebes Kind, komm, geh mit mir!
Gar schöne Spiele spiel’ ich mit dir;
manch’ bunte Blumen sind an dem Strand;
meine Mutter hat manch gülden Gewand.
「귀여운 아이야, 오너라, 나와 함께 가자.
아주 고운 놀이를 너와 함께 놀아 주마.
물가에는 알록달록한 꽃이 여럿 피어 있고,
내 어머니에게는 금빛 옷이 여러 벌 있다.」
4연 · 아이와 아버지
Mein Vater, mein Vater, und hörest du nicht,
was Erlenkönig mir leise verspricht?
Sey ruhig bleibe ruhig mein Kind;
in dürren Blättern säuselt der Wind.
「아버지, 아버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제게 나직이 약속하는 말이?」
「가만있어라, 가만히 있어라, 내 아이야.
마른 잎에서 바람이 스치는 소리다.」
5연 · 마왕
Willst feiner Knabe du mit mir gehn?
meine Töchter sollen dich warten schön:
meine Töchter führen den nächtlichen Reihn,
und wiegen und tanzen und singen dich ein.
「고운 사내아이야,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내 딸들이 너를 곱게 보살펴 줄 것이다.
내 딸들이 밤의 윤무를 이끌어,
너를 흔들어 재우고, 춤추어 재우고, 노래하여 재우리라.」
6연 · 아이와 아버지
Mein Vater, mein Vater und siehst du nicht dort
Erlkönigs Töchter am düstern Ort?
Mein Sohn, mein Sohn, ich seh’ es genau:
es scheinen die alten Weiden so grau.
「아버지, 아버지, 저기 보이지 않으세요,
마왕의 딸들이 저 어두운 곳에?」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똑똑히 보인다.
늙은 버드나무들이 잿빛으로 보이는 것이다.」
7연 · 마왕과 아이
Ich liebe dich, mich reizt deine schöne Gestalt,
und bist du nicht willig, so brauch’ ich Gewalt.
Mein Vater, mein Vater, jetzt fasst er mich an!
Erlkönig hat mir ein Leids gethan!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 고운 모습이 나를 끌어당긴다.
네가 순순히 오지 않겠다면 나는 힘을 쓰겠다.」
「아버지, 아버지, 지금 저를 붙잡아요!
마왕이 저에게 해를 입혔어요!」
8연 · 이야기꾼
Dem Vater grauset’s, er reitet geschwind,
er hält in Armen das ächzende Kind,
erreicht den Hof mit Müh und Noth;
in seinen Armen das Kind war todt.
아버지는 소름이 돋아 말을 재촉한다.
신음하는 아이를 팔에 안고
간신히 농가에 다다랐지만,
그 팔 안에서 아이는 죽어 있었다.
번역에서 몇 낱말은 흔히 잘못 옮겨집니다. 마왕이 꽃을 자랑하는 곳은 숲이 아니라 물가입니다. 딸들이 아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보살펴 준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에 마왕이 아이에게 한 것은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해를 입힌 것입니다. 그리고 7연에서 끌리는 쪽은 아이가 아니라 마왕입니다. 네 모습이 곱다고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네 모습이 나를 끌어당긴다고 말하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에는 시에 없는 한 줄이 있습니다. 5연에서 마왕이 딸들을 데려와 흔들어 재우고 춤추어 재우고 노래하여 재우겠다고 하는 그 마지막 줄을, 악보에서 슈베르트는 한 번 더 부르게 만들었습니다. 초판 판면에 그 줄이 두 번 인쇄되어 있습니다. 시에서는 한 번뿐인 말입니다. 마왕이 가장 달게 구는 그 한 줄만 작곡가가 되풀이한 셈입니다.
철자도 지금과 다릅니다. 초판 악보에는 Sey, gethan, Noth, todt처럼 오늘 쓰지 않는 형태가 그대로 찍혀 있고, 시인의 이름도 Göthe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200년 전 종이에 남은 철자입니다.
〈마왕〉 내용과 세 번의 유혹
이야기는 셋씩 짝을 이룹니다. 마왕이 세 번 부르고, 아이가 세 번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가 세 번 달랩니다.
마왕의 유혹은 갈수록 노골적입니다. 처음에는 고운 놀이와 물가의 꽃과 금빛 옷입니다. 다음에는 딸들이 시중을 들고 밤의 춤으로 재워 주겠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에는 네 고운 모습이 나를 끈다고 말하고, 순순히 오지 않으면 힘을 쓰겠다고 말합니다. 유혹이 세 번째에 협박으로 바뀝니다.
아버지의 대답은 세 번 다 밤길의 흔한 풍경입니다. 안개 한 줄기, 마른 잎에서 바스락거리는 바람, 잿빛으로 보이는 늙은 버드나무. 아이의 부름도 세 번인데 처음 두 번은 질문이고 마지막에는 묻지 않습니다. 이제 그가 저를 붙잡는다고, 마왕이 저에게 해를 입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시의 짜임을 하나 짚어 두겠습니다. 마왕의 말은 아이에게만 들립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무엇을 보았다고 하면 그것을 안개라고 하고, 무엇이 들린다고 하면 그것을 바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왕이 실제로 한 말에는 한 번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는 그 말이 도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노래를 듣는 우리에게는 마왕의 말이 똑똑히 들립니다. 아이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이와 청중뿐이고, 아이를 안고 있는 아버지만 모릅니다. 이것이 이 시를 무섭게 만드는 짜임입니다.
이 네 사람의 말은 성악가 한 사람이 다 부릅니다. 목소리가 바뀌어서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높낮이와 세기로만 갈립니다. 그것이 부르는 쪽에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뒤에서 악보로 보겠습니다.
시는 원래 홀로 서 있던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괴테가 1782년에 자기 음악극 〈어부의 딸〉에 끼워 넣은 노래입니다. 극에서는 어부의 딸이 그물을 손질하며 혼자 나직이 부릅니다. 소재는 덴마크 민요 발라드에서 왔습니다. 무대에서는 일하는 여자가 저녁에 흥얼거리는 노래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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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츠 폰 슈빈트, 〈마왕〉, 1830년, 캔버스에 유채, 벨베데레(빈) 소장, 소장품 번호 615. 슈빈트는 슈베르트의 친구 무리에 속한 화가다. 가운데 형체에서 왕관만 보석 하나하나까지 또렷하고 얼굴은 아예 그려져 있지 않다. 아이가 말한 왕관과 아버지가 말한 안개가 한 몸에 겹쳐 있는 셈이다. 오른쪽의 굵은 나무는 머리를 잘라 낸 버드나무이고, 아버지의 세 번째 대답에 나오는 그 잿빛 버드나무다.
마왕이라는 이름의 뜻
이름부터가 수수께끼입니다. 독일어 Erlkönig를 글자 그대로 옮기면 오리나무 왕입니다. 그런데 오리나무는 이 시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는 것은 안개와 마른 잎과 늙은 버드나무뿐입니다.
내력을 보면 이 이야기가 건너온 덴마크 쪽에서 그 존재는 요정의 왕이었습니다. 헤르더가 1778년에 독일어로 옮기면서 요정을 뜻하는 그 낱말을 오리나무로 읽었습니다. 헤르더는 북쪽 독일어를 쓰는 지역 출신이고, 그쪽 말에서 오리나무를 가리키는 낱말이 덴마크어의 그 낱말과 소리가 닮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Erlkönig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림 형제가 만든 독일어 사전은 이 대목을 한 줄로 못박습니다. 잘못 옮긴 것이고 그것이 뒤에 괴테마저 잘못 이끌었다고 적고, 이어서 오리나무 왕이라는 것은 어느 전설에도 없다고 씁니다. 20세기 초의 한 백과사전도 오해에서 나온 번역이라고 적습니다.
다만 두 뜻이 겹칠 여지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덴마크어에도 오리나무를 가리키는 낱말이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오리나무라는 이름 자체가 붉은빛이나 갈색을 뜻하는 아주 오래된 말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 나무의 목재가 붉은빛 도는 노란색이기 때문입니다. 오리나무는 물기 많은 땅에 자라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요정과 오리나무가 한 낱말 안에서 만날 자리는 있었습니다. 헤르더가 그것을 알고 골랐는지는 확인된 기록이 없습니다.
흔들림은 시 안에도 남아 있습니다. 1821년 초판 악보를 보면 아이가 그 이름을 다섯 번 말하는데 그중 두 번만 Erlenkönig, 곧 음절이 하나 더 붙은 형태입니다. 나머지 세 번은 짧은 형태입니다. 그리고 긴 형태가 쓰인 두 자리는 다 그 행에 음절 하나가 더 필요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첫 대답이 공교롭습니다. 아이가 왕관 쓴 형체를 보았다고 하자 아버지는 안개 한 줄기라고 말합니다. 오리나무라는 이름이 데려오는 물가와 안개가, 시 안에서는 아버지의 입으로 나오는 셈입니다. 1848년에 한 독일 식물학자가 쓴 문장에는 강가의 오리나무와 그 사이로 올라오는 이슬안개, 그리고 잿빛이 된 버드나무 줄기 주위를 떠도는 마왕과 그의 딸들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괴테의 시가 말한 그 잿빛 버드나무가 거기 그대로 있습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헤르더가 옮긴 1779년 시의 제목은 「마왕의 딸」이었습니다. 사람을 홀리는 쪽이 왕이 아니라 그 딸이고, 그 딸이 길 가는 사람에게 손을 내밉니다. 괴테의 시에서는 딸들이 유혹의 재료로 밀려나고 부르는 쪽이 왕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누구인지가 옮겨진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 존재는 이름을 번역 사고에서 얻었고, 그래서 어느 전설의 어느 자리에도 정확히 앉지 못합니다. 오리나무의 왕도 아니고 요정의 왕도 아니고 죽음의 신도 아닙니다.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정해지지 않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흐릿함은 노래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곡에서 마왕은 험한 소리로 오지 않습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곡 전체에서 가장 부드러운 소리로 옵니다. 정체가 정해지지 않은 것이 부드럽게 다가올 때 더 무섭다면, 이름의 사고와 음악의 선택이 우연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율리우스 니슬레의 원안을 따른 강판화, 1840년 무렵, 괴테 작품집 삽화 92장 가운데 한 장, 바이마르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소장본에서 나온 스캔. 원래 책 제목이 「윤곽선」이라 선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구름과 덤불의 선이 그대로 얼굴이 된다. 왼쪽을 보면 얼굴이 다섯 이상이고 하나는 손가락을 펴 올린 손 모양이다. 오른쪽 절반은 텅 비어 있고, 말은 얼굴들이 있는 왼쪽으로 달려 들어가고 있다.
1815년 그 저녁, 친구들이 문제 삼은 불협화음
이 곡을 쓴 1815년에 슈베르트는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조교사로 일하며 저녁에 곡을 썼고, 도이치 번호가 D 328이라는 것에서 보이듯 그 해에 쓴 것 가운데 늦은 편입니다. 그해 앞뒤의 사정은 슈베르트의 생애와 작품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어느 오후, 친구 슈파운은 마이어호퍼와 함께 슈베르트를 찾아갔습니다. 슈베르트는 상기된 얼굴로 책에서 〈마왕〉을 큰 소리로 읽고 있었습니다. 책을 들고 몇 번 오락가락하다 갑자기 앉았고, 슈파운의 회고에 따르면 「가장 짧은 시간에」 그 발라드가 종이 위에 놓였습니다.
그다음이 한국어 자료에서 잘 보이지 않는 대목입니다. 두 사람은 그 종이를 들고 콘빅트로 달려갔습니다. 슈베르트 집에 포르테피아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콘빅트는 슈베르트가 소년 시절을 보낸 기숙 학교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바로 그곳에서 〈마왕〉이 노래로 불렸습니다. 시를 읽던 오후와 처음 소리가 된 저녁 사이에 반나절도 없었던 셈입니다.
노래가 끝나고 나이 든 오르간 주자 루지치카가 이어 앉았습니다. 그는 노래 없이 피아노만으로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짚어 나갔습니다. 그때 몇몇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여러 번 되풀이되는 불협화음이 이 곡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불협화음은 같이 울렸을 때 서로 어긋나 귀에 걸리는 소리를 말합니다.
루지치카의 대답이 중요합니다. 그는 그 음을 피아노로 하나하나 짚어 가며 그것이 왜 이 가사에 꼭 맞는지 설명했고,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풀리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논점은 어긋나는 소리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소리가 풀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고는 1858년, 그 저녁에서 43년이 지나고 슈베르트가 죽은 뒤에 쓰였습니다. 진실성을 의심하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날의 대화를 녹취록처럼 읽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고가 지목한 그 소리는 악보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어느 자리인지가 다음 절입니다. 이런 사적인 자리가 슈베르트에게 어떤 무대였는지는 슈베르티아데를 다룬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정작 시를 쓴 사람은 이 노래를 그렇게 만나지 못했습니다. 1816년 4월 17일, 슈파운은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에 붙인 가곡을 한 권으로 묶어 바이마르의 괴테에게 보내면서 헌정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함께 넣었습니다. 괴테는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편지는 지금도 바이마르의 문서보관소에 남아 있습니다. 꾸러미가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서술이 갈립니다. 뜯지도 않고 빈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적는 글이 있고, 답장이 없었다는 것까지만 적는 글이 있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답장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괴테가 이 작곡가를 끝까지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 해 뒤인 1825년 6월 괴테의 일기에는 빈에서 온 슈베르트의 꾸러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노래의 첫 청중은 괴테가 아니라 그날 저녁 콘빅트에 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무엇이 이 노래를 무섭게 만드나
먼저 형식을 하나 짚겠습니다. 이 곡은 통작곡입니다. 절을 되풀이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써 나가는 방식입니다. 유행가처럼 같은 후렴이 돌아오지 않으니, 같은 말이 다시 나올 때 작곡가는 그것을 반드시 다른 소리로 써야 합니다. 아이가 세 번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는데 그 세 번이 다 다른 소리인 것은 이 방식의 결과입니다.
세 번의 부름은 차례로 높아집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가 온음 하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가 반음 하나입니다. 두 번째까지 한 칸을 올라온 아이가 마지막에는 그 절반밖에 더 올라가지 못합니다. 악보에서 보면 세 번째 부름이 다섯 줄 오선의 맨 윗줄과 그 위 칸에 올라앉습니다. 소리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높아지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높아지는 폭까지 줄어듭니다. 아이가 힘을 다 쓴 것이 악보 모양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름에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여기서 피아노 오른손은 두 마디 내내 같은 음 하나를 높고 낮게 겹쳐 쉼 없이 두드립니다. 한 마디에 열두 번씩입니다. 아이의 목소리는 그 두드림 위에 얹히는데, 피아노가 치고 있는 그 음과 딱 한 칸 어긋난 자리에 놓입니다. 두 소리가 서로를 밀어냅니다. 음악에서는 이렇게 벌어진 거리를 9도라고 부릅니다. 한 옥타브보다 한 음이 더 벌어진 거리입니다.
그 어긋남이 걸리는 자리는 두 낱말입니다.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순간, 그리고 「붙잡아요」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노래는 곧 반음 아래로 내려와 피아노가 두드리던 그 음과 같은 음이 됩니다. 밀어냄이 그 순간 풀립니다.
독일의 슈베르트 가곡 연구 쪽에서는 이 두 자리를 1815년 그 저녁에 문제가 된 그 소리로 봅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악보에서 그대로 확인됩니다. 노래와 반주 사이가 9도로 벌어지고, 곧 같은 음으로 내려와 풀립니다. 루지치카가 피아노로 짚으며 「얼마나 다행스럽게 풀리는지」를 설명한 그 자리입니다. 200년 전 친구들이 귀에 걸린다고 한 소리와 오늘 우리가 이 노래에서 소름을 느끼는 자리가 같은 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름은 어긋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긋남이 풀리는 데서 옵니다. 아이가 붙잡혔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 음악은 아이를 반주 밖으로 밀어냈다가 곧 제자리로 데려옵니다. 밀어냄이 계속되면 그것은 그냥 이상한 소리로 남습니다. 풀리기 때문에 그 짧은 어긋남이 사건으로 들립니다.
두 번째로 들어 볼 곳은 무서운 자리가 아닙니다. 마왕이 아이에게 처음 말을 거는 대목입니다. 그때까지 피아노는 한 번도 쉬지 않았습니다. 노래가 들어오기 전에도 열네 마디를 혼자 달렸고, 말발굽 소리가 이야기보다 먼저 도착합니다. 그 뒤로도 쉼 없이 두드려 왔습니다. 그런데 마왕이 입을 여는 순간 그 두드림에 쉼표가 생깁니다. 반주가 처음으로 숨을 쉽니다. 소리는 아주 여려지고 화음은 밝은 쪽으로 돌아섭니다. 붙잡으려는 쪽이 곡 안에서 가장 부드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앞 절에서 이름을 이야기하며 남겨 둔 대목이 여기서 맞물립니다. 어느 전설에도 자리가 없는 존재,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정해지지 않은 존재가 곡에서는 가장 부드러운 소리로 옵니다. 그리고 앞서 본 대로 이 부드러움에는 작곡가가 손을 하나 더 댔습니다. 딸들이 흔들어 재우고 춤추어 재우고 노래하여 재우겠다는 그 한 줄만 악보에서 한 번 더 부르게 한 것입니다. 협박이 아니라 자장가가 되풀이됩니다.
이 곡의 공포는 그 어긋남에서 나옵니다. 위협하는 목소리는 위협처럼 들리지 않고, 겁에 질린 아이만 자리를 올려 갑니다. 아버지가 세 번 되풀이한 안심의 말도 세 번 다 빗나갑니다. 부드러움이 깨지는 것은 마왕이 힘을 쓰겠다고 말하는 마지막 한 번뿐입니다.
세 번째는 곡의 맨 끝입니다. 곡이 시작한 뒤로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그 반복이 여기서 처음 멈춥니다. 악보에는 낭송조로 하라는 지시가 적혀 있습니다. 노래하듯이 아니라 말하듯이 하라는 뜻입니다. 피아노에는 여린 화음 하나만 남고, 그 위에서 노래가 거의 말하듯 한 줄을 전합니다. 그 팔 안에서 아이는 죽어 있었다. 말이 끝나면 마지막 두 화음이 세게 떨어집니다. 되풀이되던 것이 멈추는 것으로 아이의 죽음을 알리는 셈이고, 이것은 누군가의 해석이 아니라 악보에 지시어로 적혀 있는 것입니다.
부르기도 치기도 어려운 노래
이 노래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무엇이 어려운지는 악보에서 그대로 보입니다.
노래하는 쪽의 어려움은 네 사람을 한 목소리로 갈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소리를 바꿔 낼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꾼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마왕으로 넘어가는 것을 높낮이와 세기로만 보여 주어야 하고, 그 넘어감이 한두 마디 사이에 옵니다. 게다가 그 전환이 끊임없습니다. 연이 바뀔 때마다 말하는 사람이 바뀌고, 여덟 연 가운데 네 연에서는 한 연 안에서 또 바뀝니다.
거기에 아이의 세 번의 부름이 겹칩니다. 세 번 다 더 높아지고, 마지막 부름은 다섯 줄 오선의 맨 윗줄 위에 놓입니다. 그 높은 자리에서 노래는 겁에 질린 아이의 소리로 들려야 하고, 곧바로 반주와 어긋난 음을 정확히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꾼의 낮은 목소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치는 쪽의 어려움은 성질이 다릅니다. 오른손은 셋잇단으로 묶인 화음을 한 마디에 열두 번 두드립니다. 노래가 들어오기 전 열네 마디부터 시작해서, 마왕이 말을 거는 대목과 곡의 맨 끝을 빼면 4분 내내 그 두드림이 멈추지 않습니다. 왼손은 그 아래에서 짧은 동형을 되풀이하며 올라갑니다. 빠르기 지시는 「빠르게」 하나뿐입니다. 손을 아끼면 말발굽이 멈추고, 아끼지 않으면 마지막 절정까지 손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배분할지를 연주자가 정해야 합니다.
정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슈베르트가 손으로 쓴 악보의 첫 마디는 여리게인데 1821년 초판의 첫 마디는 세게입니다. 같은 곡의 서두를 어느 쪽으로 시작할지가 두 실물에서 이미 갈려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몰아붙이는 서두조차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작품 1번이 되기까지의 여섯 해
1815년에 쓴 노래가 인쇄되어 나온 것은 1821년입니다. 여섯 해가 걸렸습니다. 그 여섯 해가 어떻게 메워졌는지는 이 곡의 첫 출판 방식에 남아 있습니다.
이 악보는 출판사가 사서 낸 것이 아닙니다. 슈베르트의 친구인 레오폴트 폰 존라이트너가 위탁 대리인이 되어 예약을 받는 방식으로 카피와 디아벨리에서 냈습니다. 예약 판매는 살 사람을 먼저 모아 그 돈으로 판을 뜨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팔리지 않을 위험을 출판사가 지지 않았습니다. 이 한 가지 사실이 여섯 해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이 노래를 상품으로 만드는 일을 출판사가 대신 해 주지 않았고, 친구들이 그 일을 떠맡은 뒤에 인쇄가 되었습니다.
그 방식이 통하려면 사람들이 이 곡을 먼저 들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무대에 오르기까지 몇 단계가 있었습니다. 전해지기로는 1820년 12월에 존라이트너의 집에서 사적으로 불렸고, 이듬해 1월에는 반쯤 공개된 저녁 모임에서 슈베르트가 그 자리에 있는 채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1821년 3월 7일 저녁,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처음 공개된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금의 빈 국립오페라가 서 있는 자리입니다. 노래는 궁정오페라 가수 요한 미하엘 포글이, 피아노는 안젤름 휘텐브렌너가 맡았습니다.
그날의 반응이 남아 있습니다. 그해 4월 2일 빈의 한 신문에 실린 악보 광고에, 청중이 그 곡을 한 번 더 불러 달라고 한목소리로 요구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출판사가 광고에 그 말을 넣은 것은 그것이 악보가 팔릴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초연의 앙코르가 판매 문구로 남은 셈입니다. 무대에서 앙코르가 나온 것이 3월 7일이고 발매 광고가 4월 2일입니다. 넉 달 사이에 사적인 자리에서 극장으로, 극장에서 상품으로 옮겨 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곡이 작품 1번이 되었습니다. 스물네 살 때이고, 곡을 쓴 지 여섯 해가 지난 뒤입니다. 작품 1번이 첫 작품이 아니라 처음 팔린 작품이라는 뜻인 셈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작품번호들이 그 사정을 한 번 더 보여 줍니다. 작품 1번부터 7번까지가 전부 가곡이고 모두 스물한 곡인데, 그중 열두 곡이 괴테의 시입니다. 처음 시장에 나간 슈베르트는 교향곡이나 실내악의 작곡가가 아니라 노래의 작곡가였고, 그 노래의 태반이 괴테였습니다. 곡을 팔던 사정은 슈베르트는 왜 가곡을 600곡이나 썼을까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마왕〉 초판 표제지, 카피와 디아벨리, 빈 1821년. 악보는 한 마디도 없고 글씨만 있는 쪽이다. 아래에 「1tes Werk」, 곧 작품 1번이라고 찍혀 있고, 오른쪽 아래에 값이 두 가지 통화로 인쇄되어 있다. 이 표제지가 남아 있어서 이 노래가 언제 상품이 되었는지를 날짜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인쇄된 그 악보와 슈베르트가 앞서 정서해 둔 악보는 같지 않습니다. 슈베르트는 고칠 곳을 새 종이에 옮겨 적지 않고, 이미 있던 그 악보 위에 붉은 초크로 적어 넣었습니다. 그 자국이 지금도 그 종이에 남아 있습니다. 붉은 초크가 얹힌 바로 그 종이가 인쇄소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 손질이 초판에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눈에 보이는 손질은 마디 하나입니다. 아버지가 마른 잎에서 바람이 바스락거린다고 달랜 직후에, 노래가 쉬고 반주만 가는 마디 하나가 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반주는 아주 여려집니다. 아이의 첫 부름이 끝나고 마왕이 다시 말을 걸기 바로 전에, 숨을 고르는 한 마디가 생긴 것입니다.
그 쉬지 않는 반주를 두고 사람들이 무엇을 떠올렸는지는 일찍부터 이야깃거리였습니다. 1858년 빈의 한 음악 잡지에 실린 비평은 온 세상이 이 반주에서 말 달리는 아버지를 본다는 것을 못마땅해했습니다. 쓴 사람은 자기도 가곡을 짓던 작곡가였고, 슈베르트의 작곡을 이렇게 고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까지 붙였습니다. 이 노래를 어떻게 들을 것인지가 그때 이미 갈려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듣는 분을 위한 듣기 순서와 녹음
세 곳만 잡아 두시면 됩니다. 나오는 순서대로입니다.
- 노래가 들어오기 전에 피아노가 혼자 달리는 서두. 여기서 이 곡의 속도가 정해집니다.
- 마왕이 처음 말을 거는 대목. 두드림에 쉼표가 생기고 소리가 여려지는 그 순간입니다.
- 아이의 마지막 부름. 「아버지」와 「붙잡아요」 두 낱말에서 노래와 피아노가 어긋나고, 곧 풀립니다.
세 곳 다 가사만 따라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마디를 세지 않아도 됩니다. 위에 놓아 둔 가사를 옆에 두고 들으시면 지금 누가 말하고 있는지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녹음은 두 가지를 권합니다. 이 노래에서 가장 크게 갈리는 것이 목소리의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제럴드 핀리가 노래하고 줄리어스 드레이크가 피아노를 맡은 것으로, 발라드만 모은 음반 『The Ballad Singer』에 들어 있습니다. 하이페리온에서 나왔고 품번은 CDA67830, 녹음은 2010년 2월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라 워커가 노래하고 그레이엄 존슨이 피아노를 맡은 것으로, 하이페리온의 슈베르트 가곡 전집 제8권입니다. 품번은 CDJ33008, 녹음은 1989년 5월입니다.
앞의 것은 남성 바리톤이고 뒤의 것은 여성 메조소프라노입니다. 이야기하는 목소리와 아버지와 아이와 마왕을 한 사람이 다 부르는 노래이니, 목소리의 종류가 바뀌면 그 네 사람이 갈리는 방식도 바뀝니다. 하나만 먼저 고르라면 뒤의 것을 권합니다. 슈베르트 가곡 전집의 한 권이라 앞뒤로 그의 다른 노래가 이어지고, 그 사이에서 이 곡이 얼마나 다른 곡인지 견주어 들을 수 있습니다. 길이는 어느 쪽이든 4분 안팎입니다.
이제 다시 틀어 보시면 세 가지가 새로 들릴 것입니다. 아이의 부름이 세 번 다 다른 높이라는 것, 마왕이 자기 딸들을 데려오는 그 한 줄을 두 번 부른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부름에서 노래와 피아노가 어긋났다가 풀리는 그 한순간입니다. 1815년 그 저녁 콘빅트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말을 했던 자리가 바로 마지막 그것입니다. 누군가는 귀에 걸린다고 했고, 루지치카는 풀린다고 했습니다. 둘 다 맞았습니다. 이 노래가 무서운 것은 그 두 가지가 같은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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