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협주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틀어 보면 가운데에서 무언가 어긋납니다. 1악장은 총주가 한 덩어리를 내놓고 하프시코드가 받는 교대가 금방금방 돌아오고, 3악장 프레스토에서는 그 회전이 한층 더 조여집니다. 짧은 마디들이 잘게 이어 붙는 짜임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놓인 2악장 라르고만 긴 선율 하나를 조용히 끌고 갑니다.
왜 가운데 악장만 다른 곡처럼 들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이 악장은 원래 이 협주곡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라이프치히 바흐 아카이브가 운영하는 공식 작품 기록은 이 협주곡의 세 악장을 한 덩어리로 다루지 않습니다. 1악장과 3악장은 잃어버린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2악장은 그와는 다른 잃어버린 오보에 협주곡에서 왔다고 갈라 적습니다. 널리 도는 설명처럼 "잃어버린 바이올린 협주곡을 하프시코드로 편곡한 곡"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곡의 조각이 한 협주곡으로 묶인 것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짚습니다. 바흐에게는 "5번"이 붙은 협주곡이 여럿이라 검색할 때 자주 엉킵니다. 하프시코드가 주인공이 되는 유명한 곡으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 BWV 1050이 있는데, 그 곡은 하프시코드가 긴 카덴차로 앞에 나서는 것이 사건인 곡입니다. 이 글이 다루는 하프시코드 협주곡 5번 BWV 1056은 독주가 하프시코드 하나이고, 처음부터 그렇게 쓰인 것이 아니라 다른 곡을 고쳐 묶어 만든 협주곡입니다.
•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작품번호와 조성: BWV 1056, 바단조(f단조)
• 성립: 1738년경 (자필 총보 기준)
• 편성: 독주 하프시코드, 바이올린 두 부, 비올라, 통주저음
• 구성: 세 악장 (1악장 바단조 / 2악장 라르고 내림가장조 / 3악장 프레스토 바단조)
• 같은 선율이 있는 곳: 칸타타 156번 〈나는 한 발을 무덤에 딛고 서 있습니다〉의 첫 곡 신포니아
바흐는 왜 옛 협주곡을 하프시코드용으로 고쳐 썼을까
1730년대의 바흐는 라이프치히에서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을 맡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연주 단체였고, 정기적으로 공개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여름에는 야외에서, 겨울에는 치머만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커피하우스에서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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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거리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며 새긴 동판화다. 차양이 드리워진 1층 자리가 커피하우스이고, 1729년부터 바흐의 콜레기움 무지쿰이 여기서 모였다. |
매주 연주회를 채우려면 새 곡이 계속 필요합니다. 바흐가 택한 방법은 예전에 써 둔 협주곡을 독주 하프시코드용으로 고쳐 쓰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건반에 앉아 독주를 치면서 동시에 단원들을 이끌 수 있으니 실용적이기도 했습니다. 하프시코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쓰거나 고쳐 쓴 최초의 작곡가 중 한 사람이 바흐인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묶인 것이 독주 하프시코드 협주곡 일곱 곡입니다. 이 바단조 협주곡은 그중 다섯 번째이고, 공식 기록은 자필 총보를 근거로 1738년경에 성립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1738년은 이 곡이 지금 모습을 갖춘 해이지, 이 음악이 처음 태어난 해가 아닙니다.
바깥 두 악장과 가운데 악장은 출신이 다릅니다
여기서부터가 이 곡의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공식 작품 기록은 1악장과 3악장이 사단조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2악장은 라단조 오보에 협주곡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적습니다. 두 원곡 모두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바깥 두 악장이 원래 바이올린 곡이었다고 보는 근거는 조성과 음역입니다. 두 악장이 오가는 음의 범위와 몇몇 표현 습관이 건반보다 바이올린에 어울리고, 여러 대목이 원래 조성을 사단조로 놓을 때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실제로 들어 보면 짐작이 갑니다. 앞에서 말한 그 짜임, 짧은 마디들이 잘게 이어 붙는 방식 때문에 이 두 악장을 바흐의 이른 시기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문제는 가운데 악장입니다. 이 라르고는 바깥 두 악장과 조성으로도 규모로도 맞지 않습니다. 원래 어디에 있던 악장인지는 다행히 남아 있는 자료가 알려 줍니다. 이 선율은 칸타타 156번 〈나는 한 발을 무덤에 딛고 서 있습니다〉의 첫 곡 신포니아로 먼저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칸타타는 1729년 1월 23일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연주되었고, 대본은 피칸더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시인이 썼습니다. 병자를 고치는 복음서 장면을 묵상하는 곡입니다.
그러니 이 선율이 지나온 길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잃어버린 오보에 협주곡의 느린 악장이 있었고, 그것이 칸타타의 문을 여는 신포니아가 되었고, 그다음 이 하프시코드 협주곡의 가운데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한 선율이 최소한 세 곳을 옮겨 다닌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악장은 실제로 어떻게 들릴까요. 바깥 두 악장에서 쉴 새 없이 돌아오던 총주와 하프시코드의 교대가 여기에는 없습니다. 하프시코드가 선율을 혼자 맡아 장식음을 얹어 가며 조용히 노래하고, 현은 아래에서 받치는 자리로 물러납니다. 4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음악은 어디로도 서두르지 않습니다.
옮겨 붙인 자국이 들리는 자리
다른 곡에서 가져온 악장을 끼워 넣으려면 조성을 맞춰야 합니다. 칸타타의 신포니아는 바장조인데, 이 협주곡의 바깥 두 악장은 바단조입니다. 바흐는 이 악장을 내림가장조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악장의 끝에서 다음 악장의 바단조로 이어지려면 다리가 하나 더 필요했고, 바흐는 마지막에 평소답지 않은 전조를 하나 두어 그 연결을 만들었습니다. 여기가 이 곡에서 귀로 잡을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들어 보십시오. 라르고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선율이 잦아들면서 이제 끝나겠구나 싶은 대목이 옵니다. 그 직후 화성이 예상과 다른 쪽으로 한 번 꺾입니다. 편안하게 내려앉는 대신 어딘가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면 그 자리가 맞습니다. 그 몇 마디가 바로 다른 곡에서 온 악장을 이 협주곡에 붙들어 매기 위해 나중에 만들어진 다리입니다.
이 대목을 두고 바흐가 서툴렀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읽는 편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조성도 규모도 맞지 않는 악장을 가져다 쓰기로 했다면 어딘가에서는 무리가 날 수밖에 없는데, 그 무리를 마지막 몇 마디에 몰아넣고 나머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게 만든 것이 이 악장의 솜씨입니다.
같은 선율을 세 번 듣기
이 선율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세 판을 나란히 들어 보는 것입니다. 순서를 정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협주곡 판입니다. 하프시코드가 선율을 맡고 장식음을 촘촘하게 얹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소리입니다.
둘째, 칸타타 156번의 신포니아입니다. 여기서는 오보에가 선율을 부르고, 현은 활을 쓰지 않고 줄을 뜯습니다. 배경이 통통 튀는 점들로 바뀌는 순간 같은 선율이 전혀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협주곡 판보다 짧고, 장식도 훨씬 덜합니다. 하프시코드 판을 먼저 들은 귀에는 이쪽이 뼈대만 남은 것처럼 들리는데, 실제로 이쪽이 먼저 있던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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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와 오래 알고 지낸 텔레만의 초상 판화다. 오른손이 앞에 펼쳐 놓은 악보 위에 얹혀 있다. |
셋째가 뜻밖의 판입니다. 텔레만이 쓴 사장조 플루트 협주곡의 첫 안단테를 틀어 보십시오. 시작하고 두 마디 반 동안 독주 악기가 부르는 음이 이 라르고와 사실상 같습니다. 처음 들으면 잘못 튼 줄 압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텔레만을 오래 연구한 한 학자가 2008년 대학 출판부에서 낸 연구서에서, 텔레만 쪽이 먼저였고 바흐가 친구의 악상을 받아 자기 식으로 펼친 것이라는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근거는 바흐가 남긴 문서가 아니라 두 악보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 현대 연구라는 점은 밝혀 둡니다. 바흐 자신은 이 선율의 출처에 대해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이 라르고는 잃어버린 오보에 협주곡에서 나와 칸타타의 문을 열었고, 다시 하프시코드 협주곡의 한가운데로 옮겨 왔으며, 그 첫머리는 어쩌면 친구의 곡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에 이 악장을 틀 때는 두 곳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시작하고 두 마디 반, 그리고 끝나기 직전의 그 한 번 꺾이는 화성입니다. 앞은 이 선율이 어디서 왔는지를, 뒤는 그것이 어떻게 이 곡에 붙었는지를 알려 줍니다.


